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을 하는 모든 이여, 파이팅
아직 사람이 하는 일
세상엔, 아직 사람이 하는 일이 남아있다. 아직 기계에게 전부는 뺏기지 않은 일이 있다. 나는 그런 일을 한다. 나는 캐셔다. 공항 면세점의.
나의 출근 시간은 6시 반. 6시 즈음이 되면 오전 근무자들이 매장 안으로 속속 들어온다. 9시가 되면 물류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도착한다. 그리고 11시가 되면 캐셔의 경계에 허락되지 않은 사람이 들어온다. 바로 미화 여사님들이다. 화장도 곱게 하고, 머리도 빠글빠글하게 세팅을 한 여사님이 커다란 빗자루로 바닥을 쓴다. 잠시 후엔 밀대가 등장하고 매장 바닥이 반들반들 해지면 말을 거신다.
"스크레이퍼 부탁해요.”
스크레이퍼도 유해 물품 중 하나라 우리가 보관하고 매장에서 근무하는 모든 직원들이 함께 쓴다. 스크레이퍼로 바닥에 붙은 끈끈한 것들까지 없애고 나면 여사님들은, 쓰레기봉투와 지저분한 얼룩과 머리카락, 먼지와 함께 사라지신다. 매장은 원래 이렇게 반들반들했던 것처럼 윤이 난다. 매장을 방문한 누가, 매장에서 일하는 누가 이 매장의 청결이 사람의 손에서 나왔다고 생각할까. 엄마의 밥상처럼 당연한 것이다. 으레 있는 것. 으레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크레이퍼로 바닥에 붙은 끈끈이를 떼고 있는 여사님의 뒷모습을 보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한숨이 푹 나왔다. 왜, 세상이 이렇게 발달했다고 하면서 왜, 이런 일은 아직 인간의 몫인 거지. 사람의 발로 입힌 더러움과 여행 가방들이 부딪치며 낸 자국들은 지워내느라 사람의 손가락 마디에 힘이 들어간다. 이 드넓은 공항이 너무 깨끗하다. 어디든지 반짝반짝하다. 화장실에 가도 이렇게나 깨끗하다. 이게 다 사람의 눈으로 보고서 사람의 손이 한 일이다.
매장이 한가한 틈을 타 나도 청소를 시작해 본다. 아직은 기계가 빼앗지 않은 일을 한다. 물건을 하나하나 들어 먼지를 닦고 제자리에 둔다. 그러고 있는 내 손을 본다. 손마디가 굵어지고, 며칠만 방치해도 손끝이 갈라지고 거친, 더 이상은 여자의 손이 아닌 엄마의 손이 된 나의 손을. 연민에 차서 잠시 감싸 쥐어본다. 투박해져 버린 나의 손을.
손님이 매장으로 들어온다. 나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내가 건넨 말에 단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는다.
“여권 부탁드립니다 ” (여권, 탁)
“타고 오신 비행기 편명 말씀해 주세요.” (티켓, 탁)
“3만 9천6백 원입니다. ” (카드 탁)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휙)
사람인가? 나는 사람인가? 그는 사람이었나. 그가 사라지고 나서 내가 하는 일도 사실은 필요 없는 일이었구나. 깨닫는다. 공항 밖을 나가면 마트도 캐셔는 줄고 무인 계산대가 늘고 있다. 키오스크가 없는 카페를 찾는 게 더 어렵다.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기계가 할 수 없는 자투리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너무 바빠 기계처럼 말을 하고, 나를 만난 그도 나를 키오스크쯤으로 생각했으니 잠깐의 2분 동안 우리는 인간의 기계화를 경험했다.
우리가 담뱃값 몇 푼에 감정 노동할 필요 없이, 우리가 쭈그려 앉아 바닥을 닦을 필요 없이 세상이 조금 더 발달하면 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러나, 그럼 우리 아이들은 무슨 돈으로 먹이고 입히지 싶다. 아직 인간들이 할 일이 남아 있어서 내가 먹고사나 싶다. 혹시나 세상은 내가 짐작하는 것보다 더 발전이 돼서 이미 이런 일까지 다 할 수 있지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인간이 할 일을 남겨두고 있는 건 아닐까? 세상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흘러간다. (내가 세상이 흘러가는 속도를 짐작했더라면 떼부자가 되었겠지.) 그러나 아직은, 아직은 사람이 하는 일이 여기저기 남아 있어 다행이다. 아이 둘을 세상에 내어 놓은 엄마로서, 우리 아이들은 나보다는 나은 인간의 일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지만.
먼 훗날이 되어서, “엄마도 캐셔일 했었잖아. 그래, 너희가 7살, 4살일 때. 그땐 그 직업이 있었지.” 하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손님이 떠나는 자리에 내려놓은 “안녕히 가세요.”라는 내 목소리가 “오라이~”라는 버스 안내양 목소리로 들린다.
오라이, 버스가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