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선택은 나를 사랑한다는 것에서 나온다는 믿음으로
우주의 졸업식날이었다. 우리는 분주히 졸업식장으로 향했다. 분명 늦지 않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도착한 모양이었다. 주차장에도 건물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우리도 그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바닥을 보니 삐뚤빼뚤한 아이들의 글자가 눈에 띄는 하트들이 강당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었다. 우리는 바닥에 돈이라도 흘린 사람처럼 바닥을 주시하며 하트 하나하나 눈여겨보고 있는데, 포토존 앞에 우주의 하트를 찾았다. 우주는 나와 남편을 그려놓고서,
엄마 아빠. 저를 위해 4:30분에 회사에 가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행복한 나무반이 될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우주 올림
이라고 써두었다.
알람이 3번쯤 울렸을 때 부스럭거리는 이불을 걷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하다는 엄마 어디 가냐며 물었고, “엄마는 출근해.” 하고 말을 건넸다. 전날 형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보냈던 키즈카페에서의 하루가 고됐는지 하다는 안된다고 가지 말라며 짜증을 냈다. “우리 하다, 안아줄게. 오늘도 엄마한테 잘 가라고 인사해 줘서 고마워. 사랑해. 우리 예쁜 아기.” 하고 말해주었더니 투정은 아기의 칭얼거림으로 바뀌어 이불을 파고들었다. 이불에서 손이 쑥 나와 인사를 건넨다. 흔들흔들. 내 손바닥만 한 작은 손의 해바라기 같은 배웅을 받으며 안방을 나가 출근 준비를 했다. 도라에몽의 어디로든 문이 있다면 회사에서도 화장실을 간다고 해놓고 아이들을 보러 안방 문을 종종 열어젖힐지도 모르겠다.
우주는 부모님께 고마운 점을 쓰라고 했더니 내가 4시 반에 출근을 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써놨다. 그걸 읽은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일까 하겠지만 우리에겐 나름의 사연이 있다. 나는 공무원이었고, 거주지를 옮긴 후 인사 교류가 어려워 결국 그만두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 일의 출근은 6시 30분까지. 퇴근은 3시 30분. 내가 건 근무 조건은 아이들과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오전만 근무하는 것이었다. 주말 중 하루는 쉴 수 있는 것이었고. 그렇게 지난 8월부터 나는 근무가 있는 날이면 매일 4시 반에 일어나 출근을 해야 했다. 올빼미인 나에게 이 출근 시간은 거의 쥐약과도 같았지만, 해야 했다. 해내야만 했다. 다음날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에 한 시간마다 깨는 밤이 반복되었다. 눈이라도 내리면, 비라도 내리면 그 불안은 더 커졌다.
살인적인 스케줄에 남편은 자진해서 설거지와 분리수거를 전담해 주었고, 나는 아이들의 저녁 일과와 재우기를 담당했다. 그렇게 하자고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었다. 하다 보니 서로에게 더 맞는 것을 찾아간 것이다. 물론 서로의 방식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우리는 서로 적당히 눈을 감는 법을 깨우쳤다. 나에게서 가장 큰 난제는 재우기였는데, 일찍 잠자리에 들어주길 바라면서도 아이들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 양가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을 하며 감기에 자주 걸리고 걸리면 잘 낫지 않고. 또 자주 체하면서 남편은 그냥 나한테 맡기고 아이들 방에 가서 자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자는 것은 양보하고 싶지 않은 육아 영역이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몸은 밤만 되면 너무 지쳤다. 아이들이 자지 않고 재잘거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엄마 내일 4시 반에 일어나 출근해야 한다 어서 자.” 하고 말을 했고 아이들은 더 놀고 싶은 마음을 눌러 담고 꾸역꾸역 잠이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입버릇처럼 매일 밤 했던 말이 우주에게는 엄마가 힘들다는 이야기로 들렸을까. 엄마가 4시 반에 일어나 출근하는 것이 우주는 왜 고마웠을까.
4시 반 출근의 의미는 나에게는 이렇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포기한 것. 그러나 아이들과의 시간은 포기하지 않은 것.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일을 해내는 것.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나의 선택의 방향은 언제나 아이들을 향해있었다. 그리고 그걸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우주는 아마도 나의 선택이 결국 자신에 대한 사랑임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더 고마운 쪽은 나다.
엄마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줘서,
엄마가 많이 고마워.
알람이 울린다.
엄마의 모든 선택은 나를 사랑한다는 것에서 나온다는 아이들의 믿음을 업고 나는 오늘도 면세점으로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