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1년이 다 되어갔을 때였다. 이제 충분히 신혼을 즐겼으니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고, 남편과 그 시기를 논의하려던 날이었다. 그날 남편이 나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남편은 저녁식사가 끝나고 불쑥 통장 하나를 내밀었다. 월급에서 생활비를 각출하고, 용돈을 조금 쓰고, 남는 돈을 모아둔 통장이라고 했다.
"두 달 생활비는 될 거야. 두 달 뒤에 돌아올게."
남편은 직장에 휴직계를 냈다고 했다. 나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나는 배신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악을 쓰며 싸운 날이었다. 나를 아내로 생각하기는 했느냐, 이렇게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었느냐, 묻기도 하고 아주 미친 여자처럼 쌍욕을 하며 나가면 죽어버리겠다고 협박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말은 독백일 뿐이었다. 남편은 내가 출근한 새 짐을 싸서 나가버렸다. 평일 중에 수업이 가장 많은 수요일 저녁이었다. 밤늦게 집에 들어온 나는 어쩐지 서늘한 집 안의 공기에 남편이 나갔음을 알아차렸다.
남편은 정확히 두 달 뒤에 돌아왔다. 돌아온 남편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했다. 직장에도 다음 주부터 복귀할 것이라고 했다. 처음으로 남편이 무서웠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게 말을 거는 저 남자가 내 남편이 아니라 내 남편의 가죽을 뒤집어쓴 괴물인 것 같았다. 내 진짜 남편은 어디선가 살해당하고, 괴물들이 번갈아가며 내 남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남편이 돌아오기 전 매일 분노하던 때가 오히려 나았다. 나는 남편에게 더 이상 묻기를 그만두었다.
남편의 이상행동은 계속되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삼사십 분씩 안 나온다던가 하는 일이야, 없던 변비가 생긴 모양이라고 애써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다 일어나 침대 아래에 웅크리고 있는다던가, 어떤 날은 자다가 뭔가 이상한 기분에 눈을 뜨자 남편이 선 채로 나를 지켜보는 일은 별다른 핑계를 찾아주기가 어려웠다. 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를 지르자 남편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누워서 잠들었다. 이대로라면 나까지 미치는 것도 곧 일터였다. 문제는 이 일에 대해서 상의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마지막으로 남은 가족이었던 홀어머니를 나와 결혼하기도 전에 잃었기 때문에 가족이 없었다. 남편에게는 친구가 많았지만 다 허울뿐인 관계였다. 진탕 술을 마시고 속이야기를 나눌 만한 친구는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남편은 한 번도 술에 취하거나, 말없이 늦게 귀가하거나, 하다 못해 양말을 뒤집어 놓는 것 같이, 내가 잔소리할 만한 일을 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이상한 행동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남자에 대해 반은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이 아니라 십의 일이라도 알고 있을까? 의문이 들었으나 이제 와서 남편의 베일을 걷을 자신이 없었다. 풀 수 없는 문제는 빠르게 포기하고 풀 수 있는 문제에 집중한다. 학생 때부터 들여온 습관이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증상을 외면했다.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크게 문제는 없었다. 남편과 방을 따로 쓰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자주는 아니어도 정기적으로 가지던 부부관계는 아예 사라졌다. 내 몸은 이전처럼 차가워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남편의 옷을 세탁하고, 남편이 먹을 반찬을 만들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 몫의 일을 했고, 생활비도 입금했다. 괜찮은 룸메이트였다.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나를 위안했다.
그렇게 부부로서의 생활보다 룸메이트로서의 생활에 적응할 때쯤 남편이 평화를 깨트렸다. 나와 남편 회사의 부부동반모임에 가던 길이었다. 식당 건물에 자리가 없어 조금 멀리 주차를 하고 걷던 중이었다. 우리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렸지만 남편은 반대편 차량신호에 초록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는 점이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남편은 말릴 새도 없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사람이라기보단 용수철이 튕겨나가는 것 같았다.
과감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목숨은 질겼다. 남편과 사고가 난 차량의 운전자는 어린 학생이었다. 남편이 죽지 않은 것은 그녀가 면허를 딴 지 얼마 되지 않아 빠른 속도로 달리지 않은 덕분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남편은 며칠이 지나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의사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편을 병원에 두고 돌아온, 남편이 없는 집에서 나는 지독한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남편은 몇 번이고 달리는 차에 뛰어들었고 그때마다 죽지 않았다. 살아난 남편은 또다시 차에 뛰어들고, 또 뛰어들었다. 나는 늘 그 옆에 있었다. 단 한 번도 남편을 잡지 못한 채로.
운전을 했던 어린 학생은 남편의 병원에 매일같이 찾아왔다. 이미 보험처리는 완료된 상태였는데도 그랬다. 그 학생은 제 때 서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함께, 왜 하필 내 차에 뛰어들었냐는 원망을 모두 담은 얼굴로 남편을 면회했다. 이 주가 지났을 때, 나는 그녀에게 더 이상 면회하지 않기를 부탁했다. 그녀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으나, 간호사의 말로는 내가 오는 시간을 피해서 남편을 꼭 찾아온다고 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낮의 시간도 무너져갔다. 수업은 엉망이 되어갔고, 몇 번인가 학부모들의 원성을 진정시키던 원장은 결국 나에게 해고통보를 했다. '내가 겪은 일'은 유감이지만, 더 이상은 어렵겠다며 좀 쉬고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어디라도 도망칠 곳을 찾아서 떠나기로 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이 도시였다. 남편과 연관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전의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 도시. 나는 카페를 나서 다시 모텔방으로 돌아왔다. 뜨거운 물에 몸을 씻어내자 잠이 밀려왔다. 삐걱거리는 싸구려침대에 누운 순간, 옆방의 소음을 의식하기도 전에 잠에 빠져들었다. 오랜만의 단잠이었다. 남편의 사고 후 처음으로 꿈을 꾸지 않았다.
