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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Aug 07. 2021

(내가 만든) 나에 대한 괴소문

내글에서 '가식'이 한겹 더 벗겨지는 날.

너는 그런사람이야. 낙인이론. 한번 그 사람이 그렇게 인식되면 계속 그런 사람으로 인식하고 살아가게 된다는 무서운 이론입니다. 그런데 이 낙인이론을 적용하는 범위가 비단 타인이나 내가 속해있는 세상에 대한 것 뿐일까요?

우리가 경계해야 할 낙인의 대상은 가까이 있습니다. 바로 내 자신이 만들어 낸 '나라는 낙인'입니다. 어쩌면 난 '있는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내가 나라고 여겨지는 나'를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그가 시키는대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내 자신이 나를 '이런 사람이다' 라고 규정지어 버리고 그 틀 안에서만 지지고볶고 사는거죠. 그러면서 간절히도 이 틀 밖의 삶을 꿈꿉니다. 


우리, 어떻게 이 틀을 깨고 나갈 수 있나요? 


오늘 글벗님들이 셀프로 만들어주시는 주제 큐레이션의 토요 주제는 '자기 제한적 믿음' 입니다.

나는 ~~를 못해. 혹은 나는 ~~여서 안돼. 이렇게 제한적인 믿음은 우리가 깨닫는 횟수보다 더 자주 강력하게 위험을 감수하고 한계를 확장하는 자기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를 극복하느냐. 

첫째 이 제한적 믿음이 우리의 과거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 사실 그대로를 이해하는 것. 둘째는 이 제한적 믿음이 정말 사실인지 검토하는 것. 그 믿음을 오늘날의 실제 사실로 대체하는 것이라네요.

오늘의 큐레이션의 글벗 새라님 참고하신 책은 엘리자베스 스탠리의 '최악을 극복하는 힘'입니다. 


팀의 리더가 아닌 글감을 받아서 쓰는 사람이 되어 열심히 과제를 수행해봅니다. 오늘 내가 가지고 있는 제한적인 나, 한계에 갇힌 내 생각들이 무엇이 있는지 떠올려 보고, 이를 대체언어로 바꾸어보는 작업을 해보려구요.

내가 나를 또렷하게 안다는 것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기 제한적 믿음이라...처음으로 딱 떠오르는 생각은 나는 나의 감정조절을 잘 해내지 못할거라고 단정지어 생각한다는게 떠오르네요. 나는 결코 화를 참지 못할 것이라 단정지어버리고 '화가 많은 사람'이라는 틀속에 제 자신을 넣고 삽니다. 그러니까 화가 나도 '나는 원래 그래. 그래 너가 그러면 그렇지' 하네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화라는 통이 있어서 그게 채워지면 '버럭'하고 올라온다고 쳐요. 그럼 저는 이미 저의 화통을 80%는 이미 채워 두고 지내는 같아요. 그래서 20이라는 역치값에 금방 야!! 이렇게 반응을 해버리죠. 80%에 비밀을 낙인이론과 연결지어봤어요. 어쩌면 내가 그런사람이라는 틀에서만 벗어나도 80%는 절반으로 금방 떨어질지도 몰라요. 그리고 80이 생긴 이유를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그럴만한 상황이었고 누구라도 그랬을거다로 이해해주기로 합니다. 평범하지 않아서, 어쩔수 없어서, 참아야만 했던 유년시절의 수많은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을 안고 엄마가 되었는데 이게 저절로 엄마가 되었다고 사라지지는 않죠. 사실을 받아들이고 화의 원인을 살펴주면 마음이 어느정도는 보드라워 있을것 같아요. 이론으로 알지만 자신과 진솔한 대화가 부족했음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순간 느낍니다. '그런 환경속에서도 컸다'라는 남편의 드문 칭찬에 목메달고 기다릴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해주는 겁니다. 자주. 진심으로. 내가 나를 진심으로 칭찬하는 힘. 이게 저는 부족한 같다는 생각이 다시 드네요. 성과에 대한 칭찬말고 지난 세월 애쓴 나. 그래서 이만큼까지 이뤄낸 나에 대한 진정한 감사가 '화라는 틀'을 벗어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같아요.

그래서 글도 '부모들이여, 우리나라 교육이 이래저래 하니까. 우린 이렇게 합시다!!!' 하고 선동하는 글보다는 내 자신과 이런 시간을 가져보는 도구로서 글을 자주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번집니다.

이게 먼저 되어야 제가 원하는 미래도 자연스럽게 오겠지요. 




그리고 화 다음으로 나를 옭아매는 생각 '나는 게으르다, 나태하다'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저는 늘 제가 부족하다고만 생각하고 사는 병마에 시달려있습니다. 그 공허함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아요. 아이넷을 낳고 자격증을 10개를 따고 이사를8번해도요. 그래서 이런 딱한 나를 위해 낮에는 '좀 게을러도 마땅한 즉 일상의 게으름을 합리화 할 수 있는 삶의 패턴'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선물해 줬어요. 아무리 피나는 노력을 해도 '나는 게을러, 나는 부족해.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다니...'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자 이 생각을 옹호할 수 있는 삶으로 재편을 하는 것을 택합니다. 즉,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4시간동안 정해진 할 일을 하고나면 나머지는 '덤의 인생'이라 생각하기로 한거예요.  그리고 제 자신에게 주문합니다. 더 이상 '이렇게 게을러도 되나?'라고 생각하지 말것. 이것은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김일성 독재체제'로 만들어진 원가정환경이 준 나를 갉아먹는 비생산적인 생각이니까요. '나는 쉴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편히 쉬어도 된다' '쉬는건 게으른게 아니다' 이렇게 쉼에 대한 죄책감이 몰려올때마다 이렇게 자기선언문이라도 해야할 까봐요. 슬의생의 채송화가 음식 앞에서 '이거 다 내꺼다' '나는 지성인이다'라는 주문을 외우는 것 처럼.


