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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하룻 Mar 19. 2024

절은 떠나는 중을 개의치 않는다.

나만 언쿨, 다 쿨 


퇴사를 상상하며 그려보는 장면은 그 유명한 퇴사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처럼 부러움의 시선을 받는 홀가분한 장면일 것이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상상해 보자면 수고했다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동료들과의 끈끈한 이별 장면 정도가 있겠다.

나의 현실에서 퇴사 장면은 상상과 달랐다. 퇴사는 철저히 개인의 영역이었다. 기대가 없었는데도 실망스러울 느끼는 감정을 뭐라고 표현할 있을까? 남의 결혼식, 남의 자식 돌잔치처럼 남의 퇴사도 잠깐의 공감과 유대를 보이고 거두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조촐하게 송별회도 했고 각자 바쁜 와중에 짬을 내 인사도 나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에 내어놓은 마음이 너무 커 누군가 함께 질척여주길 어쩌면 간절하게 기대했던 것 같다.

 



우리는 직장이라는 사회에서 만나, 인생의 한 기간 동안,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 같은 목표를 설정하여 성취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며 희로애락을 함께할 수밖에 없는 '공동체'가 된다.  좋든 싫든 팀원이 되면 상사를 믿고 따르는 것이 보통이며, 상사도 부하 직원들을 재량껏 챙겨주는 것이 도리라고 여긴다.

나는 공동체에 잘 속해 있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아끼는 후배야'또는 '너 하나는 내가 챙겨줄게'와 같은 말들이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 그 말을 책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은 감복하여 마음으로 충성을 맹세하곤 했다.

어설프더도 우리가 나름의 공동체가 되었다면 퇴사하는 내게 조금 더 충실한 위로와 박수를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나를 가장 아낀다던 상사는 나의 마지막 날 외근으로 회사를 비웠다. 모두가 각자 일로 분주했고 내게 찾아온 씁쓸함, 아쉬움, 허무함과 같은 쏟아지는 감정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나는 공동체에 속해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서로에게 도움이 될 때, 기쁘고 좋은 일은 앞다투어 나누었던 '우리'라고 생각했던 사회가 돌아서는 순간 남이 되는 것을 경험하며 나는 낯선 고립감을 경험했다.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홀가분해지려 애써 노력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회사서 가져온 짐과 나를 조금 정돈하고 나니 곧 남편이 왔다. 작고 귀여운 보라색 꽃다발을 주며 고생 많았다며 꼭 안아주었다. 지치고 다친 마음에 새살이 돋는 듯했다.


그 귀여운 꽃다발은 더 귀여운 우리 집 고양이가 목을 똑똑 끊어 먹어 절반이 참수당한 채로 다음날 아침 발견되었다. 그걸 보니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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