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사에 Nov 09. 2020

씨어를

SEATTLE

  포틀랜드는 미국 서부의 도시  하나로 시애틀과 캐나다에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여름 방학  달을 보내게  포틀랜드로 가는 직항이 없어 시애틀에서 내려 포틀랜드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아웃 모두 시애틀이었기에 시애틀에 머문 시간은 도합 2-3 정도가 되겠지.


 이상하게도 짧은 시간 동안 시애틀에서 있었던 일은  누구에게도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여행을 시작하려면 시애틀부터 돌이켜봐야 하기 때문에 사진들을 뒤적이며 그때를 회상해보았다.


외국에 나가면 가장 무서운 것은 빠르게 달리는 높고 큰 차들이다. 멋진 구도라며 좋아하며 찍었지만 어딘가에 착 붙어 소심하게 셔터를 눌렀을 나를 알고 있다.

 미국에 가기   전부터 미국 항공사의 동양인 차별과 정당한 이유 없이 승객을 퇴실시킨 내용에 대한 기사가 여러  포탈에 올랐다. 그중엔 델타 항공사도 있었지만  표를 찾다가 나는 결국 불안감을 가득 안은  델타에 몸을 싣고 시애틀에 가게 된다. 우리 학교의 여름 방학 프로그램을 다녀오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하나같이 출국 전에 여러 불안함과 부담감에 우울감에 빠지는  같았다.


 그것은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러 가지 생각에 잠식되어 생산성 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좌석 지정을   나는, 비행기의  , 화장실 바로  좌석의 정중앙에 앉아 시애틀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좌석은 널찍하고, 악명 높은 기내식도 너무 맛있었고, 승무원들은 한국말이 유창했다. 가끔 불친절하긴 했지만. "You eat Chicken."(그냥 다른 메뉴가 떨어졌다고 말을 하지.. 쏘리 한마디 없이 기내식을 퉁하고 내려놓고 갔다) 시애틀에 무사히 내린 나는  와중에도 길어지는 입국 심사에 환승을 놓칠까 걱정하던  자리 아줌마를 돕기도 했다.


고맙다는  한마디도 없이 그냥 뒤를 돌아 입국 심사대로 들어가던 아줌마.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들을 만나러 간다던 그녀는  도착했을까.


아무도 없던 정리 안된 샌들 코너, 그 위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아름다워 한참을 바라보다가 셔터를 눌렀다.

 입국 심사에 대해 하도 말이 많아서 바짝 긴장해서  차례를 기다렸다. 입국 심사관들의 인종은 다양했는데,  바로 앞에서 백인 남자 심사관이 동남아권 가족에게 소리를 (거의) 지르다시피 "Write down all again. HERE, AGAIN." 유치원생 대하듯 짜증 내는 것을 봤다. 나의 입국 심사관은 "Hello, sir."이라는 인사도 받아주지 않았지만 내가 왕복 항공권을 가진 것을 확인하고서는  들여보내 주었다.


 생각보다 아주  시간을 잡아먹었던 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니 언제 체크인을 하냐고 호스트(제니퍼라는 가명으로 부르겠다) 문자로 닦달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문자 폭탄에 어이가 없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체크인을 마쳤다. 공항 옆에 있는 집이었기 때문에 나의 옆방엔 호스트의 지인인 기장과 스튜어디스(여자분은 한국분, 미셸이라는 가명으로 부르겠다) 부부가 묵고 있었다. 미셸과 제니퍼에게 왜인지 호구조사와 여기에 돈을 얼마 내고 왔으며 어디를  것인지에 대해서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는 기분으로 설명하고 나서야  방에 들어가  시간을 기절할  있었다.


 일어나니 배가 고파져 먹을 것을 사러 슈퍼마켓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대낮같이 밝은 도로에 사람도 차도 없는 것이 왠지 불안해 시계를 봤더니  10시가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시애틀에 백야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쫄아서 10 거리에 있는 슈퍼마켓도 가지 못하고 집으로 종종걸음으로 돌아와 캐리어에서 꺼낸 신라면을 뽀개 먹었다.    


