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본집단

by 시은


그 소리가 처음 들린 건 수십 번째 반복된 면접에서 또다시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이었다. 차라리, 서류에서 떨어졌더라면 저들이 나를 몰라본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었을 텐데. 면접 전까지의 과정은 어렵지 않게 합격했다가도 꼭 최종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는 일이 반복되자 점점 땅굴을 파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온종일 집에 누워서 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일은 고역이었다. 교정을 안 해서 웃을 때마다 눈에 띄는 송곳니가 문제일까, 다이어트를 좀 더 해야 했나, 아니면 긴장하면 말을 흐리는 습관이... 그런 식으로 나를 헐뜯을 궁리만 하다 보니 어느새 나라는 인간에 대한 혐오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줄 줄도 안다는 말이 있다. 그러고 보면, 썩 사랑받아 본 기억은 없다. 대학에 들어간 뒤로 연락이 뜸해진 동창들, 데면데면했던 대학 동기들, 아르바이트에서 알게 된 지인들 모두 카카오톡에 생일이 뜰 때마다 기프티콘을 보내고 정성스레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정작 내 생일에는 각종 브랜드의 마케팅 메시지와, 엄마의 카톡이 다였다. 엄마도 그렇다. 동생의 생일에는 파티다, 뭐다, 소란을 피우면서 내 생일에는 고작, 고작 카톡이었다. 그 카톡도 본인이 나를 낳을 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는, 생색이 듬뿍 담겨있었다. 엄마의 차별은 늘 있었다. 기억이 없는 어린 시절부터 그랬을 것이다. 차별은 정서적인 면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이어졌다. 그럴싸한 전세방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용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닌 동생과 달리 내게는 원룸 보증금 500만 원이 지원의 전부였다. 엄마는 변명인지 생색인지 모르게 그때는 생활이 어려워서 그마저도 큰돈이었다며, 그리고 너는 대학이 좋으니, 과외라도 해가며 다니면 되지 않느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엄마가 뱃속에서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 좋은 머리를 물려받은 건 내 쪽이었다. 큰 키, 자연으로 생긴 깊은 쌍꺼풀. 어쩌면 유전적으로는 내가 더 혜택을 받았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큰 키 때문에 덩치가 더 커 보여 핀잔을 듣기 일쑤고, 쌍꺼풀은 동생이 수능을 보자마자 엄마가 강남에서 만들어주었으니 결국 남은 건 좋은 머리뿐이다.

서론이 길었다. 옛날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다. 지금 중요한 건 엄마가 준 그 보증금 500만 원, 그 돈으로 구한 내 유일한 보금자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는 거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도착한 '귀하의 역량은 우수하오나..'로 시작되는 탈락 문자에 맥이 빠졌다. 역량이 우수하면 뽑으란 말이다, 부아가 치밀었다. 로또를 사고 결과를 확인할 때마다 당첨이 안 될 걸 알면서도 매번 기대하고 실망하는 것처럼, 나는 끝없는 실패에도 마음을 거두지 못했다. 그날따라 일이 고됐었다. 몸은 피로하고, 정신은 그보다 더 지쳤다. 엄마에게 학습된 결벽 탓으로 씻지 않고 침대에 누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즉시 씻을 기력은 없었다. 인터넷에서 너무 피곤할 때 바로 씻으면 위험하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나는 것도 같았다. 내 행동에 대한 핑계를 찾으며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온기 없는 바닥이지만 따질 새도 없이 잠에 들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소곤거리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티브이를 튼 기억은 없는데... 고개를 들자, 소리는 멈췄다. 꿈이었나, 생각하고 다시 고개를 내리자, 소리가 계속됐다. 바닥에서 나는 소리였다.

층간소음이라고 해야 하나? 아래층에서 말하는 소리가 이렇게 잘 들린다고? 이 집에 사는 3년 동안 한 번도 층간소음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두 번이나 계약을 연장한 건 건물이 몇 채나 있다는 집주인이 한 번도 월세를 올리지 않았기 때문도 있지만 계속해서 바뀌는 주변 이웃들이 모두 조용한 사람이었던 때문도 있었다. 최근에 누가 새로 들어오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건물이 워낙 낡았으니 옆집이고 윗집이고 소리가 들릴 법한데도 늘 이 건물은 조용했다. 처음부터 설계가 잘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소리는 뭐란 말인가. 너무나 선명하게 사람의 말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계속 결과가 개선되지 않아요... 아무래도 폐기처분 해야겠네요..."


