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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심 Sep 29. 2020

선생님,  벼가 노랗게 익었어요!

 명*씨는 글씨와 숫자를 모른다. 빳빳이 들고 있던 벼가 고개를 숙이면 추석이고, 크리스마스 행사가 끝나면 설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챈다. 일 년 중 유일하게 집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명절에는 날 데려갈까?’ 하며 명*씨는 전화기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집에서 전화가 왔는지 하루에도 수

십 번 묻는 명*씨의 마음에는 생채기가 생긴다. 명절 한 달 전부터 자신을 데려가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에 속을 끓인다.


 “엄마, 이번에 나 집에 갈 수 있지?” 하며 명*씨는 엄마에게 확인 전화를 건다. 어머니의 육두문자와 ‘매번 오는데 왜 물어보느냐며?’ 어머니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듣는 이가 무안할 정도로 타박이 심하시다. 어머니가 ‘집에 와도 된다.’는 대답을 듣고 나면 명*씨는 안정감을 찾는다. 전화를 끊은 뒤부터 명*씨는 ‘이번 명절에 무슨 선물을 사 갈까? 고민하신다.


 여기 사시는 장애인들은 평균 연령이 40~50대다. 그러다 보니 그분들의 부모님은 연세가 많으시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부모님들께서 시설에 방문하는 횟수가 많으셨다. 지금은 이동하기 불편하실 정도로 연세가 많이 드셨다. 이제는 명절이 되면 시설에서 장애인들을 집으로 모셔다 드리기도 한다.


 명절이 다가오면 보호자님들께 전화를 드린다. 연락을 취하면 '명절을 함께 보내겠다.'라고 하거나 '친인척들이 모이는 자리에 자식이 오는 것이 부끄럽고 불편하다'라고 두 가지의 답변들로 돌아온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장애인들은 즐거운 명절이 되겠지만, 시설에 남는 장애인들은 우울한 명절을 보내게 된다. 가지 못하는 장애인들은 가는 분들에게 질투가 나서 연휴기간 동안 일부러 이불에 오줌을 누기도 한다. 시설에서는 집으로 가지 못하거나 무연고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명절 음식 만들기, 게임 등 명절 행사를 진행한다. 부모님의 역할로 원장님께서는 자신의 사비를 털어 시설에 남아있는 장애인들을 위해 빳빳한 세뱃돈을 준비하신다. 다양한 명절 행사를 하지만 그 허전한 마음을 달래지는 못한다.


 명절날 함께 보내지지 않는 보호자들이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본인의 자식이고 형제인데 다른 날도 아니고 명절에 여기 계시는 가족들과 보내지 않는 것에 대해 원망도 되고 속이 상한다. 몇 해 전 기사가 난 것이다. 지적장애인이 명절에 집에 갔다가 노부모님의 자신들이 죽은 후 자녀가 걱정되어 동반 자살한 기사를 보았다. 그 부모의 마음이 이해되었지만, ‘장애’로 인해 자기의 의사와 상관없이 생을 마감해야만 한 장애인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 기사를 접한 후 집에 가신 장애인들이 무사히 다 돌아오시면 안도감에 마음을 쓸어내린다.


 한국은 아직도 장애인을 둔 가족은 국가가 아닌 전적으로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그 부담감은 이룰 말할 수 없다. 국가가 그 짐을 어느 정도 책임져 주었다면 누구나 즐겁게 보낼 명절날에 참담한 기사는 접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명*씨가 집에 가기 전, 엄마에게 선물할 명절 선물을 미리 사놓는다. 집에 가기 전까지 머리맡에 두고 자는 일이 몇 년이나 더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그 설레는 마음이 아주 오랫동안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곧 다가올 명절에 명*씨의 발걸음이 가벼울 것에 미소가 지어진다.


참고:이번 명절은 코로나로 인해 시설장애인이 귀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글은 평상시 명*씨가 명절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쓴 내용입니다.


사진출처:인스타 gyuuuun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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