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질없으면서도 삶을 더없이 풍성하게 하는 것
캐셔 자리에 선다. 그곳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매장을 둘러본다. 손님이 다가오면 계산하는 동안 그들을 기다리게 하고 나도 종종 고객들이 물건을 선택해서 오기를 기다린다. 어떤 손님은 순식간에 술을 들고 와 계산대에 놓고 1분 남짓 한 시간에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어떤 손님들은 매장에서 한참을 머무른다. 선물을 하고 싶은데 적절한 것을 고르지 못해서, 결재를 하려고 봤더니 카드가 안되어 결재수단을 찾느라, 때로는 의견이 맞지 않은 여행의 동행자와 다투느라. 그러나 대부분은 어떤 것을 사야 할지 몰라서다. 이 술을 살까 저 술을 살까. 대부분은 술이다. 나는 술을 즐기지 않는다. 그렇다기보단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런 취향이 없고 어떤 술이 좋은지 고를 안목도 없다. 이 일을 오래 하려면, 공부를 좀 해야 하겠지만 아직은 저들과 같이 고민하는 것으로 응대를 대신한다.
고민하느라 시간을 쓰는 사람들을 보며, 진짜 안목은 단순히 좋은 것을 고르는 식견이 아니라 내 맘에 드는 것을 고를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싶어졌다.
안목 :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견식.
견식 : 견문과 학식
견문 : 보거나 듣거나 하여 깨달아 얻은 지식.
결국 내가 내 마음을 보거나 듣거나 하여 알게 된 정보로 내 마음 밖의 세계의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지식이 안목이 되는 셈이다. 설령 그런 안목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정확한 취향을 알고 있더라도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생각하느라 적절한 선택을 하지 못하는 일도 잦다. 그렇다면 좋은 안목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40년 가까이 산 나로서 내린 결론은 안목을 기르는 것도 여느 능력과 마찬가지로 많이 겪어보고 실패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안목은 오롯이 스스로를 위한 것임을 밝혀둔다.)
며칠 전 우리 집 큰 아이는 새 신발을 샀다. 8살이고 생일을 넘긴 지 한 달가량이 되었다. 8살 아이에게도 취향이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1박 2일 여행을 하는 날 아침, 아이는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축구화를 골라 신었다. 그리고선 발이 아프다며 운동화를 새로 사야겠다고 했다. 다행히 숙소 근처 쇼핑몰이 있어 다음날 새 운동화를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신발도 디자인은 예쁘고 축구화보다 걷기에 편했지만 그렇다고 발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두 달 뒤, 학교 다닐 때 신을 운동화를 사러 갔을 때, 아이는 여러 가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인지, 합리적인 가격인지 편한 지까지. 어느덧 아이에게도 신발의 취향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날은 신발의 용도에 따라서 적절한 선택을 하길 바랐지만, 발은 너무나 편하고 가격은 사악한 신발을 골랐다. 대안을 주고 싶었지만, 지금처럼 아이의 권리는 실수할 자유일 테니,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앞으로도 아이는 스스로의 취향을 찾기 위해, 좋은 안목을 갖기 위해 많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상황에 맞고 용도에 맞으면서도 내 마음에 드는 것. 나의 취향을 갖는 것은 36년을 살아온 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래도 점차 나의 취향이 다방면으로 겹겹이 쌓여간다. 그렇게 쌓여간 취향의 흔적이 안목을 만든다고 믿는다. 20여 년 전 재즈를 접하고 나서는 재즈 음악이 좋았다. 무턱대고 들었던 재즈. 유튜브에 재즈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음악을 듣다가, 어느 날에는 피아노 재즈가 듣고 싶고 어느 날엔 색소폰이 올라간 음악이, 또 어느 날에는 가수의 음성이 얹어진 음악이 때로는 보사노바풍 재즈가 듣고 싶어졌다. 그러다 보니, 본격적으로 재즈 음악을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탐구해 보고 싶다는 욕구. 그래서 내가 원하는 순간 딱 적절한 곡을 플레이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취향만 있고 안목은 없는 셈이다. 그래도 별로인 곡은 2초 안에 판가름이 난다.
음식의 취향, 옷의 취향, 음악과 그림, 술과 안주의 취향, 글과 책의 취향 모두 사실은 부질없으면서도 삶을 더없이 풍성하게 해 준다.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며 취향을 생각하고 안목이 쌓이는 삶을 꿈꾼다. 나 같은 사람도 살아가고 있다. 그냥 살아야 할 것 같지만 취향을 덧대어 살아간다. 그냥 사는 삶에 약간의 멋을 더하고 싶어서. 그냥 사는 삶이 어디 있나 싶어서 삶에 이것과 저것을 덧대어 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볕이 잘 드는 날에 취향껏 고른 좋은 술 한 병을 살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