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춥다. 평소처럼 걸어도 손마디가 시리다. 손끝이 시리고 욱신거린다. 손이 울고 있는 것 같다. 마음이 손에 가있다 싶었다.
2
어제 하다가 첫니를 뺐다. 5살인 아이가 벌써 이를 뺐다. 조금 아팠지만 하나도 울지 않았다고 엄청나게 자랑을 했다. 엄마는 며칠 동안 조금 속상하다고 엄청나게 울어 젖혔는데. 뿌듯해하는 표정을 보고 있으니, 나도 그럴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참을걸. 아픔이야 똑같고, 운다고 해소되지 않을 고통이라면 이겨내고 웃어볼걸.
이가 빠진 자리에서는 거즈를 물고 있어도 자꾸만 피가 흘러나왔다. 사람이 빠진 자리, 마음이 빠진 자리가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피가 흐르면 뱉고, 잠시 거즈를 물고 기다리다 보면 빈자리가 아프지 않은 순간이, 그저 익숙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는 법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동안의 격려를 거즈 삼아 마음에 대어 본다.
언젠가는 그칠, 이 마음을 기다리며.
3
새롭게 지어 받은 이름을 다시 보았다.
지난 이름들을 떠올려 본다. 실수인지 같이 보내진 이름의 후보들도 살펴보았다. 그중에는 서희라는 이름이 있었다. 기쁠 희였다. 행복에 다다른다는 이름도 있었다. 이름을 보고 뜻을 보고 있으려니, 행복해지고 싶은 내 간절함이 이렇게 닿아있구나 싶었다. 그저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지독하게 외로워도 아닌 척하는 마음을 가소롭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4
영화 한 편을 봤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나의 결혼을 떠올렸다.
완벽한 조건의 남자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비슷한 남자가 있기는 했다) 내가 내 남편과 결혼하기로 결정했던 순간의 생각이 스쳤다.
남들이 뭐라고 하건,
너랑 살면 재밌겠다 싶어.
그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니 그런 그에게 내가 지독한 연정을 보여달라는 것도, 헌신과 배려를 원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초라한 면이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사는 건 재밌을 때가 있다. 힘들어도, 속상해도, 궁핍할 때가 있어도 그래도 그런 모든 면이 재미를 구성하는 거니까.
희극을 보더라도 맘 놓고 웃기 위해 희생하는 배우들과 작가들의 면면이 있듯이.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살면 행복하다는 내면의
지혜가 그때 그 결심을 가능케 한 게 아닐까?
5
오늘은 미루고 미루었던 운동을 갈 시간이다. 이번 주 첫 운동이다. 가기 전 10분만 쓰려고 했던 것이 30분이 되었다. 내내 들고 다니던 키보드를 마침 놓고 오자마자 이렇게 쓰고 있다. 이젠, 힘을 쓰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