무슨 대화인지 모르겠지만 젊은 남자와 늙은 여자의 목소리 같았다. 집주인에게 전화를 해봐야 하나. 그렇다기엔 바닥에 귀를 대지 않으면 안 들리는 소리였다. 살면서 바닥에 귀를 붙이고 있을 일이 얼마나 있을까, 이 소리를 들어보라고 집주인더러 바닥에 누우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괜히 그런 번거로운 일을 시켰다가 집주인이 마음을 바꿔 월세를 올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부동산 아저씨는 아마 집주인은 이 건물이 자기 건물인 것도 잊고 사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건물 관리도 썩 잘되고 있지는 않지만, 주변 시세보다 월세가 한참이나 낮다. 취직이 되기 전까지는 이 방에 꼭 붙어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저 무시하기로 했다. 바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다음 날도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신경이 곤두서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지만, 점차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에 익숙해졌다. 그들의 목소리는 낮고 단조로워서, 마치 ASMR처럼 들리기도 했다. 나는 그 목소리들과 함께 숙면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옆집 여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딱히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내 또래에, 늘 피곤한 표정을 한 여자였다. 뭐, 만성피로 하나쯤 안 가진 20대가 있으랴. 별로 눈에 띄는 점은 없어 보이는, 그냥 나랑 비슷한 사람이었다. 아르바이트를 가려 집을 나서는 길에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계약할 때 보고 본 적 없던 젊은 집주인이 곤란한 표정으로 그녀의 집 앞에 서 있었다.

나를 발견한 그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며 당분간 좀 시끄러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들이 몇 가지 질문을 던져왔지만, 인사 한번 나눈 적 없는 사이에 해줄 말은 없었다. 택배가 잘못 와서 옆집에 갖다 준 적은 있지만, 그런 얘기가 궁금하진 않을 것 같았다. 집주인은 이달 월세는 받지 않겠다며 부동산에 말해놓겠다고 선심을 쓰듯 말했다.

그녀의 죽음으로 인한 애도의 감정은 이달 월세가 사라진 기쁨으로 금세 사라졌다. 그런 줄 알았다.

그날부터 옆집 여자가 자꾸 꿈에 나왔다. 언제나 죽은 모습이었다. 한날은 목을 매달아 죽어 있고, 다음날은 칼에 찔려 죽어 있고, 어제는 물에 빠져 죽어 있고... 생기 없이 축 늘어진 팔과 핏기 없는 얼굴이 곧 내 모습이 될 것 같은 불안함이 문득 들기도 했다.


의문의 목소리도 계속됐다.


"수치가 불안정해요. 감정 기복이 심하고..."

"다른 개체가 폐기된 게 영향이 있을까요?"

"글쎄.."


이어서 평소와 다른 대화가 들려왔다.


"이 개체는 청각이 유난히 발달했네요."

"응? 설마 우리 소리를 듣는 건 아니겠지?"

"아니에요, 불가능해요.."

"그래도 한 번 확인해 봐. 주파수를 낮춰."


그 순간 목소리가 갑자기 작아졌다. 나는 더 귀를 기울였지만,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잠깐 후 다시 목소리가 선명해졌다.


"역시 못 듣고 있어요, 그런데 뇌파 패턴이 이상해요. 뭔가를 들으려고 집중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화들짝 놀라 바닥에서 머리를 들었다. 설마 나를 관찰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앞의 대화도 어쩐지 나와 옆집 여자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의도적으로 바닥 소리를 듣지 않으려 애썼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거나, 일부러 소리를 내며 돌아다녔다. 하지만 고요한 순간이 오면 나도 모르게,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스트레스 수치가 더 올라갔어요. 뭔가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혹시 환각이나 환청 증상이 나타나는 건 아닐까요? 고립된 환경에서 오래 지내면 그런 일이..."

"가능성이 있지. 모니터링을 강화해 보자."


