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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심 Jul 28. 2020

그냥 넌 다 똑같은 제자였다.

“엄마! 다음 주에 담임선생님께서 가정방문 오신대.”

“오셔도 딱히 드릴 말씀 없는데……. 미리 말해 두는데 대학 갈 생각은 하지 마라.”

 나는 엄마의 말에 몹시 서운했다. 그때 우리 집은 아빠의 사업실패와 동생의 골수암으로 인해 병원비로 대학 갈 형편이 아니었다. 그 당시 쌀 살 돈이 없어 이웃집에 쌀 동냥을 해야 할 정도로 어려웠다. 하지만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나는 대학에 꼭 가고 싶었다.    


 며칠 뒤 담임선생님께서 가정방문을 오셨다. 엄마는 담임선생님을 맞이하셨지만 반가운 표정이 아니셨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담임선생님께서 “순심이도 대학 보내실 거죠?” 하고 엄마에게 물어보셨다. 엄마는 단호하게 ‘대학 보낼 생각이 없으시다.’고 하셨다. 혹시나 하고 기대를 건 나는 엄마의 말에 크게 실망하였다. 나의 표정을 보시고 담임선생님은 대학 가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을 대신 전달해 주셨다. 하지만 엄마는 나의 장애로 위해 대학을 가도 취업이 쉽지도 않을 것이고 대학 보낼 형편도 안 된다고 하셨다. 엄마는 ‘만약 내가 국립을 가게 된다면 생각해보신다고 하셨다.’ 담임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래도 순심이가 대학 갈만한 곳이 있으며 무엇보다 나의 의사가 중요하다고 말씀을 하신 후 담임선생님은 집을 나섰었다. 왠지 담임선생님의 말에 희망이 보였다.    


 한날은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부산대에서 주최하는 백일장 대회가 있으니 한번 참가해보라고 하셨다. ‘제가요?’ 나의 표정이 의아해하는 것이 느껴지셨나 보다. 담임선생님은 작가 중에 르포작가 등 작가들도 다양한 길이 있으니 경험 삼아 도전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특출 나게 글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국문학과를 희망한 것을 담임선생님도 알고 계셨다. 그날 백일장을 가지 않았더라면 대학에 가고자 하는 마음을 접었을 것이다. 그날 교정에서 두 손에 책을 안고 걸어가는 대학생을 보았다. 여유가 있어 보이는 그 모습이 부러웠다. 내가 본 그날의 대학생들은 TV에서 보는 것처럼 ‘낭만’ 그 자체였다. 나도 그 낭만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한 번은 친구가 “선생님은 왜 다른 선생님들처럼 공부 잘하는 애들을 예뻐하지 않으셔요?”, “공부 못하는 얘들만 챙겨요?” 하며 질문을 했다. 그러자 담임선생님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내가 안 챙겨도 잘하니깐 굳이 안 챙겨도 되잖아. 나는 내가 챙겨야 하는 애들을 챙길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 그렇게 대답하시는 담임선생님이 참 멋있게 보였다.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공부를 못해서 담임선생님께 관심받는 내가 더 좋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그 당시 제2외국어로 일어를 배웠다. 암기에는 자신 있는 나는 일어에 흥미를 느꼈다. 쪽지 시험에서도 늘 좋은 점수를 받았다. 좋은 점수를 받자 일어 선생님은 반 친구들에게 ‘순심이는 장애가 있어도 열심히 하는데 너희들은 뭐하니?’라고 반 친구들 대상으로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모욕감이 느껴졌다. ‘쪽지 시험을 잘 보는 것과 내 장애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장애로 인해 일어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나는 단지 재미있어서 한 것뿐이었다. 친구들 대상으로 훈계용으로 나를 이용하는 것이 기분 나빠서 그 후로는 일본어 교과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초등학교부터 고2까지 대개 선생님들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두 가지였다. ‘장애’가 있어서 나를 배제하거나 무조건적인 배려로 나를 대하셨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달랐다. 체력장에 오래 달리기가 ‘자신 없다.’고 말하면 열외 시키는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일단 뛰어보라고  말씀하셨다. 또 ‘네가 원하면 해야지’ 하면서 기회를 주셨다. 나를 ‘장애인’이 아닌 ‘학생’으로 봐주셨다. 난 그런 담임선생님이 좋았다.    


 대학 입시원서를 쓸 시기가 다가왔다. 선생님은 엄마의 의사보다는 내가 갈 수 있는 대학들을 찾아봐 주셨다. 그 덕분으로 나는 대학을 갈 수 있었다. ‘만약 그때 나의 의사가 아닌 엄마의 의견에 따라 원서를 써 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나를 ‘장애인’으로 보신 게 아니라 ‘학생’으로 봐주셨다. 그 시선은 '배제'가 아니라 '관심'으로 나를 보셨다.    


 사람들은 ‘저 사람은 너무 말라서 나약해 보여’, ‘저 사람은 외국인이라서 일 처리를 능숙하게 하지 못할 것이야.’ ‘저 사람은 경험이 없어 믿음이 안가!’ 등 저마다의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해 버린다.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그 기회가 누군가에는 쉽게 얻어지는 것일 수도 있으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간절함일 수도 있다.     



출처:https://blog.naver.com/lovej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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