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감정 노동자다
오늘은 아침부터 엉망이었어. 평소보다 조금 시간 늦게 일어나서 머리도 못 감고 출근을 했지 뭐야. 그러니까 난 머리가 어떤지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하루 종일 신경이 쓰이게 생겼단 말이지. 그리고 오늘은 매장 방문 예상 수도 많은 날이니까 또 얼마나 피곤할까. 늦었는데 자동차 신호를 잘 받아서 그리 늦지는 않았어. 도착해서 야간 근무 팀장님이랑 스몰토크도 좀 했지. 머리 염색한 것도 알아봐 주시고 눈썹도 예쁘다고 해주셨어. 이게 오늘 하루 중 들은 유일한 좋은 말이었던 듯싶어.
오늘은 어제처럼 바빴는데 계산도 했다가 재고 관리도 했어. 담배가 많이 없어서 미리 이고신청도 해두었어. 술은 네 박스나 나왔는데 혼자 정리하려니 힘들긴 하더라. 담배도 그렇고 말이야. 담배도 세 박스 정도 정리를 하고 한숨을 돌리려는데 ‘따르릉’ 소리가 울렸고 종혁 님이 전화를 받았어. 그러고는 나를 바꿔 달랬대. 여기서 나를 찾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이상했지. 전화를 받았어.
1월 28일 오전 10시쯤 술 두 병과 담배 한 보루를 결제를 하고 100달러를 냈는데, 그 100달러가 사실은 두 장이 붙어있었다며 알고 있느냐는 거야. 현금을 받고 나서는 금액을 확인하는 일이 우리의 주된 업무 중 하나야. 나뿐만이 아니고 줄줄이 여럿이서 확인을 했는데도 그날은 이상이 없었지. 그래서 100불이 더 남지 않았다고 말씀을 드렸어. 그랬더니 전화를 건 중년의 남성은 자기가 내 양심 테스트를 한 건데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더라고. 어찌나 황당한지 그날의 결제 건을 포스에서 뒤지기 시작했어. 영수증이 있어야 정확한 시간대와 금액 무명의 고객의 성함을 알아낼 수 있거든. 혹시나 CCTV를 찾아보는 일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 그런데 지해님이 그러는 거야. “그날 저는 쉬는 날이라 모르겠네요. 연휴 중 유일하게 쉬는 날이었는데.”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이냐고 물었어. 내가 이렇게 당황스러워하는데 그 말을 왜 하느냐고. 그랬더니 그러는 거야. “교환권 번호(영수증번호) 모르시잖아요.” 무슨 말일까 이해할 수 없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어.
종혁 님이 다시 그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영수증 교환권 번호를 물어보았고 나는 메모를 보고 얼른 내역을 조회했지. 담배 1보루 영수증이 조회되었고, 페이지를 넘기며 고객이 말한 결제 건을 조회했지. 이윽고 영수증 기계는 담배 결제 1건, 취소 1건, 담배 한 보루와 주류 두 병 총 127불을 결제한 건까지 총 세 장의 빌지를 뱉어냈어. 마지막 영수증은 고객이 200달러를 주었고 내가 73달러를 거슬러 드렸다고 말하고 있었어. 통화 중인 종혁 님께 영수증을 쓱 밀어 보여주었어. 그는 그대로 설명을 했지. 손님은 재차 자기가 200달러를 주었는데 내가 양심적이지 않다고 말을 했다는 거야.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래. 네가 200달러를 줬더라. 그리고 73달러를 가져갔고.’ 속으로 말했어. 황당함이 가시질 않아 다시 그 고객과 전화연결을 시도했어. 매장 전화 거절. 업무용 전화도 거절. 결국 영업팀 직원에게 전화해서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 내내 이야기를 듣던 직원은 잠시 말이 없다가 이렇게 말해주었어. 이야기를 전해 듣는 자신도 몸이 부들거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을 거라고, 대신 이건에 대해서 컴플레인이 온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할 거라고. 그리고 애석하게도 내가 원하는 사과를 받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부글거리는 속을 삭히며 매장에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다른 손님들을 애써 응대하고 있으려니, 소식을 들은 영업팀 직원이 왔어. 그분이 위로의 말을 건넸고 나는 잠시 그분한테 안겼던 것 같아. CCTV를 확인하겠다고 했어. 우리는 무엇을 확인해야 할까? 지폐 두 장이 겹쳐 있지 않았다는 것? 아니면 내가 그 돈을 훔친 여부? 무엇이든 상관없었지만 전자는 확인하기 어려울 것 같았어.
