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작은 학원이었다. 아마도 근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만 다닐 것 같은, 누구라도 부러 찾아올 일은 없을 것 같은 곳이었다. 마찬가지로 작고 오래되어 보이는 정형외과와 입구를 같이 쓰는 지라 건물을 찾는 사람 중에 학생들보다 노인들이 더 많아 보였다. 허리가 다 꼬부라진 할머니 세 명과 나보다 체구가 작은 할아버지 한 명이 먼저 타 있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5명이면 꽉 차는 직사각형의 공간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쿰쿰한 냄새가 났다. 2층의 정형외과에서 노인들은 모두 내렸다. 학원은 3층이었다.
이곳이라면 내가 머무르기에 마땅해 보였다. 원장은 내가 출력해 온 이력서를 펄럭거리며 읽었다. 아마도 지금 처음 읽어보는 듯했다. 학원 원장이라기엔 다소 허름한 행색에 까무잡잡한 얼굴을 한 사내에게서는 멀리 앉아있는 데도 담배 냄새가 풍겨왔다. 원장은 내 이력서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런 명문대를 나오셔서 왜, 저희 학원을요? 경력도, 흠, 꽤 있으신데요."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난 체, 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지겨운 듯이 말했다. 뭐든 남보다 더 좋은 것을 가져야 하는 아이였다고. 흥미가 있었던 국문학 대신 경영학을 선택한 것도 허영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나는 책을 손에 쥐면 쉽게 놓는 법이 없었다. 20평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빌라에 네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우리 집 형편이나, 형편보다도 더 초라하게 보이는 부모, 공부에도 영 취미가 없으면서 허약하기까지 한 남동생은 내 허영심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 모든 것들의 도피처는 책이었다. 나에게 어울리는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언젠가 이 작은 빌라에서 탈출하는 날을 꿈꾸었다. 다만 어린 나는 국문학을 전공해서는 많은 돈을 벌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서 내가 택한 것이 경영학이었다. 잠이 올 때면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어가면서, 그래도 안되면 뺨을 때려가면서 밤을 새웠다. 다행히 그 해 수능에서 나는 내가 본 시험 중 최고의 성적을 받았다.
내 이름이 고등학교 교문 앞에 걸리고, 기숙사 배정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꿈에 부풀어 올랐다. 그 꿈이 깨지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이 사람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나는 그저 씩 웃으며 원장이 쉽게 받아들일만한 대답을 했다.
"결혼했거든요, 남편 직장이 이 쪽이라."
내 말이 끝나자마자 원장은 화색이 되더니, 내가 온 이후로 죽 노상 의자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아이고, 그렇죠. 집에서 쉬엄쉬엄 다니시기는 좋지. 우리 학원이. 나도 결혼하셨다니까 아주 마음이 놓이네. 젊은 아가씨들은 툭하면 그만둔다 말이 많아서……."
"네에, 그렇죠."
"그래, 그러면 언제부터 나올 수 있어요?"
일사천리로 출근이 결정되고 강의실을 좀 둘러봐도 되겠느냐고 묻자 원장은 시설이 좋진 않을 것이라며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수업이 없는 강의실에는 냉기가 감돌았다. 벽에는 오래전부터 쌓여온 듯한 낙서가 가득 차있었다. S.E.X. 혹은 섹스. 저 나이 때 아이들은 왜 저렇게 저 단어를 좋아하는 걸까? 저 단어를 뱉는 것 만으로 금기를 깨는 기분이 들어서일까? 벽에 낙서를 한 적은 없지만 나도 처음으로 관계를 가지기 전에는 종종 상상해보곤 했었다. 동기언니가 은밀한 목소리로 천국에 미리 가보는 기분이라고 묘사했었던 것을 떠올리면서.
기대에 비하면 처음 사귀었던 남자와의 잠자리는 형편없었다. 동기가 묘사했던, 그 정도의 감동은커녕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뛰고 난 뒤의 개운함만큼도 없었다. 그는 관계 후 선혈이 비치지 않자 너, 처음 맞아? 하고 멍청한 소리를 해서 안 그래도 차갑게 식은 내 몸을 한 번 더 식게 만들었다. 첫 관계라는 것에 크게 의의를 두지는 않았지만 기왕이면 다른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몇 명의 남자를 더 만나고, 동기언니가 말한 천국에 대해 잊어갈 때쯤 남편을 만났다. 바로 그 동기언니의 소개였다. 동기언니는 남편을 K대를 나와 S기업에 다니는 엘리트라고 소개했다. 그런 이가 나를 왜 만나겠는가 하고 묻자, 언니는 머쓱한 얼굴로 그가 홀어머니를 부양하느라 모은 돈이 거의 없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어서 그 홀어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셨고, 그는 S기업에 다니고 있으니 몇 년만 있으면 자리를 잡지 않겠느냐고 말하며 눈을 찡긋거렸다. 언니의 말속에 홀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속뜻이 들리는 듯하여 잠시 거북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다행이기는 다행이었다.
