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온 시간

by 시은


집으로 귀가할 때면 매일 습관처럼 우편함을 확인하지만 크게 중요한 우편물이 오는 일은 없었다. 중요한 소식이라고 해도 메신저나, 조금 성의를 더한다면 전화, 이메일을 통하는 시대다. 우편함에는 기껏해야 관리비 청구서나 광고물 정도만이 들어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오랜 습관 때문인지 남편과 나는 늘 귀가할 때면 한 번씩 우편함을 들여다보곤 했다.

우편함에서 청첩장을 발견한 것은 평범한 평일 오후였다. 하얀 봉투에 정갈한 글씨로 적힌 우리 부부의 이름. 발신인은 처음 들어보는 성과 이름이었다. 김민준, 박소영. 그럴듯한 이름들이지만 내 기억 어디에도 걸리는 구석이 없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인 모양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요즘 누가 우편으로 청첩장을 보내?"

남편이 청첩장을 받아 들며 중얼거렸다. 얼마 만에 받아보는 우편 청첩장인지, 만약 아는 사람에게 온 것이라면 반가웠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르는 이에게 온 청첩장이라니 선뜻 반가워할 수는 없었다.

"누군지 정말 모르겠어?"

남편에게 다시 물었지만,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남편과 내가 함께 아는 누군가. 아무리 세월이 기억력마저 낡게 한다지만 둘 중 한 명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이상했다. 청첩장은 분명 우리 부부 앞으로 왔고, 주소도 정확했다. 아이들을 독립시키고 십 년이 넘게 살아온 아파트긴 했지만 주소를 정확히 아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일단 가지고 들어가자. 나중에 기억이 날지도 모르니까."

남편의 말대로 청첩장을 가지고 들어와 거실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상하게도 그 하얀 봉투가 자꾸만 시선에 들어왔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TV를 보면서도, 그 청첩장이 거기 있다는 사실이 계속 신경 쓰였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청첩장이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도 비슷한 모양이었다. 가끔 청첩장을 집어 들고는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그냥 한 번 가볼까?"

결국 결혼식 전날 밤, 남편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모르는 사람인데... 가도 될까?"

"혹시 정말 잊고 지냈던 지인일 수도 있잖아. 예전에 가르쳤던 제자라던지."

제자일 리는 없었다. 기껏해야 5년의 교사 생활이었고, 그 기간 동안 가르친 아이들의 이름이 아직도 훤했다. 무엇보다 그 아이들이 우리 집 주소를 알 방도가 없었다. 그럼에도 결혼식에 가보자는 의견에는 찬성이었다. 결혼식에 가지 않은 채로 날이 지나버리면 우리가 품은 이 미심쩍은 감정이 영영 지속될 것 같았다.

결혼식장은 시외에 위치해 있었다. 이런 곳이 있었나, 싶었지만 막상 도착하자 번듯한 건물에 주차장도 널찍했다. 토요일 오후답게 날씨는 쨍했고, 차려입은 하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결혼식 풍경이었다.

식장 안에 들어서자 낯선 고요가 우리 부부를 덮쳤다. 결혼식장이라면 당연히 하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반가운 인사소리로 가득 차 있어야 하건만, 하객들의 표정이 어딘가 무표정했고, 대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 신랑 측이세요, 신부 측이세요?"

얼떨떨한 기분으로 뽑아간 돈을 봉투에 넣어 축의대로 다가가자 축의대에 앉은 이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그중 신랑 쪽에 앉은 여성이 먼저 말을 건넸다. 그녀는 부자연스럽게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었다. 나는 남편을 쳐다봤고, 남편은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신랑 쪽입니다."

아마도 말을 걸어온 여성이 신랑 쪽이라 그렇게 대답한 듯했다. 우리는 축의를 낸 후 신랑 측 자리 뒷줄에 앉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나 익숙한 얼굴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라도 인연이 있었다면 함께 아는 하객이 있을 법도 한데,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이상한 점은 더 있었다. 양 측을 가득 메운 하객들이 모두 가만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도 서로 인사를 나누지 않았고, 휴대폰을 보는 사람도 없었다. 실내 온도도 지나칠 만큼 추웠다. 바람은 느껴지지 않았는데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쌀쌀했다. 남편도 나와 같은 느낌인지 재킷을 여미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좀 춥지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주변 사람들은 추운 기색이 전혀 없어 보였다. 우리 부부만 이상하게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다.

식이 시작되고 사회를 맡은 남성이 건조한 목소리로 신랑 신부의 입장을 알렸다. 동시입장하는 부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숨이 막혔다. 신랑 신부의 얼굴이 너무나 낯익었다. 아니, 낯익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았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20년 전 우리가 결혼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남편도 충격을 받았는지 내 손을 꽉 잡았다. 그의 손바닥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고 그들을 다시 바라봤지만 착각이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20년 전 우리와 똑 닮은 남녀가 행진하고 있었다. 그때부터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식을 지켜봤다. 부부는 우리와 똑같은 서약을 했고, 똑같은 반지를 끼웠다. 심지어 신부의 드레스 스타일까지 내가 입었던 것과 비슷해 보였다. 우연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모든 게 꿈은 아닐까? 우리는 식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자리를 뜨려 일어났다.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가 막 몸을 일으킨 순간, 아까 축의를 받았던 여성이 우리를 붙잡았다. 분명 우리 근처에 보이지 않았는데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까 식권, 안 받아가셨죠?"

