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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Aug 12. 2020

바디 프로필이 얼마 안 남았다.

d-day 18일,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바디 프로필이라는 것을 찍기로 했다.

그것도 100일간 준비해서, 함께 여럿이서 말이다.


안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참 결이 통하고 좋아하는 동생이 하는 다이어트 모임이라 나를 이곳에 얼른 소속시켰다.

그때가 5월 말. 이사를 앞두고 있었고, 나의 마음에도 나의 신변에도 출렁임이 심히 있었을 때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바닥을 찍어야 수면 위로 올라온다 하던가? 그 바닥을 제대로 찍고 있었던 시기가 바로 이때였던 듯 싶다.

인생 뭐 있어, 낳아 놓은 애나 잘 수습하면서 살지, 뭐 그렇게까지 산다고 아둥바둥이니....  하면서 내가 나를 놓고 싶었다.



막내가 딱 5살이 된 시점, 거기까지만 가자. 힘들때마다 내 스스로와 약속했다.

아이 엄마로만은 살지 않겠노라고.

시작은 딱 5년 후라고 다이어리에 꾹꾹 눌러쓰며 생물학적인 여자로만 사는

기본적인 인권의 기반도 못 갖추고 살아내야만 하는 극강의 5세. 4세 3세 신생아의 돌봄이라는 하드코어의 시기를

이를 악물고 버텼고, 그때 내 일기에 약속된 그 시절이 드디어 왔다.


나는 약속대로 자기 계발을 위해 세상 밖을 나갈 준비를 했다.

2019년 말 겨울에 나는 몹시도 아팠다. 마흔 병이라는 고질병을 기본으로 깔고 있는 데다가 워낙 감정 기복도 큰 나에게

 폭망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창업과 실패, 그리고 그것을 만회하고자 벌렸던 더 큰 부동산 투자 실패는 나를 끝이 없는 나락으로 데리고 갔다.


그래도 아이넷 엄마로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싶어 엎드려 있던 몸에서 고개만 살짝 들어 일단 세상밖에 조심스레 나서 보기로 용기를 냈다.


그 힘듦을 뚫고 나온 첫걸음 유튜브 대학 처음에는 신선했다.

하지만 이내 마흔 넘은 엄마가 디지털로 중무장된 사회에 뛰어들기엔 넘어야 할 벽들이 너무 많이 보여 평소 내 성미대로 치고 나가기에는 불가영역처럼

큰 벽처럼 느껴졌다. 그 벽을 뱅뱅 돌며 내가 들어갈 문이 있을것을 희망했다.

경제 독서 모임 - 책 브랜딩 회사에 등록과 취소 - 개인 기획자와의 만남과 상처

그 그런 배움의 과정이겠거니 괜찮았는데..

결국 내 생의 버킷리스트 1번 ‘출간하기’의 꿈까지 희미해지자 모든 것이 다 손안에 모래처럼 힘없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나의 문제’로 귀결됐다. 삶의 희망을 놓치자 도대체 어떻게 다시 나를 추슬러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연연연생 그리고 한 번의 출산을 더 하고도, 오롯이 그 육아를 다 견딘 나인데, 오늘만을 생각하면서 그 시기를 버텼던 나인데

그 오늘이 이렇게 희미한 신기루처럼 사라지자, 이건 도무지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하는 어둠인 터널이라면 어디까지가야 끝이 보이는 종류의 것인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를 구제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을 40년을 통해 꾸준히 배워왔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나를 구제하는 법을 몰랐다.

배울 시기를 한 번 놓친 ‘자기 다루기’의 기술은 나이를 실컷 먹고 엄마가 되어서도 자생적으로 생겨 나기는 커녕 점점 더 안으로만 파고들었다.

내 속에는 해결점을 찾지 못한 내가 너무도 많았고 그건 독침이 되어 나를 아프게 하고, 이런 나는 가족들을 모두 아프게 만들었다.





그래? 운동으로 극복해볼까? 그래, 내가 잘하는 것 중에 하나잖아!’

운동으로 극복해야지 이런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다.

운동은 그냥 재밌어서 하는 것, 삶의 활기를 불어넣을 때 하는 것, 또는 몸이 불었을 때 극약 조치로 하는 것. 혹은 생활 속에서 그냥저냥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려운 시기를 운동으로 극복해본다?

