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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는 이틀

대중교통, 출근 하는 시간도 근무다.

by 이덕준

지하철을 탔다. 근무하고 처음 타는 지하철이다. 어제 공업사에 차를 맡겼다. 빙판길에 차가 돌았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그날 아침 나는 꽤나 놀랐다. 그런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왜였을까. 이틀 동안 차가 없는 하루를 보내야 한다. 이곳에 근무하고 나서 처음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을 한다. 그냥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은 지도 꽤나 오래되었다. 첫 직장에 출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팀장님이 차를 사는 게 어떻냐고 물었다. 내가 차가 끊길 시간까지 야근을 계속해야 하는데,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갓 공무원이 되었는데, 갑자기 차라니. 그 시절 나는 매달 100 시간이 넘게 초과근무를 했다. 결국엔 내가 불편해서 차를 샀다. 일을 하기 위해 빚을 졌다. 기분이 묘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0이었는데, 일을 시작하고 나니 마이너스가 되었다. 어쨌거나 그때부터 나는 매일 하는 출근도, 전국 팔도로의 잦은 출장도 운전해서 다녔다.


5시 26분이 첫차인데 역까지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남편에게 데려다 달라고 했지만, 남편도 나도 아이들이 걱정되어서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잠이 들었다. 자고 있으면 깨울 수 없을 것 같아서 걸어갈 각오로 분주히 준비했다. 남편이 자고 있을 방의 문을 열었다. 하얀 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 “나 오늘 데려다줄 거야?” “응.”11분에 나가자고 하니 일찍 말하지 하며 얼른 옷을 챙겨 입는다. 날이 너무 추워서 차 앞 창문에 맺힌 물방울을 따라 얼음이 언 자국이 그대로다. 남편은 그걸 녹여보겠다고 노력했지만 오히려 하얗게 얼음이 더 얼었다. 간신히 녹여가며 역까지 갔다. 차에 내려 걸어가다 멈추어 그를 향해 손을 한 번 흔들었다. 내가 보는 것은 그가 탄 까만 유리의 자동차지만 그는 있으니까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는 나의 손짓을 보았을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고, 정확히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남편도 그걸 알 테니까 그래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가 쥐여준 교통카드로 지하철을 탔다.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수북하다. 입구마다 사람들이 서있다. 갈래갈래 문이 열릴 자리에 뿌리가 난 것처럼. 나도 그 뿌리의 일부가 되었다. 25분, ‘이제 곧 오겠다’ 그의 문자가 오고 곧 지하철이 도착했다.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싶어 이어폰을 끼고 밀리를 켜두었는데, 자리가 있어서 책을 꺼내 읽었다. 졸음이 쏟아졌다. 잠깐 고개를 들었다. 빈자리가 몇 보이고 고개를 뒤로 젖혀 잠이 든 사람이 보인다. 어디서 출발한 걸까? 패딩으로 두툼해져 나와 서로 팔이 맞닿은 여자는 어디에서 일을 할까? 절반은 여행객이고 절반은 근무자이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이렇게 이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한다. 이런 사람이 쉬는 날 침대에만 있다고 해서 나태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열심히 살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어림없는 소리다. 읽고 있던 책의 목차 중 한 장을 남겨놓고 있을 때, 지하철이 끼익하고 속도를 줄이는 소리를 낸다. 책을 미리 덮어두고 앞을 본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 멈춘다. 이미 사람들은 문 앞에 서있고 나는 그 사람들이 다 내릴 때쯤 일어나 내린다.


이렇게 추운 날씨 이렇게 어두운 날, 나는 또 그 차가운 도시가 생각이 난다. 찬바람이 불고 어두웠던 나날, 내가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그 사람밖에 없었고 그러나 그마저도 녹록지 않았던 21살의 나를 만난다. 그곳은 어찌나 춥던지 나갈 때마다 콧구멍 안의 콧물마저 얼었다. 나는 지독한 비염이 있어 매번 훌쩍였는데, 나중엔 나름 요령이 생겨 지하철의 따뜻한 공기를 만달 때쯤 휴지를 코에 가져다 댔다. 그 사람이 크로스워드라는 복권 같은 걸 살 때 나는 뒤돌아 콧물을 닦아냈다. 그 사람이 지하철에서 열중하며 풀 때 나는 지하철의 유리창이 보여주는 그림 같은 풍경을 감상했다.