**
남편의 사고 후에 같은 팀원들도 몇 번 병문안을 왔다. 대부분이 의례적인 위로의 인사를 건네고 돌아갔으나, 아마도 막내일 듯한 어린 여직원 한 명이 다른 이들이 모두 병실을 나선 뒤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남편의 직속상사이자, 여직원이 속한 부서의 부장에 대한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그저 성격이 조금 까칠한 사람이겠거니, 했죠. 나중에는 잘못 걸렸구나, 알았어요. 하나만 말씀해 드리자면 저는 화장실 가는 횟수, 시간까지 카운트당했어요. 뭐, 남편분한테도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았겠죠."
그 말을 하는 여직원의 눈 주변 피부색이 유난히 짙었다. 그녀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편이 있는 부서는 회사 내에서 업무강도가 높기로 악명이 자자하다고 했다. 돈을 주는 만큼 사람을 부린다는 기업에서 가장 많은 돈을 받는 부서였으니 당연할 일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왜..."
"왜 그만두지 않았느냐고요? 그만둘 법하면, 그 자식이 프로젝트를 하나 따와요. 우리는 덩달아 성과급을 받죠. 또 못 버티겠다, 싶을 쯤이면 엄마가 네가 그 회사 다녀서 엄마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전화가 와요."
남편은 회사일을 자세히 이야기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종종 무슨 프로젝트를 맡았고, 프레젠테이션이 있어서 바쁘다, 정도는 말해줬었는데 언제부턴가 남편은 회사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남편은 대신 나의 이야기를 물었다. 요즘 말 안 듣는 애들은 없느냐, 원장은 이제 속 안 썩이느냐, 하고. 그것도 남편이 이상한 행동을 시작하기 전의 일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여보, 여기 학원에는 나쁜 애들은 없는 것 같아, 속으로 중얼거렸다.
학원의 작은 교실에는 학생이 앉은자리보다 빈자리가 더 많았고, 몇몇을 제외하면 앉아있는 대부분 학생들의 눈에도 열의가 없었다. 이 정도 학원에 보내는 부모라면 아마 아이의 교육에 큰 관심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시간제 강사를 쓰는 작은 학원, 배우기보다는 하교 후 붕 뜬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다. 중학생 때는 잠시 이런 학원에 다닌 적도 있었다. 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내 말에 엄마가 가장 원비가 싼 곳을 알아봐 등록해 줬다. 앳된 얼굴의 강사는 교사용 교재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읊었고, 누가 질문이라도 하면 당황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나는 한 달이 되기 전에 엄마에게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말했지만 그 학원에 오래 다니는 아이들도 많았다.
종종 빈자리에 남편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는 했다. 안개로 만들어진 듯 흐릿한 형체였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곧 피곤해 보이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수업을 하는 일에도 적응했다. 남편이 보이는 날에는 도리어 남편이 나오는 악몽을 꾸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남편이 교실에 등장하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가끔 학생들이 문제를 풀고 있을 때면 나는 남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부장의 얼굴을 상상해보곤 했다. 어린 여직원에게 화장실 갔다 오는 횟수를 보고하게 하는 사람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눈으로, 어떤 표정으로 나의 남편을 바라보았을까, 아무리 그려보려 해도 사람의 형태로 얼굴을 그릴 수 없었다.
아무리 창문을 열어도 빠지지 않는 모텔방의 담배냄새와 학원 엘리베이터의 냄새가 익숙해질 때쯤, 학교의 방학이 찾아왔다. 방학식 날 수업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오지 않았다. 원장은 원래 방학식날은 결석이 많다고 귀띔해 주었다. 수업에 나온 것은 첫날부터 눈이 가던 여학생 한 명을 포함해 세 명뿐이었다. 남편을 포함하면 넷이었다. 그날은 남편이 교실에 있었는데도 악몽을 꾸었다. 평소와 다른 꿈이었다.
남편과 나는 안개가 가득한 숲 속에 와 있다. 바로 앞의 사물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득한 안갯속에서 나는 먼발치에 있는 남편을 향해 계속 달려간다. 아무리 달려도 남편은 가까워지지 않고, 남편 주변의 안개는 점점 더 짙어져 간다. 나는 나뭇가지에 몸이 긁히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만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 내 몸에는 피가 나지 않는데 사방에는 비릿한 피냄새가 난다. 나는 그 냄새가 남편의 것인가 하여 달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나는 계속 달린다. 그래도 남편은 잡히지 않는다.
안갯속에서 나를 꺼낸 것은 병원에서 온 전화 벨소리였다. 이미 부재중이 여러 통 찍혀있었다. 급히 병원으로 와달라는 연락이었다. 나는 정신없이 남편에게로 달려갔다. 어쩌면 꿈에서 깨지 않은 것도 같았다. 안개 대신 수많은 신호등이 나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래도 나는 계속 갔다. 남편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