그것 밖에 답이 없을 것 같다는 직관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는 지도 모른다.

그렇게 함다 파이널 바디 프로필 찍는 팀에 나를 소속시켰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샌가 생기를 되찾은 내가 되어있었다.


그게 운동 때문만일까? 다시 생각해봐도 운동 때문이 아닐 수가 없을 만큼 시기가 정말 딱딱 맞다.

그렇게 5월 말 운동과 함께 이사를 해냈고, 사 남매와 함께 코로나를 견뎠고, 새로운 일을 찾았다.


5월 중순 박현근 강사님과 1대 1 미팅이 있었던 강남역의 스타벅스에서..

다 식은 커피잔을 하염없이 매만지며 창가를  바라보며 30분쯤 멍 때리다가

돌연 핸드폰을 열어 내가 믿는 동생이 운영하고 있는 함다 파이널 팀에 들어가겠노라 연락을 취한 것, 맘 메이트 클럽에 소속되어 첫 인사를 나눈 것.


이 두 가지 소소한 행동이 후에 엄청난 삶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나는 세상밖에 온전하게, 드디어 40년 만에 내 자아와 사회를 도킹시켰다.


바디 프로필 찍기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운동

이거 해보니까 그냥 하는 운동보다 훨씬 효과 좋고 매력 있고 삶을 통통 튀게 한다.

아마, 운동이 아니었으면 네 아이를 케어하면서 글을 계속 쓸 수도, 브랜드미 과정을 이겨낼 수도,

브런치 작가를 다시 도전할 의지도 모두 내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내 맨 탈적인 효과는 앞에서 실컷 떠들었다. 그래서 몸은 어떤데? 이제 실제 숫자의 효실을 좀 보자..


나는 53kg에서 시작했고, 현재는 49kg이니 무게로는 총 4kg 감량했다.

체지방율은 목적했던 18% 언저리를 향해 있고 근육량도 37kg이다. 킥오프 미팅때 내가 내걸었던 공약

몸무게 48키로, 체지방률 18%, 근육양 38kg, 기초대사량 1200넘기기.

이렇게 네가지 공약에 엇비슷하게 맞춰가고 있다.


지지난주였던가, 최저 몸무게가 47kg까지도 갔었으나, 그건 내 몸이 이 생활과 함께 버텨 낼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고,

엄마바디프로필 준비에 아이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 48kg로 몸무게를 딱 마주한 날 마음은 너무 기뻤지만 나는 집에서 괴물이

되어있었다. 너무 예민하고 힘든데, 네 아이를 돌보는 것에 힘이 부치니 화로 뻗어나왔다.

이래서는 바디프로필이나 몸관리가 의미가 없다. 나로서도 빛나고 싶지만,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멋진 엄마로 서로존중을 주고받는 부부로

살고 싶어서 였으니 숫자욕심을 버려야 했다.


이 100일간의 약속중 80여일을 유지하는 동안,

평소에 좀 조절하고 살다가 폭발할 것 같다 싶으면 초콜릿이던 빵이던 입에 넣어서 입막음을 했다.

그리고 멤버들에게는 이실직고를 했다.

더 참았다가는 식욕이 몇 배로 폭발했던 나를 완벽히 이해하고 취한 행동이었다.


이 작은 행동은 나에게는 많은 바를 시사한다.

절대 타협은 없이 살던 꽉 막힌 나였다. 지키면 지키는 것, 아니면 아웃. 땅이 아니면 하늘이고, 모 아니면 도를 외치는 중간이 없는 참 피곤한 인생이었다.

새벽 기상도 4시면 4시가 아니면 그날은 망친 것. 아침만이 아니라 그날을 통째로 함부로 살았다.

몸 관리도 완벽하게 세끼 조절 플러스 운동 아니면 폭식. 한 끼를 망가트리면 다음 끼는 더 조심하는게 이치에 맞는것인데,

치킨 시켰으니, 라면 끓이자 하는 격의 극단적인 라이프 스타일의 전형을 보여주는 나였다.


