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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희 Apr 08. 2024

시어머니와 며느리

4.


시어머니는 나와 자주 통화를 하면서 집안 자랑을 자주 하시곤 했다.


“ 우리 집안 사람들은 겁나 훌륭한 사람이 많어야, 검사도 있고 저기저기 큰 절에 스님도 있고, 목사님도 있어분당께.”


처음엔 ‘아-그렇구나’하고 지나치곤 했지만, 어머니의 지나친 집안 자랑에 남편에게 물어봤다.


“ 대체 자기 집안 누가 검사에 주지스님에 목사님이라는 거야? 나 한번도 못 뵈었던 것 같은데.”


“ 아, 나도 살면서 한두번 봤나? 먼 친척있어. “


아, 먼 친척…ㅠㅠ






어느 날.

그 날도 어머니는 집안 자랑을 했다.


“ 우리 집안 사람들은 다 공부도 잘 하고, 검사도 있고, 저기 절에 주지스님도 하고, 목사님도 있다니께. 너거 딸도 우리 집안 사람이니 분명히 똑똑할 것이다. 느그 친정 집엔 이런 사람이나 있냐.”


나는 거의 어머니 얘기만 듣느라 우리 집 얘기는 할 기회도 없었고, 혹 기회가 생긴들 그닥 얘기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지만, 이 날은 나도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 아, 네 어머니. 제가 한번도 자세히 말씀을 안 드렸네요… 죄송해요. 아시다싶이 저는 외동딸이고, 저희 친정아빠는 다섯 남매이시고 그 중 넷째세요. 큰아빠는 돌아가셨지만 살아계셨을 때 탁구선수이셨어요. 큰엄마는 공무원이시구요. 작은 고모는 음식점을 조금 크게 하고 계세요. 작은 고모 아들은 대기업 L그룹에 다니고 있어요. 막내 고모도 크게 휴대폰 매장 3개를 운영하고 계시고, 막내 고모부는 대기업 S그룹에 있으세요. 막내 고모 아들은 지금 과학고에 다니고 있어요. 저희 친정아빠는 명문고 졸업 후 대학에 들어가서 해양건설 관련해서 배우셨고, 어머니께서도 아시다싶이 지금은 평범하게 사업하고 계세요. 다른 친척까지 얘기 한다면 인천에 의사하시는 삼촌도 계시고, 고모할머니는 완도에서 미역공장을 하고 계세요. 한번은 완도로 초대 받고 놀러가보았는데, 미역공장이 너무 커서 깜짝 놀랐다니까요.

아! 맞다! 아빠 형제 중 큰고모가 장녀이신데, 제가 애기 때부터 큰고모가 절 키워주셔서 엄마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큰고모는 의사이시구, 큰고모부는 제약회사에 다니세요. 큰고모의 외아들은 서울에서 명문대에 다니고 있고, 곧 유학 간다더라구요. 너무 먼 친척 얘기까지 했나요? 그래도 지금 말씀드린 친정 식구들은 저희 가족이랑 자주 왕래하고 있어서,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


난 래퍼마냥 쉬지 않고 친정식구들의 이야기를 줄줄줄 내뱉었다


“ 크흠, 알았다잉, 끊는다.”


약간의 오버를 보탠 내 대답에 어머니는 내가 얄미우신건지, 아니면 불편하신 건지 갑자기, 급히 통화를 마무리 하셨다.


우리 집안은 어디가서 자랑할 만큼에 잘난 집안은 절대 아니다. 그래도 시어머니의 잦은 먼-친척 자랑은 이제는 하지 않으시겠거니 하는 생각에 괜스레 짜릿한 통쾌함을 느꼈다.




며칠 뒤 어김없이 오전부터 시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밤새 아기 수유하다 비몽사몽인 상태인데 남편이 태어나는 그 날부터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는 어머니가 그날따라 유독 피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날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집안 자랑이 시작 되셨다.


“ 우리 집안 사람들은 참말로 훌륭한 사람이 많탕께. 검사도 있고, 저기 큰 절에 주지스님도 있고잉, 목사님도 있다잉. 우리 집안 사람들은 그르케 다 훌륭하다니께. 네 딸도 우리 집안 사람 닮았으면 똑똑할 것이다잉.”


조금씩 조금씩 짜증이 밀려온 나는, 그 날 어머니의 집안 자랑에 참지 못하고 감히 맞받아쳤다.


“ 어머니.. 그 훌륭한 사람들이 어머니 아들은 아니잖아요ㅠㅠ”


“ 크흠. 뭐..그렇지. 알았다. 쉬거라.”


어머니는 내 대답이 불쾌하신 듯 전화를 끊으셨다.


전화를 끊은 후 내심 후회스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긴 했다. 그래도 가장 큰 성과를 얻었다.

어머니는 그 후로 나에게 다시는 먼 친척 자랑을 하지 않으셨다.



집안 자랑 듣는 거, 그 까짓거..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그냥 들어드릴 걸 그랬나?



시원한데, 찝찝하다.

후련한데, 후회된다.





* ps. 남편! 당신은 나에게 검사,의사보다 훌륭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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