그와 그 사람은 다른 이다. 그러나 때때로 그 사람이 그라는 착각을 한다.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사라졌고, 남은 건 감정뿐이라 그럴까.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었고,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다툼 뒤 나를 그토록 슬프게 만드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 테니까. 과거의 그 사람이 과거의 그와 홀로그램처럼 겹쳤다가 흐려진다.


어두운 도시. 환한 역 안에 있지만 내 삶은 보이지 않은 깜깜한 저 터널처럼 비좁고 아득하기만 한 것이라고 여겨질 때 품을 내주었던 사람. 아니 사랑이었을까. 그 사람은 떠나간 기차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나는 지금 그의 품에 있다. 나를 싣고 온 기차가 역을 떠나간다. 다시 되돌아간다. 아득한 공간으로 사라진다. 나는 걸음을 돌려 빛이 쏟아지는, 사람들이 쏟아지는 역에서 나와 여행자들이 쏟아지며 들어오는, 빛나는 나의 직장으로 걸어 들어간다.


오늘은 유독 친절한 사람을 손님으로 많이 만났다.


정말 너무 피곤했다. 지하철역에서 내리자 배가 고팠다. 퇴근 직전부터 배는 고팠지만 역에 내려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당이 떨어지는 걸 느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나 내렸어. 배가 너무 고파서 이삭토스트 사 가려고”말을 마치고 가는 길에 올리브 영에 들러 향수를 시향 했다. 그러다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고 몸에 기운이 빠졌다. 저혈당 증세가 왔다. 옆의 토스트 가게로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오빠. 나 당이 너무 떨어져서 먹고 가야 할 것 같아. 오빠 거는 포장해서 갈게.” 토스트가 나오길 기다리는 잠깐 동안 식은땀이 계속 흘렀다. 한 시간 같은 5분이 흐르고 토스트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살았다.


남편이 데리러 오길 바랐지만 남편은 그냥 집으로 오라고 했다. 걸어가는 데만 20분이 걸렸고, 집 앞에 도착하자 집에서 쉬었던 남편이 내려왔다. 그리고 바로 아이들을 하원하러 갔다. 너무 힘들다고, 힘들었다고 남편에게 말해보았지만 들리지 않는 건가 싶었다. 차에서 잠깐 쉬겠다고 선언했지만 결국 모두 함께 우주를 태권도 도장까지 데려다주고 나서야 집에 갈 수 있었다. “나는 수육 할게 토스트 잘라줘.” “나 씻고 올게. 빨래 좀 돌려줘.”라고 무언가를 계속 요구했다. 나는 정말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러나 침대에 누운 지 5분 만에 하다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엄마! 어디 갔어? 일루 와바!”


A 조를 하고서 어떻게 운동까지 가냐는 말에, “저도 너무 가기 싫은데요, 그냥 가요. 가면 하니까요.”라고 말했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했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퇴근을 하면 이렇게 녹초가 되어버려 할 수가 없는 것이었구나. 차가 없었다면 나도 운동은 생각하지도 못했을 테다. 모두들 출퇴근만 해도 힘든 나날이었겠다.


집에 돌아와서는 피곤에 절여져서 김장을 기다리는 배추처럼 늘어져 있었다. 씻을 때조차 개운하다는 느낌보다는 내 몸의 소금기를 조금 씻어낸다는 느낌이었다랄까. 몸이 여전히 무거웠다.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엄마는 지금 좀비 상태’야라고 말해주었는데, 두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엄마가 너무 피곤하고 힘들다는 이야기야.” 그러거나 말거나 하다는 “엄마! 우리 바다 먹고 양치하고 정리하고 숨바꼭질하자!"라고 귓가에 속삭였다. 나는 거의 애원하다시피 오늘은 안되겠다고 말했지만 하다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계속 울리고 있었다. 거실 불을 끄고 “엄마가 좋아하는 숨바꼭질 놀이!”라고 외쳤지만 남편이 불을 다시 키며 안된다고 했다. 우리는 어둠의 숨바꼭질을 한다.


