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도 출근했다. 어젯밤엔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나는 출근하면 가슴이 아파. 물리적으로 아파. 근데 아무렇지도 않은 그녀를 보면 화까지 나. 가슴이 엇박자로 쿵쾅거려. 슬픔의 쿵과 분노의 쾅 둘이 자꾸만 부딪혀서 가슴에 불이 붙어 너무너무 뜨겁고 따갑고 욱신거려. 아파.
오늘은 지해가 없어서 인지, 며칠이 흘러서 인지. 어제 우리가 나눈 이야기가 치유의 힘이 있었던 것인지 차분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반면에 그는 어느 때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울지 않는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니까. 일을 한다고 슬프지 않는 건 아니니까.
생각해 보니 차분하게 일했다는 것은 내 착각이다. 오늘도 몇 번 실수를 할 뻔했다. 그래도 정신머리의 끝은 잡고 있었다. 그 끝을 잡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그럭저럭한 하루가 되었다.
2
어제 아이들은 아빠와 전쟁 기념관에 다녀왔다. 지금 나는 전쟁에 관련된 책을 읽고 있다. 그 책은 끝이 나질 않는다. 책이 두껍기도 하지만 책의 한 장 한 장의 무게가 다른 책과 다르기 때문이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전쟁에서 여성을 끄집어냈다. 그 책에서 머리채를 휘어잡고 여성 하나를 끄집어내면 여성들이 줄줄이 끝도 없이 끄집어 올려진다. 산사람이 올려지면 그녀의 손가락 발가락엔 죽은 여성들이 떼 지어 붙어있다. 그렇게 산사람의 무게에 죽은 사람의 무게가 더해진 무게가 된다. 무서운 무게로 엮인 것들을 보게 된다. 땀과 피, 화약 냄새와 대소변이 뒤 섞인 날것의 사람과, 사람의 내부까지 드러나 안과 밖이 온통 뒤섞인 채로.
그런 책을,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읽기 전의 나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된다. 그런 슬픔에 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나는 왜 이 책을 읽어야만 할까. 때로는 아무것도 몰랐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다. 때로는 그래 때로는.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전쟁의 실상을 알았다고 해도 당장 나의 삶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 그때 나는 ‘때로’와 같은 빈도로 회의감을 느꼈다.
안다는 것은, 알기만 한다는 것은 아무 힘이 없다. 그래서 작가는 쓸 수밖에 없었을까. 써야만이, 읽혀야만 힘이 생길 것이니까. 나같이 읽고 되돌아갈 수 없는 동지들을 만들어 내야만 하지 않았을까. 뭐라도 하라고. 그런 불씨를 심으려고. 그리고 내 가슴에는 불씨 하나가 심어졌다.
아빠와 전쟁 기념관에 다녀왔다는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자동차 모형을 타서 기분이 좋았을까. 전쟁 기념은 무엇을 기념한다는 것일까. 전쟁 추모관도 아니고, 전쟁 기록관도 아니고 기념관이라니.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전시라고 한다면 기념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지 않나. 진짜 전쟁이 뭔지 나도 모르는데,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지만 묻지 않았다. 남자라는 이유로 아이들은 벌써 전쟁이 무섭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전쟁통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전쟁은 삶의 일부였을지도 모른다. 자연은 항상 아름답고, 현실은 언제나 처참했겠지. 화약 냄새와 시체 썩는 냄새와 갓 흐르는 피 냄새로 세상이 뒤덮여 있을 때도 숲에서 꽃은 피어났을 테니까.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웠을 것이고 매일 슬펐을 것이다. 그것이 당연한 그들의 일상이었다.
지금의 시간에 마냥 감사하자니 철이 없는 것 같고, 같이 고통스럽자고 하니 읽고 상상한 건 현실이 아니라 진실되지 못한 것 같다. 그저 느끼고 있다. 한 장 한 장의 무게를. 그저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3
삶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산다. 빗발치는 총알에 내 옆의 그는 맞아 죽고 나는 살아 전쟁을 이야기할 수 있다. 왜 나는 살았을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가끔은 그런 생각을 나도 한다. 누군가는 매일 죽는데 이 세상은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흘러간다. 그 사람 하나쯤 없어도 세상은 괜찮은 것처럼 보인다. 아무렇지도 않게 잘만 있다. 시간은 똑같이 흐르고 계절도 똑같이 변한다. 어느 날은 해가 떴다가 어느 날은 흐리고 비가 왔다가도 그친다. 혼란스럽다. 세상이 이렇게 멀쩡한데, 내가 무너지는 것은 왜일까. 세상은 괜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나의 세상은 전혀 괜찮지가 않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려고 살았나 봐요.
내가 뭘 하려고 살았을까. 그는 뭘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죽었을까? 신에게 인간의 생명이 개미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아차하고 잠깐 졸면 아까운 사람이 죽게 되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뭘 하려고 사는 것 같지 않다. 내가 세상에 위대한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어떤 진실을 세상에 꺼내놓기 위해서 사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살아있어서 생존해 있어서 쓰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정말로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4
깨달음
어떤 깨달음은, 햄버거 집에서 햄버거를 먹다가 감자칩을 집어먹다가 떠올려지기도 한다.
