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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관리본부 최차장의 근황 (4)

관리단계에서 돌보는 건축

by 최지원

이 글은 여성건축인 매거진『SOFA 5 - 혼자이지 않은 건축: 돌봄을 돌아봄』에 기고한 내용을 재편집한 버전입니다. 원문은 해당 매거진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화면 캡처 2025-05-20 123822.jpg


개발단계에서 건물 정체성을 논하는 건 어찌 보면 즐거운 일이었다. 요즘은 개발사업 자체를 “그냥 다 접으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메시지를 자주 접하곤 하니까. 강화되는 법규, 각종 인허가의 부결, 이행 가능한 건가 싶은 허가 조건, 아무래도 누군가 재료마감표에 [실내 마감: 금칠]이라고 써 놓은 게 아닌지 의심될 정도의 공사비, 대부업자인가 싶은 금리가 그런 메세지들이다. 요즘은 여러 악조건을 이겨내고 PF대출을 받은 뒤 착공하는 자체를 기적처럼 여긴다. 이럴 때 괜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착공 후 실시설계처럼 성패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관리성 업무를 촘촘하게 하자는 셀프 잔소리성 기록을 좀 해본다.

나에게도 설계한 대로 공사하면 뭐가 문제지? 라는 생각을 탑재한 해맑은 설계자 시절이 있었다. (설계 엄청 힘들었다고 SOFA 지난호에 엉엉 울면서 쓴 것 같은데 좋은 기억만 남았네요.) 설계사무소 밖으로 나와보니 설계 말고도 여러 분야가 연결되는 경계와 과정에 세심하게 관리할 재미없는 일이 많아 과거에 했던 일이 미

화된 것일 수 있다. 착공 후 업무 관리에서는 여러 공종과 관계 사이에서 소소하고 티 안 나는데 지속적으로 골치 아픈 일들부터 가끔은 심장이 오그라들 정도로 놀라는 일이 존재한다. 이제부터 하는 건 나한테 하는 잔소리니, 누군가에게 스트레스로 가 닿지 않길 바라며 관리 단계 이야기를 나열해 본다.


서당 개, 풍월 읊지 마.

설계관리자는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많은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라, 저 사람 얇고 넓게만 아는 줄 알았더니 꽤 깊고 넓게 아네?’ 생각하게 만든다. 이럴 때 생각 나는 게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서당 개 풍월이 과연 정확할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나는 서당 개 지식으로 현장 작업

자에게 지시를 내리는 관리자를 심심치 않게 본다. 어느 경우에는 전화로 어느 날은 카톡으로 그냥 막 정해줘 버린다. 이치에 안 맞는 현장 상황엔 ‘발주처 승인’이라는 문장이 남는다. 그리고 그 당사자는 지금 어디 있냐? 퇴사했다. 예전에 맡았던 준공이 얼마 안남은 현장 이야기다.. 시공 오차를 벗어나는 도면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한 시간만 돌아봐도 문제가 있는 현장 같아 보였다. 의아한 부분의 설계도면을 찾아보려고 하면 딱 그 부분만 없었다. 도면에 정확하게 명기되지 않은 부분을 시공사에서는 최소화하거나 시공하기 용이하도록 발주처에 보고하고 발주처가 그냥 승인해 주는 일이 반복되어 왔을 거라 추정된다. 빠르게 승인 안 해

주면 준공 일정 못 맞출까 걱정돼서 그랬을 것이다. 늦게라도 발견한 문제를 적발 또는 고백하여 이슈화시키는 게 그나마 조직 생활하며 몸에 밴 습관 중 하나다. 계속 발견하고 후비다 보니 표면상잘 돌아가는 줄 알았던 현장이 내가 맡은 뒤로 졸지에 문제 많은 현장이 되었다. (문제가 발견되는 준공쯤, 내가 맡게 돼서 그렇기

도 하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는 설계사나 시공사나 감리마저 기술적인 사항을 발주처 승인에 의존하면서 돌아간다. 꽤 아슬아슬해 보인다.


공종12간 경계에 놓인 일

누가 해야 하지? 누군가 하는 중이겠지? 싶은 일인데 사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은 늘 존재한다. 주로 공종간 경계에 놓여있는 일이다. 쎄한 기분이 드는 부분을 한 번씩 들춰봐야 하는데 이럴 때보면 관리자에게는 어느 정도 심심함이 필요하다. 인테리어와 건축을 예로 들어보겠다. 인테리어 설계팀 업무분장은 층과 실 기준

으로 나눌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수직으로 연결되는 부분을 놓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시각적인 디자인에 몰입해서 각종 설비위치가 디자인과 연동하여 변경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인테리어에서 디자인을 위해 만든 구조물이나 대형 조명을 천장에 매달 때 수반되어야 할 구조계산을 간과하기도 한다.