환각? 환청?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설마 내가 정말 이상해진 건 아니겠지. 연이은 취업 실패, 고립된 생활, 우울감... 청년들이 '불미스러운 일'을 겪을 때면 뉴스에서 자주 나오는 사유들이었다. 내게 해당하지 않는 항목이 없었다. 외려 이런 환경에서 죽지 않는 내가 이상한지도 몰랐다. 이쯤 되면 정신과에라도 가봐야 하나 싶었지만, 그럴 돈도 여유도 없었다. 아니라고들 하지만 정신과 병력이 취업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내 불안정한 심리와 달리 면접 결과는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아직 최종으로 붙은 곳은 없었지만, 면접관들의 반응이 예전보다는 좋아지고 있었다. 질문도 많아지고, 내 대답에 긍정적 호응이 돌아왔다. 바닥의 소리는 여전했다. 그 소리가 들린 후로 일이 잘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유튜브에는 듣기만 하면 원하는 일을 이뤄준다는 주파수 영상이 가득하다. 인기 영상은 조회수도 100만 회를 넘어가곤 한다. 다이어트 주파수, 짝남이 돌아오는 주파수, 잠이 잘 오는 주파수 등등... 황당무계한 이야기 같지만 나도 취업이 잘되는 주파수를 들었던 적이 있다. 어쩌면 내게도 주파수는 아니지만 행운의 소리가 들리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긍정적 변화가 감지되고 있어요."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도 조금씩 떨어지고 있고. 좋은 신호네."

"환경 조정이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조금 더 지켜보자."


꼭 내 얘기 같은 대화를 들을 때마다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망상이 지나쳤다. 혼자 사는 백수에게 그런 일이 벌어질 리 없다. 취직에만 성공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이다. 만약 이 목소리가 진짜인들 어떤가, 이들은 엄마보다도 내게 상냥한 것 같은데 말이다.

어김없이 행운의 목소리를 듣다 잠든 어느 날 아침, 휴대전화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A건설 인사팀입니다. 혹시 아직 취업 준비 중이신가요?"

"네? 네! 준비 중입니다!"

"저희가 추가 서류 검토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면접 기회를 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가장 가고 싶었던 회사였다. 무엇보다 사택을 제공해 준다는 점이 내 마음을 이끌었다. 바닥의 소리 따위는 신경 쓸 틈도 없이 면접 준비에 매진했다. 아르바이트도 하루 빼고 온종일 면접 문답을 연습했다. 칼각을 세운 정장을 입고 참석한 면접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연극무대 같았다. 나는 사랑받는 여주인공이었다. 학예회 수준이라고 해도 관계없다. 주인공이 돼본 게 얼마 만인가. 면접이 끝난 날 오랜만에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 연극은 해피엔딩이었다. 합격 통보를 받고 가장 먼저 전화를 건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 나 붙었어!"


엄마도 이번만큼은 기뻐해 주었다. 비록 마지막에는 동생이 성과급을 받았다는 자랑이 함께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엄마와 언성을 높이지 않고 통화를 마쳤다. 비죽비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엄마 다음은 집주인이었다. 그는 이삿날에 맞춰 보증금을 반환해 주겠노라고 별 미련 없이 답했다. 젊은 나이에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그의 배경이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벌써 사원증을 건 내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이사 갈 준비를 해야 했다.


이사 당일, 마지막으로 바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이제 이 소리도 마지막이라고 하니 괜히 아쉬운 기분마저 들었다. 인사라도 나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엉뚱한 상상까지 했다.


"3번 개체... 케이지 이동 예정... 찍.."


그리고, 전기가 나간 것처럼 소리가 뚝 끊어졌다. 찍, 하는 기계음이 마지막이었다. 어깨를 으쓱했다.

짐을 모두 챙기고 밖으로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누가 위에서 나를 들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짐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몇 년간의 짐을 다 실어도 1톤 트럭은 한참 여유가 있었다. 아까 그런 소리를 들어서인지 마지막으로 바라본 빌라의 모습이 꼭 커다란 케이지처럼 보였다. 꼭대기 집 남자가 창문을 열고 빼꼼 나를 바라봤다. 나는 괜히 들뜬 기분에 손을 흔들었다. 쨍한 햇살이 비쳐 그의 표정은 보지 못했지만, 오늘만큼은 그가 내게 침을 뱉어도 웃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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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번 개체 이동 완료, 신규 개체 이동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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