어린이날에 뭐 했냐는 물음에 남편 회사에서 어린이날 겸 어버이날 행사가 있어 갔다고 답했다. 그 말은 곧 남편이 다니는 회사의 칭찬으로 이어졌고 그런 남편을 둔 나도 좋겠다고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그의 인생을 살고 나도 나만의 인생을 사는데 그의 직장이나 삶이 나에게 뭐가 중요하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 알고 있지만 그의 성공이 나의 성공처럼 느껴지는 것이 싫었다. 나는 나로서도 충분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남편이 좋은 데에 다녀 좋겠는 사람 말고, 내 이름 석 자가 인정받는 삶을 생각한다.
글은 왜 쓰고 있을까? 요즘 그리고 또 자주 그런 생각을 하고 또 해 왔다. 그녀가 세상에서 사라지자 나는 그녀를 나만의 방식으로 애도하기 위해 나만의 방식으로 기억하기 위해 마음껏 슬퍼하기 위해 글을 썼다. 그녀를 쓰는 동안에는 그녀가 세상에 살아있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그녀를 살리는 다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글은 무용하다. 오직 나에게만 유의미한 글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살기 위해 글을 썼다. 그러나 살리기 위한 글은 아니다. 글 자체가 다시 나를 살리진 않는다. 그리고 정말로 그녀를 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생각과 저런 생각을 거쳐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으며, 사회를 고발하는 글을 쓰는 것으로 세상의 정의를 다했다고 여기는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의 6년의 삶을 돌아봤다. 이곳에 오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 삶 자체가 정의라고 생각이 들었다. 진정으로 그 삶이 어떤 누군가의 말뿐인 삶보다 대단했다고 느껴졌다. 내가 공무원으로서 행했던 수많은 업무보다도 아이들 돌보며 스스로를 희생했던 그 숭고한 시간이 값지며. 그 어떤 것보다 덜 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랬다. 가끔은 그런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온다. 무릎이 너무 아파서 햄버거를 먹는 중에도 한 손을 햄버거를 쥐고 한 손은 무릎을 주물렀다가 책장을 넘겼다가 하고, 눈은 책에서 떼지 못하는 그런 순간에 찾아온다.
내가 특별해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과 살아있던 모든 것은 그냥 특별하다. 나와 같은 일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네가 겨우 이런 일을 하다가 가서 불쌍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노동은 그 자체로 정의였다. 어떠한 것이 이보다 덜 숭고하다고 할 수 없다. 이 삶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뭐랄까. 그저 이 삶도 숭고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슬퍼할 것은 그녀가 살았던 삶을 평가하거나 살아내지 못한 삶에 대한 추측에서 비롯되어서는 안 된다. 그저 그녀를 더 볼 수 없다는 사실 그것만이 슬퍼해야 할 일이다.
예술의 가치
삶을 살아내고 있다. 글을 쓰고는 있지만 돈벌이는 되지 않는 사람으로서 글이나 문학이 무슨 힘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저 있는 사람의 전유물이 아닌가. 글 놀음 음악 놀음 그림 놀음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쓰는 삶을 동경하는 스스로가 철이 없게 느껴지면서도 쓰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하는 고민이 배부른 고민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예술이 돈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고서 예술로써 남을 때의 숭고한 가치를 요즘 나는 느낀다. 상업적이라고 해도 좋고 나의 소비가 예술가인 당신을 먹여 살리는 것도 상관없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슬픔에 잠식하지 않도록 음악을 듣고 글을 쓰고 책을 보고 그림을 본다는 사실이다. 물론 사랑하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필살적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잠들거나 내가 홀로 있을 수밖에 없는 그 공백에서 나를 채워주는 것은 이 세 가지뿐이다. 하나 더를 넣지만 커피가 되겠다.
그래서 예술의 가치를 더 이상 폄하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을 살리는데, 의사만큼이나 중요한 일을 하는데 예술가가 돈을 벌면 안 되는가. 배부른 사람들이 배부른 짓을 해서 내가 산다는데 그게 뭐가 문제가 될까.
6
아무리 생각해도 요즘 나는 삶과 죽음, 존재와 의미. 어둠과 빛 사이를 방황하며 살고 있다. 그것이 전부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 자체가 삶이다.
7
전쟁 중에도 꽃은 핀다. 사람이 죽은 시체 위에도 태양의 빛이 들이친다. 살아 있는 것에도 검은 연기가 찾아온다. 화약 냄새와 갓 흐른 피 냄새와 썩은 냄새가 나는 길 위에도 꽃은 피고 그 꽃의 향기가 퍼진다. 그 길을 걸으면 우리는 그 모든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이 마치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세상은 그저 세상으로 있는 것이고 존재하는 것은 그 사이에 있는 인간의 고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