조경과 토목 사이에도 간섭되거나 누락되는 사항이 발생하고, 기계와 전기 분야 사이에도 많은 관계가 발생한다. 유난히도 내가 경험했던 건설 현장에서 전기와 기계 공종 담당자끼리 자주 절교를 하곤 했다. 한국 조직 생활에서 유효한 직급으로 찍어 누르기13같은 관계가 아니면 뭔가 사이좋게 지내기가 어려운 건지, 내가 무

시하는 사람이 나를 무시하니까 더 기분 나빠서 앞으로 내가 더 무시해야지 하고 다짐하는 듯한 소리 없는 결투를 하는 현장이었다.

기계장비나 공조시스템이 변경되면 그 기계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을 검토해봐야 한다. 기계 시스템이 바뀌어 전기 용량이 바뀌었는데 전기 담당에게 전달이 안 되었다. 확인해보니 “메일로 도면 보내줬잖아.”라고 말한다. 옆자린데 말로 좀 하지 그랬어요…. 이건 기계 공종 잘못이긴 하다. 누군가가 꽁하지 않은 지, 서로 대화를

하는지도 한 번쯤 궁금해하면서 각자 다른 길을 가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다 큰 어른 사이에 이런 일이 어딨어? 라고 생각하는지, 실제로 준공 뒤에 바뀐 기계 시스템을 위한 전기 용량 확보가 안 된 것을 발견해 차단기 내리고 케이블 교체를 하는 대형 공사를 할 뻔했다.


니가 해라, 커튼월14 구조설계

커튼월 문제가 생기는 건 주로 작은 현장인데 설계 중 예상치 못한 커튼월 구간이 생기고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다. 일반적으로 설계사는 커튼월 구조계산은 안 하고 도면만 그린다. 시공사가 커튼월 공사를 하기 전 구조계산을 한다. 시공사는 커튼월 구조 도면이 없어서 시공을 못 한다고 말한다. 설계 도면에는 ‘구조 검토 후 시

공’이라고 개미만 한 글씨를 써놓는다. 양쪽에서 구조계산 업무를 미루다가 발주처가 추가 용역을 부담하기로 결론이 나면 좀 나은 상황이다. 문제를 발견했으니까.

내가 맡은 현장은 아니었지만 잘 진행되던 현장이었다. 현장에 커튼월이 꽤 멋지게, 큼직큼직한 유리창을 걸어가면서 시공 중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현장 담당자가 횡단보도 건너에서 그 건물을 봤는데 맨눈으로 봐도 큰 유리가 중력을 받아 바닥 쪽으로 약간씩 처져 보였다고 한다. 급하게 확인한 결과 시공사는 그냥 도면의 그림대로 시공했다고 한다. 설계 도면에는 역시나 작은 글씨로 ‘※구조계산 후 시공할 것’이라고 명시되었다. 구조계산 없이 그냥 도면의 프레임대로 시공 중이었다. 건물을 짓는 게 무슨 여름방학 숙제도 아니고 이런 일이? 싶은 일이 발생하는 곳이 작은 현장이다. 도면을 여러 차례 검토하고 의견을 지속적으로 교환하는 현장이 일

반적인 모습이지만 이렇게 다들 동태눈을 하다가 지옥문이 열리는 케이스가 생긴다. 이 현장은 공사를 중단하고 발주처-시공사-설계사 소송으로 이어졌고 건물은 제3의 시공사가 재공사하며 끝났다고 한다. 결국 소송과 재시공으로 시간과 비용은 막대하게 늘어났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 일의 원인은 관리 소홀의 문제지만, 비

용 입찰로 이뤄지는 계약이 많아서 최대한 저가로 입찰하는 상황에서 커튼월 구조계산처럼 경계가 불명확한 항목을 제외하고 입찰을 진행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저건 어떻게 서고, 매달리는 걸까?

