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오후 근무조로 출근을 하는 날이다. 당연히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제 받은 두둑한 위로를 쿠션 삼아, 출근 준비는 안정적으로 했다. 출근을 하고 나서는 당연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어제저녁에 관리자는 갑자기 회식 장소를 공지했다. 회식 시간과 함께.
[00 식당, 회식 시간은 6시 반부터 9시 반까지.]
여기 오후 근무조가 끝나는 시간은 9시 반이다. 회식 시작 시간 공지는 봤어도, 끝나는 공지는 처음 받아봤다. 공교로운 그 시간 고지가 불쾌하게 다가왔다. 그러고 나서 오늘 와서 보니, 나를 제외하고 모두 회식에 참여하는 거였다. 나는 고지받지 못했으나 다른 오후 근무자는 오늘 2시간 일찍 출근을 했고, 7시 반까지 근무라고 했다. 일찍 끝내고 회식을 간다며.
회식 마감 시간 공지는, 결국 너는 절대로 오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몇 번이나 언급하지만 나는 회식에 갈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도 혹시나, 눈치 없게도 올까 봐서 몇 번이고 수도 없이 그런 공지를 해댄 거다.
올해 들은 최악의 말은 아무래도
관리자들이 말한
"유종의 미를 거둬야지?"가 되겠다.
유종의 미는 결코 한쪽이 잘한다고 거둬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배웠다.
2
휴게 시간도 너무 짧게 준다. 그래서 지금 돌아가야 한다.
3
다른 오후 근무자들이 회식을 가야 해서, 나는 평소보다 이르게 휴게를 나왔다. 그것도 무슨 대단한 혜택을 주는 양 휴게를 다녀오라고 말을 하길래, 웃어주었다.
4
숲 같은 인간 세상
전에, 인간 세상도 숲과 같은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맞다. 인간 세상도 숲 같다. 지금 이런 기분에 외자로 된 단어를 반복하니 마치 욕을 하는 것 같지만 그건 아니다. 숲을 구성하는 그 모든 것이 숲이다. 그 일부가 그 자체고, 전체는 또 하나의 단일화된 세상이다.
우리는 인간들이 구성하는 숲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다양성은 자연 본연의 것과 다르지 않다. 나무는 자리를 떠날 수 없다. 꽃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인다. 그러니까 그것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을 당한다는 피동으로 쓰여야 할 것이다.
발아래를 볼 수 없는 곧은 나무를 더러, 밑을 좀 둘러보라고 하는 말은 어리석다. 가벼운 바람에도 씨앗을 잃고야 마는 민들레를 더러, 그렇게 빨리 새끼들을 떠나보내면 마음이 아프지 않으냐고 묻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일 것이다.
흔들리는 나와 지나치게 예민한 나의 기질을 더러 ‘그냥 무시해 버려’라고 하는 건 충고라기보단 폭행에 가깝다. 그게 된다면 애초에 아프지도 않았을 테니까. 포크질을 하다가 젓가락질을 배우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물론 훈련을 하다 보면, 예민하게 받아들인 정보를 잘 가공해서 덜 아프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무로 태어난 사람에게 풀처럼 살라고 하는 것이나, 꽃으로 태어난 사람에게 잡초처럼 짓밟혀도 피어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안될 일이다.
흠
그래서 나는 숲의 뭣이냐 하면 아직 모르겠다. 그리고 너도 숲의 어떤 분일까 생각하면 ‘파괴’다. 그 파괴조차 숲의 일부다. 그 파괴조차 생의 일부고, 인간 세상은 생과 사와 그사이 무수한 생을 포기하는 것, 생을 파괴하능 것, 생을 파괴하고 싶은 무수한 것들이 공존 하는 세계린 것이다. 결국, 그런 인간을 피할 길도 없다는 소리다. 나는 무수한 것들이 공존하는 한 생태계의 일부일 것이므로.
5
어제 하다와 아쿠아리움을 다녀왔다. 쉬는 날이 많아지니까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한다. 매번 운동을 가야지! 하고 생각하는데 막상 선택은 아이들과의 시간이 될 때가 많다. 초등학교는 학교를 안 가는 것도 어찌나 번거롭고 조퇴도 어찌나 불편한지 모르겠다. 지난 학부모들의 악행으로 선생님의 인권을 보호한다고 만든 절차들이 생각보다 까다롭고 불편하다. 어린이집을 보내다 학교를 보내니, 새삼 모든 면에서 어린이집이 우월하다.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무튼 그래서 우주와는 단둘의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우주는 세 번쯤 엄마와 하다가 놀러를 가는 걸 견디더니, 이제는 자기도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우주가 하는 말은, 늘 고맙다. 우주가 하는 표현은 늘 감사하다. 하다는 쉽게 표현한다. 화도 내고, 울고 그래서 그런 아이에게 다가가 같이 싸우기도 쉽고 달래주기도 쉽다. 하지만 모든 감정을 자기 속으로 끌어안고 들어가 버리는 아이의 마음은 읽어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우주가 하는 말은 꽤 묵은 묵은지와 같은 것이고 표현을 한 이상 모르는 척할 수 없다. 자신이 한 말을 엄마나, 아빠가 들어주는 경험을 하다가 보면 가족을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종종 꺼내고는 하지 않을까? 그러면 우주가 살아갈 세상이 덜 고독해지지 않을까?
나는 지금의 내가 너무 힘들어서 아이들의 마음을 담을 수가 없다. 그 사람들이 너무 미운 건 밖에서는 모르게 나 같은 사람이 괴로워할 정도로만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 그로 인해서 아이들을 품을 마음의 여유를 좀먹듯이 잡아먹고 조여온다는 점에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기록할 것이다. 무용한 이 모든 것은 결코 무용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은 호수에 던져지는 돌과 같다고. 작든 크든 그렇게 일렁이며 퍼져가는 파급은 어떤 식의 결과로 스스로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나에게 직접 닿지 못하면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그래서, 내 아이가 사는 세상은 내가 전한 온기만큼은 따뜻해질 것이라 믿는다.
세상 모두에게 조금 더 다정해야 한다, 조금 더 친절해야 한다. 아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더 잘 알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그런 따뜻함을 베풀면, 그 마음을 받은 사람도 누군가에게,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마음을 전달할 것이라고. 조금 식은 온기도 아주 추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온도 일지 모른다.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켜듯, 순식간에 사그라들더라도 나는 매일 성냥갑을 열어 작은 나의 성냥을 꺼낸다.
미운 그들을, 용서한다.
나의 미워하는 마음과 모난 구석이 더 이상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다. 용서는 받는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언제나 나를 위한 이기적인 마음이다. 그러니 이기적으로 나는 오늘의 당신을 용서한다. 내일의 당신은 내일의 내가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란다.
6
두서없는 글을 썼다. 정말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런 마음, 저런 마음을 털어놓고 나니 지금은 꽤나 편해졌다. 그리고 휴게 시간이 끝났다. 돌아가서 다시 일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