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대회에는 풀마라톤, 하프마라톤, 10km 마라톤, 그리고 가족마라톤까지 네 개의 코스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족마라톤 코스는 단순히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지형을 활용한 게임을 즐기고, 퀴즈를 풀며 걸음을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기록은 아무 의미가 없고 그저 아이와 부모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목적인 코스였다. 나 역시도 기록을 목표로 참가한 것이 아니었기에 여유롭게 달리며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현실의 삶도 가족마라톤처럼 여유롭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끊임없이 달린다.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쉼 없이 내달린다. 마치 오래 달리기를 하는 주자처럼, 발걸음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정작 내가 어디쯤 있는지는 모른 채 그저 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쓸 뿐이다.
그러다 한 번이라도 발을 헛디디거나, 돌부리를 발견한 순간 내 호흡이 고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조금만 더'를 외치며 달리다가도 결국은 바닥에 나뒹굴며 멈춰 서게 된다.
자리에 멈춰서 숨을 고르고, 나를 살핀다. 호흡이 돌아오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린다. 때로는 다시 달릴 생각만으로도 숨이 찬다. 사소하게는 신발 끈을 매는 것조차 ,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두렵다. 마냥 주저앉아, 달리려는 생각조차 미루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쉼 없이 달리고 있을 누군가는 멈춰 선 사람을 비웃을 지도 모른다. 네가 주저앉은 사이 누군가 결승선에 다다르고 있다고 겁을 주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라톤에 참여한 모두가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천천히, 또 누군가는 빠르게 뛰어주어야 부딪히지 않는다. 뻔한 이야기지만 긴 레이스를 완주하는 것만으로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 결국 완주한다면 미뤄진 시간은 무의미하지 않다. 완주를 위해 잠시 멈춰 선 지금, 나 스스로에게 건네는 다짐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