선임직원들은 여전히 부들거리는 나에게 식사를 하라며 매장 밖으로 보냈지. 나는 지금 나가면 식사 후 돌아가서 좀 전에 식사를 하러 간 지해랑 같이 일해야 하니 지금 가기 싫다고 잠시 앙탈을 부려보았지만 사실 매장에서 나는 당장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었고 나도 그걸 알고 있어서 그냥 나왔어.
나와서 누구에게라도 하소연을 하고 싶었어. 남편도 생각났고 여동생도 생각났고 친구들도 생각났지만 나는 아무한테도 전화를 걸지 않았어. 나는 손 떨리게 화가 나는 일이지만 듣는 사람은 그냥 하소연일 테니까. 그들의 평온한 일과에 내 이야기가 재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었어.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시간을 그렇게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아 그래도, 이토록 열은 받아도 밥은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는데 지해가 앉아있더라.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으니 이미 나가고 난 뒤였어. 잠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책을 꺼냈어. 책을 읽어가는데 말이야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지금 이 순간 책 한 권이 가방에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아무에게도 짐을 지우지 않고 이렇게 마음을 추스를 수 있어서 다행이다. 혼자서 속앓이 하는 대신에 나의 일을 한 걸음 떨어져 볼 수 있는 이 시간이 감사했어.
며칠 전 차를 주차해 뒀는데 새가 똥을 싸놨더라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어. ‘이 똥을 머리에 안 맞아 다행이다.’ ‘닦기 너무 귀찮은데. 남편한테 시켜야지.’ 그중에 이런 생각은 없는 거야. ‘똥을 싼 새를 잡아다가 사과를 받아야지!’ 하는 그런 생각. 그러니까 나는 오늘 똥을 맞은 거지. 분명히 싼 사람은 있지만 찾을 수는 없는 사람의 똥을. 그런 사람을 찾아다가 사과를 받는 게 나을까 닦아내고 머리에는 안 맞아서 다행이다 생각하는 편이 나을까. 책의 몇 줄을 돌돌 말아 마음을 닦아냈지. 한 장 한 장 닦아냈어. 그리고 휴대전화가 울렸어.
팀장님이 전화를 하신 거야. 오늘 쉬시는 날이라 정말 연락을 드리고 싶지 않아서 영업팀에 바로 전화를 한 건데. 쉬는 날엔 팀장님도 쉬셔야지. 오늘도 사무실 전화를 받게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미안한 마음이 솟구쳤어. 내 이야기도 들어주시며, “나는 너를 믿어. 걱정 말고 점심 맛있게 먹고 푹 쉬고 와. ”라고 말씀해 주셨어. 그걸로 마음이 다 닦였어.
매장에 들어오니 정신 선배가 있더라. 선배는 무슨 일인지 재차 묻고 아마도 고객의 오해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정말 그렇게 믿을 수도 있다고 말해주셨어. 정신 선배는 말이야 말이 참 따뜻한 사람이거든. 처음 보는 사람들은 몰라. 그렇지만 나는 알지. “우리는 감정 노동자야. 이런 모든 일에 화를 내고 마음에 담아두면 안 돼.” 그 말이 아주 큰 위로라는 것을 선배는 알았을까.
두어 시간 전에는 내가 부당한 일을 당해도 사과를 요구할 수 없는 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 그리고 지금은 감정 노동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지. 그러니까 이것도 나의 일의 일부라는 사실을 이제야 안 거야. 술을 나르고 담배 박스를 나르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내 직업의 일부라는 것을 오늘 오롯이 받아들였어.
성큼성큼 지해에게 다가갔어. “지해 님, 오전에는 내가 오해한 거 맞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어. 타인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기로. 당장은 기분이 나쁘더라도 그녀의 진심은 의심하지 않기로 했어. 우리의 노동은 이미 충분해. “나는 이제 괜찮아요. 그러니까 잊어버려요.” 돌아서서 다음 고객을 맞이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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