새벽 5시나 6시는 새벽 기상 측에도 안 껴주고, 적당히 먹고 싶은 만큼 먹고 멈추는 행위는 다이어트 측에도 안 껴주던

극단적인 나의 태도와 기질에 처음으로 ‘변화라는 것을  계기가 이번 바디 프로필 준비로 생겨난 것이다.


주변을 둘러싼 딱딱한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이 너무도 힘들었는데, 그 어떤 계기도 아닌 내 몸뚱이를 새로고침 하면서 내가 나와 진정으로 친해져 갔다.

이렇게 새로고친 몸을 이쁘게 찍어두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전에는 무슨 애 엄마가 그렇게 몸매에 집착하냐, 임산부가 체중조절이 말이 되냐? 말을 들어도.

겉으로 무심한 듯 , 괜찮은 듯했지만 진심으로 괜찮지는 못했다. 애 넷 엄마가 몸매를 더 가꾸고 싶어 하는 것이 마치 경박한 욕심처럼 느껴져서

그저 ‘이쁜 여자 몸매를 보는 취미를 가졌다’ 이렇게 둘러대는 말속에 나의 그 욕심을 감추고 싶었다.


그런데, 바디 프로필 준비를 하면서 함께 하는 멤버들과 생활과 가치관을 나누면서 그들의 칭찬과 다독임에 힘을 얻은 나는 차츰 더욱더 어깨를 펴게 되었고,

이를 처음으로 자랑거리로 삼기로 했다. 그리고 자랑할 바에 완전 멋지게 자랑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함다 멤버 중에 이쁜 막내멤버가 책을 읽다가 만나 공유해준 이 문장을 만나고 나서다.

그렇다. 나는 나를 잘 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바디 프로필 경험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막판 스퍼트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나에게 그때가 왔지 싶다.  머리 털나고 처음으로 1대 1 PT를 신청했다. 여태는 혼자서 어떻게든 단체 수업으로 틈새 운동으로

애들과 산책 갈 때 나는 줄넘기 1000개를 채워가며 버텨왔지만,

그 이상은 섬세하게 내가 내 몸을 다듬을 방도를 못 찾겠다. 내가 쳐내야 할 일들로 이 미 꽉 찬 내 하루 안에 몸을 위한 시간을 더 마련할 여력도 없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다른 프로필 도전자처럼 단백질 위주의 식단도 칼로리를 맞춘 식사도 한 번 해본 적 없는 진짜 주먹구구식 바디 프로필 준비러지만

사남매 엄마가 도전하는 바디 프로필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고로 내가 가는 길이 역사가 될테니, 그저 나답게 해야 한다.


브런치 작가로 등단하고 첫번째 소재는

소원쓰기와 그 모임의 시작을 썼다. 다이어리 요정이 이루어준 나의 인생스토리가 제일 중요했다고 치면

두 번째 소재를 바디 프로필로 삼은 것은 몸관리가 내 지배가치의 2번이라는 증거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그리고 우리 파이널 맴버들에게 막바지 힘을 주고 싶어서이다.

대충 찍고 말지 뭐, 라는 내 마음을 ‘이왕 하는 것 멋지게 마무리하자’로 바꾸고 싶어서이다.


이 에너지로 운동하고 싶은, 아름다운 몸매를 갖고 싶은, 엄마에게 타인에게 귀감이 되고 싶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매몰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경박한 욕심이 아닌 ‘자기 존중 문제라는 것을 나의 경험을 통해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늙어서도 늘 아름답고 싶다. 그리고 내 주위에 엄마들도 아름다움에 꽤나 당찬 욕심을 내줬으면 좋겠다.

내가 욕심내는 아름다움은 성형과, 메이크업과는 결이 다른 일상의 나의 습관이 내 인생이 주는 결과물로서의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이번 바디 프로필은 그저 몸의 이슈를 넘어선 ‘라이프스타일 프로필’이다.


함다, 파이널팀!! 우리 모두 막판 스퍼트 힘내요~ !!! 그리고, 우리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런메이트로 쭉 함께 건강하고 유쾌하게 삽시다! ^ㅡ^


모임 만들어준 손대장 및 함다 멤버님들 모두 고맙습니다~ ^^ 29일날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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