그리고 낮에 쉰다는 저의 말엔 사실 어패가 있습니다. 내가 낮에 '쉬면서 한다는 일 속엔 네명의 아이를 모두 케어하는 일, 그들의 삼식이, 그 중둘의 라이딩하는 일, 첫째 공부를 봐주는 일, 막내와 놀아주는 일 사이사이 책을 읽으려 애쓰고 글쓰기 관련일을 이어가는 것, 또 이 모든 것을 기록하려 한다는 것이 포함되 있으니까요. 그것만으로도 '게으른 일상'이 아니라는 것을 자주 기억해내고 스스로에게 얘기해주면 효과가 있을 것 같네요. 이웃님들이 '대단하세요'라는 댓글을 받으려 그렇게 애쓰고 인별그램하고 글쓰지 말고 내가 내 자신에게 댓글을 자주 달아주어야겠어요. 언젠가 이웃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날도 오겠죠. 이미 글벗님들게 넘치는 인정과 사랑을 받고 있지만 욕심많은 스텔라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한가 봅니다.



이 밖에도 자기제한적인 생각을 하나 둘 떠올리다 보니 고구마 줄기처럼 계속 딸려나오네요.

이거 다쓰려면 책한권이 될 것 같아요.  모두 풀어쓰지는 못하겠고 자기제한사고를 -> 대체사고로 바꾸는 것을 해볼게요.


우리 큰딸이 결국 스스로 잘 해낼 것이다.

이렇게 말할 뿐 마음 속으로는 이것을 믿지 않고 믿는다고 '여겨버리는 것' 같다.

 -> 믿지 못하겠으면 내가 계속 확인하고 체크하는 방법으로 믿음을 한 겹씩이라도 쌓아보자. 하루에 한장의 두께라도 쌓이다 보면 내가 딸을 믿는 믿음의 근간이 되어주겠지.

나는 아이들과 다정다감하게 놀아주지 못해.

->다정다감하게 못놀아주면 '나답게, 과격하지만 재미있고 열정적으로' 놀아주면 되지. 사실, 우리 아이들은 다정다감보다는 '임펙트 있는 놀이'를 좋아할지도 몰라. 다만 놀아주는 시간의 합을 늘려갈 것. 내가 잘하는것을 조금 더 길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나는 쉽게 부자가 될 수 없을꺼야.

->'쉽게' 부자가 될 수 없지. 그럼 '어렵게' 부자가 되면 되잖아.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꿋꿋이 잘 버티고 하루 한발이라도 앞으로 나가고 있으니 결국 부자가 될꺼야. 그리고 내가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부모학교설립'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선한목적은 꼭 결과물로 화답해 줄거야. 

글 써서 크게 성공하기란 힘들어.

->힘든만큼 해낸다면 그만큼 큰 보람이 없겠지. 크게 성공하지 않는다고 안 할 일도 아닌 '평생의 업'이고 내가 따라야 할 궁극의 도(道)이니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나 가보자고

나는 불안증이나 강박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기 힘들어.

->오늘 글 쓰면서 깨달은 방법이 있으니 다시 할 수 있을것 같아.

만약 완벽히 안 되더라도 남은 이 불안감, 강박은 나의 성장동력인 승부욕을 자극해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할 동력, 성공의 밑거름이 되어줄꺼테고




신기하네요. 제가 스스로 낸 주제에 대해 쓸때는 안 나오던 더 심연의 이야기들이 오늘 잘 나옵니다.

사실, 새벽 큐레이션 드리고 나서도 늘 이 브런치라는 공간에 진솔한 나의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해왔어요.

블로그를 놓고 이곳을 선택한 이유도 '그냥 편한 내 얘기 하기 좋은 플랫폼'이라서였는데, 그러면서도 또 나도 모르게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제 마음속에 작용했던것 같아요.

뭔가 시작했으니 브런치로도 성과를 내고 싶었던 마음이랄까. 글이라기 보다는 일처럼 대한거죠.

그런데 새라님의 큐레이션과 오늘의 글 덕분에 글속에 일을 한커플 더 벗겨냅니다. 더 진솔하게 나와 만날 연결도구로서의 글, 내가 사랑하는 본연의 의미로서의 글이 살아나네요.

감사해요! 정성스럽게 주제 큐레이션을 준비해주신 새라님. 그리고 이런 새벽모임을 만든 제 자신도 ^^

앞으로 글에 셀프 칭찬을 꼭 넣기로 했어요. 화의 통을 줄여가고 있는 과정이니 이해해주세요.

내가 내 글쓰면서 누구한테 이해를 바라는 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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