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5 월의 기록

by 이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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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의 <쓸 만한 인간>을 읽고 있다. 아니 듣고 있다. 아니 듣다가 읽다가 듣다가 읽고 있다. 오디오북은 처음이다. 처음 들었던 오디오북은 너무 아나운서 톤이라 뉴스 같아 싫었다. 줄줄이 옳은 말만 할 것 같은 느낌. 옳은 것은 이미 안다. 행하지 못할 뿐. 나는 첫째 병이 있어서 가르치려는 말투는 참을 수가 없다. 그다음에 들은 책의 낭독자는 배우였다. 연기할 때는 괜찮았는데, 책을 듣고 있자니 가청성이라고 해야 하나 단어 하나하나 가 귀에 들어오지 않고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짜증이 났고, 그 책도 읽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다 읽었다. 그러니까 내가 왜 이 책을 읽게 됐는지, 읽고 나서 어떤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또 서두가 이렇게 길어지고 말았다.


우연히 SNS에서 청룡 영화 시상식의 화사의 공연을 봤다. 거기서 박정민을 봤다. 조금 반했다. 옆에 현빈이 있는 지도 몰랐다. 뮤비를 찾아봤다. 그러고서 또 반했다. 공연을 봤다. 세 번째로 반했다. 하루 종일 노래를 듣고 뮤비를 봤다. 아이들이 질렸다고 아우성을 쳤다. 무시했다.


그가 책을 썼고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오디오 북을 먼저 내는 이유도. 나는 생각보다 그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유명인들이 책까지 쓰는 게 고깝지가 않다. 그래서 연예인이나 배우가 내는 책은 웬만해서 사지도 읽지 않는다. 추천하는 책도 읽지 않는다. 돈벌이가 확실한데 남의 밥그릇까지 뺏어가는 게 밉다. 내 밥그릇도 아니면서 오지랖이다. 거기까지 해야 속이 시원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읽어보지도 않고서 그가 책을 쓴 것을 아니꼽게 볼 수가 없었다. 새벽이었고, 웹툰은 보기가 싫었고 영상도 보기가 싫었다. 책을 보고 싶었지만 눈은 좀 감고 있고 싶었다. 박정민이 자기가 쓴 책을 읽는다고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의 책을 들었다. 듣는 게 읽는 게 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하지만 읽다가 듣고 듣다가 읽으니 읽으면서도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의 목소리가 엄청나게 감미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직접 겪은 일을 배우가 읽어주니 그렇게 찰 질 수 없다. 종일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기록을 보니 4시간을 넘겼다. 오늘 하루만 해서 우리 집 남자들 목소리 보다도 더 오래 들은 셈이다.


언젠가, 그의 회사에 내 글을 기고해 보고 싶다. 나는 오래 쓸 테니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가 내 글을 읽고 한 번쯤 고개를 끄덕거리는 상상을 해본다. 화사의 무대를 바라봤던 그 눈 빛으로 읽어준다면 감사하겠지만, 상상만으로 만족해 보려고 한다.


오늘 아침 남편은 말했다.

여보도 여기저기서 정보성 글 짜깁기해서 책 내. 다들 그렇게 하고 돈 벌더라.


그리고 나는 말했다.


그게, 그런 게 안 되는 사람이지 나는. 그게 됐으면 이미 그렇게 했지.


남 등쳐먹고 속이고 그렇게 번 돈으로 떳떳할 자신이 없다. (말는 저렇게 해도 남편도 그렇게 못 산다. 그랬다면 우리가 이렇게는 안 살고 있겠지.) 좋은 사람은 아닌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쓸 만한 인간을 읽다가 글을 너무 쓰고 싶어졌다. 그래 나 같은 인간도 글을 쓸 수 있는 인간이지 싶었다. 그리고 세상에 조금 쓰임이 되는 인간이라면 좋겠네. 하고

그의 심드렁한 말투를 가져다 내 글에 붙여본다.



2


아이의 학교 앞이다. 10분만 쓰고 데리러 가려고 했고 10분이 지났다. 오늘은 운동은 못하고 국밥만 달렸다. 엄마 노릇한다고 오늘 꽤나 고생하고 있고 아직 고생이 조금 남았다. 저녁엔 에세이 모임이 있다. 순간순간에 집중하려고 한다. 지금은 엄마 모드 ON. 정민 오빠 목소리는, 조금 있다가 들어야지.



3


완독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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