결국 나와 하다는 안방 이불에 파고들어 “이게 정말 마음일까”라는 책을 읽으며 남편을 작게 만들어 박수를 치고, 아빠는 괴물의 조종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이야기하며 깔깔깔 웃었다. 이윽고 우주도 같이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우주는 “똥 호박”이라는 책을 가져왔다. 아이들에게 방귀나 똥만큼 재미있는 건 없다. 그러고 나서도 아이들이 잘 생각을 하지 않아서 나는 아이들에게 뽀뽀를 잔뜩 해주고 선 잠을 청했다.


분리수거를 마친 남편이 안방 문을 열었다. “내일, 5시 반에 나가자. 데려다줄게.” 나는 괜찮다고 한 번 거절했지만, 남편은 내가 너무 피곤해 해서 그러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놀라지 않게 말을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고맙다고 했다.


무슨 일인지 밤사이 한 시간마다 잠에서 깼다. 꿈속에서 남편과 아이들과 엄청나게 커다란 하얀 보름달을 보았다. 털이 복슬복슬하게 난 것 같은 포근하고 깨끗한 보름달이었다. 닿지 못할 만큼 멀리 있지만 아주 커다래서 우리는 한참이나 그 달을 쳐다보았다.

알람이 울렸다. 버튼을 눌러 폰을 진정시켰다.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남편은 자고 있었고 30분쯤 지나 그를 깨웠다. 비몽사몽 그가 옷을 챙겨 입는 동안 나는 커피를 내리고 아침 도시락을 쌌다. 날이 너무 추웠다. 그도 나도 춥다는 말을 연발했고 정말 그랬지만 어제보다는 춥지 않았다. 추위를 그토록 싫어하는 그가 기꺼이 새벽잠을 물리치고 일어났다. 걷는 동안 우리는 손을 잡거나 껴안고 온기를 나누는 대신에 각자의 품을 더 여미며 추위를 달랬다. 혼자 하는 출근에 익숙해진 우리였다.


차에 탔다. 어제의 성애는 없었다. 분명 어제보다는 따뜻한 밤이었구나 생각했다. 차가 출발한다. 그는 운전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제 블랙아이스 때문에 사고가 날 뻔한 이야기, 새벽에도 이렇게 많은 차가 공항으로 간다니 놀라워하는 이야기. 저 사람들은 다 여행을 가는 걸까 하는 이야기.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적절한 추임새를 넣었다. 위험했네, 다행이다. 일하는 사람도 많겠지 하며. 공항에 거의 도착했다. 어디에 멈출 수 있을까. 공항에서 불법 주정차는 금지다. 입구와 가장 가까운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바로 앞 신호등의 초록불이 켜졌다. 바쁠 것 없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횡단보도로 뛰어갔다. 길을 다 건너고 나서 지나가는 차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제와 같은 마음으로. 고맙다는 무언의 몸짓으로.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공항에 도착했다. 여섯시 전, 공항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조금 더 어둡고 조금 더 고요하다. 화장실에서 머리를 다시 묶고 나왔다. 글을 좀 쓰고 시계를 본다. 6시 10분 곧 매장으로 가야 한다. 정미님이 인솔을 부탁하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녀의 인솔을 돕고 그녀와 매장으로 들어온다.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될까. 확실한 한 가지는 어제보다는 덜 피곤하리라는 것.


눈 길로 인해서 사고가 났다. 차를 공업사에 맡기고 이틀간 차 없는 시간을 보냈다. 차가 없어지니, 내 발은 조금 더 고생하고 덕분에 다른 사람들의 일과를 알게 된다. 나의 피로를 덜어주겠다고 몸을 쓰는 남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퇴근 후에도 남편이 병원에 들렀다가 데리러 왔다. 이틀로 예정되어 있던 지하철로의 출퇴근은 어제로 그쳐버렸다. 내일은 다시 내 가방 한쪽에 차 키가 자리를 차지하겠지만, 추운 겨울, 기꺼이 새벽길을 달려준 남편의 마음은 매일 출근하는 나와 함께할 것이다. 떨렸던 마음이 다르게 떨린다. 어두운 나의 인생을 함께 걸어가 줄, 그로 인해. 그리고 길 위의 모두를 응원하게 된다. 지하철이 열리고 닫히는 순간, 우리의 일과가 시작되고 닫히는 순간까지 치열한 모두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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