남편의 외향은 내 취향과 거리가 멀었으나 그 외의 것들은 내가 바라 마지않던 것들 뿐이었다. 남편은 똑똑했고, 조금은 교활하기도 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세련되게 포장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티 나지 않게 부풀리며 말할 줄 았았다. 아무 날이 아니어도 가끔씩 분위기 좋은 식당을 예약했고, 소소한 선물을 하는 센스도 있었다. 남편과의 관계는 천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몸을 데우기는 했다.
우리는 만난 지 반년이 되지 않았을 때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 쪽 가족이 없었고 우리 가족들에게는 내가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 외에 아무런 관여를 하지 말라고 못을 박았기에 준비과정이 복잡하지는 않았다. 대부분 내가 가진 돈으로 신혼부부들이 많이 산다는 깔끔한 빌라에 전세를 얻었다. 남편은 빚을 좀 더 져서라도 아파트로 가야 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나는 빚지는 것이 무서웠다.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다섯 개의 신용카드를 돌려 막아가며 생활하던 엄마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더 악착같이 수업에 매달렸다.
학원강사의 길로 뛰어든 것은 이전에 동아리를 같이 했던 친구의 제의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잘만하면 직장인들보다 훨씬 더 번다는 말로 나를 유혹했다. 마침 자신이 있는 학원에 국어 과목 강사자리가 났다고 했다. 내가 나는 국어 전공자도 아닌데 괜찮냐고 묻자 친구는 이 동네 엄마들은 전공보다는 학교를 본다는 말로 대답했다. 그때 나는 몇 십 개의 이력서를 작성하고 또 몇 번의 면접을 봤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몹시 초조했었던 터라 그의 말이 너무나 솔깃하게 들렸다.
작은 학원 풍경을 보자 잠시 옛날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시시한 감상에 사로잡힐 이유가 없었다. 어찌 됐든 이제 이곳이 나의 일터였다. 이제 잘 곳이 필요했다. 혹시 몰라 학원에서 가능한 멀리 위치한 곳의 숙박업소를 선택했다. 행복모텔, 이름과는 달리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 중년의 여성이 카운터에 앉아있었다.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기미와 진한 립스틱 색조에도 숨겨지지 않는 입술의 각질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직업적 습관인지 고개도 들지 않고 물어왔다.
"혼자예요?"
"네, 좀 오래 묵으려고 하는데요."
"얼마 나요?"
오래라는 말에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한 달 이상 있을 거라는 말에 여자는 반가운 기색이었다.
"출장 나오셨나 보죠? 그럼 방 구경 좀 시켜드릴게."
"네, 아무 데나 괜찮아요."
모텔 방 안은 허름한 외관보다 더 허름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갔을 침대시트는 얼룩덜룩했고, 담배냄새가 코를 찔렀다. 여자는 내 표정을 의식한 듯 변명했다.
"으응, 금연인데 꼭 말을 안 듣는 사람들이 있다니까. 창문 열어놓으면 냄새 빠질 거예요. 수건이나 물 같은 건 더 필요하면 나한테 말하고, 청소는 낮에 해줄 거예요."
더 나은 잠자리를 찾을 수도 있었지만 부러 그러지 않았다. 모텔방에 대충 짐을 풀어놓고 침대에 앉자 속이 아려올 정도로 배가 고팠다. 더 이상 굶는다면 제 기능을 하지 않겠다고 온몸이 항의하고 있었다. 커피라도 마시려 찾아간 카페에는 가족단위의 손님들이 가득했다. 달갑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았다. 자리에 앉아 벨이 울리기를 기다리는데 옆자리에 앉은 대여섯 살 돼 보이는 아이와 엄마의 대화가 귀에 들려왔다.
"당근케이크 안 먹는 거 보니까 너 여섯 살 아니구나."
"맞아요, 저 여섯 살 아니에요."
"너 그럼 다섯 살이네?"
"아니에요, 저 다섯 살 아니에요."
여섯 살이 아니면 다섯 살이라는 것을 몰랐는지, 아이는 서럽게 울었다. 아이엄마는 다시 아이를 달래면서 그래, 그럼 너 일곱 살 해, 하고는 깔깔 웃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케이크를 우물우물 씹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자 순간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상실의 감정으로 나는 또 속이 메슥거렸다. 가진 적이 없으니 상실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을 텐데, 아이만 보면 왜 가진 것을 빼앗긴 듯한 기분에 빠지는지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