그녀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식권을 내 손에 건넸다.

"식사 꼭 하고 가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꼭 붙잡았고, 아플 정도로 느껴지는 압력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연회장은 평범했다. 아마 다른 식의 하객들도 같이 연회장을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평소라면 귀에 거슬렸을 소음이 반갑게 들려왔다. 삼삼오오 모여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 뛰어다니는 아이들 소리가 우리 부부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긴장이 풀리자 배가 고파왔다. 우리는 정신없이 뷔페 음식을 퍼담았다. 아까의 기묘한 순간들이 잊힐 만큼 급격한 허기가 밀려들어왔다.

남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우리는 밀린 숙제를 해치우는 것처럼 정신없이 음식을 입에 밀어 넣었다. 그때 신랑 신부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가까이서 본 그들의 얼굴은 더욱 선명했다.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 있다면 어떨까, 어릴 적 했던 터무니없는 상상이 현실이 된 기분이었다. 즐거웠던 상상과 달리 현실에서 젊은 시절의 나를 마주하는 것은 불쾌를 넘어 소름 끼치는 경험이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부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 목소리마저 내 목소리와 닮아있었다. 신랑도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20년 전 남편의 어색한 미소를 그대로 닮아있었다.

"축하합니다."

겨우 그 말만 내뱉을 수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죠? 우리를 왜 초대한 거죠? 묻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쩐지 떠오르는 말을 모두 뱉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신랑 신부는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하고 다른 하객들에게로 향했다. 우리는 그대로 식장을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우리 결혼식 때 사진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서랍에서 오래된 결혼앨범을 꺼냈다. 펼쳐놓고 보니 정말 사진 속 우리와 오늘 본 신랑 신부는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이상해."

남편이 중얼거렸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상하다는 것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청첩장을 다시 들여다봤다. 김민준, 박소영. 여전히 모르는 이름들이었다.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제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결혼식은 끝났고 이제 우리가 그 부부를 볼 일은 없을 터였다. 남편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더 이상은 그날의 일을 화제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부부의 결혼식은 한나절의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며칠 후 새벽 가볍게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편함에 새로운 봉투가 들어있었다. 봉투 앞면에는 "訃"라는 글자가 검은색으로 적혀있었다. 부고장이었다.

봉투를 뜯는 순간 손이 떨렸다. 청첩장을 받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訃告 故 김민준(享年 28세) · 故 박소영(享年 26세) 두 분께서 1995년 10월 23일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장지 : ○○추모공원 부부 합장 삼가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1995년 10월 23일. 그 날짜가 머리를 치듯 떠올랐다. 신혼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의 기억이 쏟아져 내렸다.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보내고, 공항으로 가던 길이었다. 렌터카 조수석에 앉아 남편의 운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간 남편과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는 길은 그저 달콤했다.

신혼의 단꿈이 깨지듯,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승용차 한 대가 중앙선을 넘어왔다. 그 차 안에는 젊은 남녀 한 쌍이 타고 있었다. 운전석의 남자는 조수석 여자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여자 역시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운전자의 주의가 산만해진 탓에 차는 좌우로 흔들리며 위험하게 중앙선을 침범하고 있었다.

"조심해!"

나는 소리쳤고, 남편은 앞차를 향해 클랙션을 울렸지만 이미 늦었다. 우리 차는 가드레일을 박고 전복됐고, 맞은편 차는 가로수에 박혀 완전히 찌그러져 버렸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었다가 깼고, 남편은 갈비뼈가 부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있었다.

"상대 차에 탄 분들은 즉사했습니다."

현장을 수습한 경찰의 말이 지금도 귀에 생생했다. 젊은 신혼부부였다고 했다. 우리와 비슷한 나이의.

그 사고 이후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몸도 예전 같지 않았지만 우리는 살고 그들은 죽었다는 죄책감인지 불편함인지 모를 감정이 매일 나를 괴롭혔다. 남편은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 뒤로 운전대 잡기를 망설였다. 행복했던 신혼여행은 우리 사이에서 다시는 언급할 수 없는 여행이 되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모든 걸 흘려보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기억은 풍화되었고 우리는 어느새 그날을 잊고 살아왔다.

한참 그날을 떠올리고 있는데 부고장 뒷면에 적힌 작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맡겨드린 삶을 돌려받고자 합니다.'

일순간 소름이 돋은 나는 부고장을 들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에게 부고장을 어서 보여줘야 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먼저 서랍 안에 있던 청첩장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남편을 깨우려던 손을 멈췄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창밖을 보니 동이 트고 있었다. 평범한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열린 커튼 사이로 햇살이 비춰왔다. 햇빛을 맞으며 손에 들린 봉투를 오래도록 바라봤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언제까지일까. 창문을 활짝 열어 공기를 들이마셨다. 봉투가 작별인사라도 하듯이 바람에 살랑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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