사람들 사이에서 대범하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나는 공사 현장에만 가면 겁이 많아진다. 천장에서 뭐가 떨어질까 자꾸 올려다보고 안전모를 쓰지 않은 작업자를 보면 과하게 지적한다. 겁 때문인지 도면이나 현장을 살피다가 ‘어떻게 이게 혼자 서있지? 바닥에 어떻게 지지하는 거지?’하는 질문이 생기는 부분이 종종 있다. “저

부분 도면 좀 보여주세요.”라고 말했을 때 돌아오는 답변은 “저런건 도면 안 그림.”, “구조 계산 안 함”이라는 답변과 “참 걱정이 많으신 분.”이라는 평가까지 추가된다. 그래요 제가 일단 모르는 게 많고 그만큼 걱정도 많다고 치겠습니다만 어느 현장의 예를 들자면 무지주15 구조물이 구조계산이 안 된 채 시공되어 매달려 있는일이 있었고, 실사 과정에서 구조계산서를 요구받았다. 당연히 존재할 줄 알았던 구조계산서가 없어 큰 문제가 되었다. 결국 후속으로 구조계산을 했다. 다행히 구조적으로 문제는 없어 구조의견서를 제출하며 상황은 정리되었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저런 특수한 구조물의 구조계산이 납품이 안 되어 있던 걸까? 다른 문제는 또

얼마나 큰 게 있을까? 싶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제 우리 모두 그만 대범해지자. 겁대가리를 더 키우자.


덩그러니 도면 한 장, ‘최종도면’ 폴더

퇴사자로부터 인계받은 어느 현장이었다. 가장 최근 공사 도면에 해당하되는 [02 설계 > 05 실시설계 > 2024년 4차 설계변경]이라는 폴더를 열어보니 도면 파일이 덜렁 두 개 있었다. 갸웃거리며 이전 단계 [2023년 3차 설계변경] 폴더를 열어보니 파일이 네 개 있었다. 더 이전 단계인 [2022년 2차 설계변경] 폴더를 열어보니 파일이 꽤 많았다. 그러나 풀세트로 보이지는 않았다. 현장은 무슨 도면을 보며 공사 중인 걸까? 확인해 보면 대부분 2차 설계변경 폴더를 보면서 시공하는 중이었다. 습관적으로 풀세트부터 찾아보게 되니까 그렇다.

설계 변경 허가가 진행될 때 도면 1,000장 중 1장만 바뀌어도 파일은 풀세트로 관리하는 방식이 해당 현장의 역사를 다 파악하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현장 직원들끼리 생각보다 많은 대화를 하지 않는다. 한 공간 안에서도 서로 컴퓨터만 보는 요즘, 옆사람이 무슨 도면을 확인하고 현장에 나가는지 알 게 뭐야… 집에 빨리 가고 싶은데 말이다.


인간계에서 해결 불가능한 누수

그때는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몰랐다. 지하층 누수를 발견한 첫날 말이다. 준공 후 임차인이 들어오기 전 인테리어 공사 중인 렌트프리16기간이었다. 건물 관리인이 내게 말해줬다.

“차장님… 내려와 서 보셔야 될것 같아요. 지하층에 누수가…."

추운 겨울이었다. 겨울에 웬 누수…? 기둥을 타고 흘러 들어오던 물, 그해 겨울 야속하게 왜 그렇게 비가 오던지 임차인이 입주한 뒤에도 계속 비가 왔다. 비 올 때마다 현장에서 연락이 왔다. 누가 인공폭포를 만들어 놓았나 싶을 정도로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날도 있었다. 이미 임대를 시작한 공간들과 성난 임차인들로 번잡스러운 상황 속 지하층 누수공사를 진행했다. 안전 펜스를 설치하고 지하층 누수 부위의 방수 공정을 다시 수행했다. 그러는 중에 비가 또 왔다. 추가 누수가 계속 생겨 지하층과 지상1층이 만나는 부위 전체를 전면 재공사했다. 현장에서 as를 맡은 건설사 직원들과 현장관리인, 임차인의 분쟁은 덤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장마가 곧 온다는데, 파국의 장마 엔딩이 되려나.




12) 공종: 공사의 종류

13) 찍어 누르기: 일반적으로 상급자나 권력자가 자신의 지위나 권한을 이용해 특정한 구성원이나 의견을 억압하거나 무시하는 행위

14) 커튼월: 유리와 금속프레임으로 이루어져 건물을 감싸는 구조, 자체로 서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금속프레임이 하중을 견디는 검토가 필요하다.

15) 무지주: 기둥이나 지지대가 없는 구조. 여기서는 기둥없이 천정이나 수벽에 매달려 있는 구조를 말한다.

16) 렌트프리: 무상임차, 임차인(세입자)에게 임대료를 내지 않고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을 제공하는 것, 계약초기 한두달 세입자가 미리 인테리어 공사를 하거나 할때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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