헷갈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려보았습니다.

 

배고픈 둘째 날이 밝았고 다음 날엔 포틀랜드로 가는 공항에 가야 했기에 오늘 시내 구경을 혼자 다녀오기로 했다. 미리 끊어둔 크루즈를 타고 그레이 아나토미의 배경인 시애틀 그레이스 병원과 스페이스 니들을 보고 타겟에 들렸다가 해가 지기 전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 나를 그렇게나 닦달하던 호스트 제니퍼는 잠을  자고 나서인지 나에게 동네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슈퍼마켓에 데리고 갔다.(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동네 구경시켜준다고 이마트를 데려간 격인데, 실제로  동네 사는 사람들의 삶을   있어서 좋았다) 가는 도중 블랙베리 덤불에서 블랙베리를 따며 이것이 맛있게 익었으니 먹으라며 자꾸  입에 출처가 불분명한 블랙베리를 넣어주기도 했다.


 이혼을   나만한 나이의 딸을 대학에 보내고 혼자라 적적하다던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친적집에  것같이 친근하면서도 불편한  감정의 출처를   있을  같았다. 하지면 여전히 명확하게 말할  없다. ^^;; 이모티콘 정도로 표현이 가능하려나.


여행을 가면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다. 갈 곳, 속할 곳이 있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하다. 정작 나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도피한 여행자이면서.

 집에 돌아오니 미셸 아줌마가 나에게 샤워 커튼은 밖으로 해놓고 샤워를 하는 것이 아닌 샤워 부스 안으로 넣어야 물이 새지 않는다고 마치 나에게 한국인의 커먼 미스테이크를 바로 잡아줄 사건이 생겨 기쁘다는 듯이 가르치는 투로 이것저것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마 그녀에게는 나라는 존재가 그녀의 자아를 채워줄 아주 손쉬운 존재처럼 보였던  같다.


 그리고 샤워 커튼 이야기가 이어져  달간 머물 것이지만 남자 친구를 사귀어서 여기 머물 생각을 해보라는 .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내고 묵는 곳에서  저런 취급을 당해야 했는가 정말 의문인 여러 가지 말들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어쩔  없는 유교문화에 물든 나란 K-인간은 어른들이 말하면 그냥 일단 네네 웃음웃음으로 대처하는 데에 미국에서 마저 익숙했던 것이다.


시애틀 바다의 윤슬. 지금도 느껴지는 바람과 사람들의 대화 소리.

   왠지 지쳐버려 방에 들어와 짐도 싸지 않고 그냥 누워서 잠이 들어버렸다. 그러고 조금 있다가  방문을 마구잡이로 두들기며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셸 아줌마였다. 시차라는 무서움을 모르고 있었던  나는 자신만만하게  시간만 자겠다고 해놓고 숙면을 해버렸던 것이다. 미셸은 결국  방으로 쳐들어와(정말로.  열어봐 사에씨 내가 도와줄까? 쿵쿵쿵 쾅쾅쾅 어어 사에씨 늦겠다!)  방을  뒤집어 짐을 같이 싸주었다.  와중에도 호텔에 가면 모든 물건을 그냥 침대 위에 둬야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도움은 많이 되는데 기분은 나쁜 충고도 잊지 않았다.


 빨리 택시를 잡아 10 거리도  되는 공항으로 향하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제니퍼는 이웃들 몰래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있어 캐리어를  검은 머리의 내가  앞에서 우버를 기다리면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미셸 아줌마가 나섰는데. " 친구는 너의 친척인 것으로 얘기하면 . 그리고 제니퍼 너의 차로 사에를 공항에 데려다주면 그녀가 너에게 10불을 주는 것으로 하자. 그리고 사에 씨는 에어비앤비 평점을 만점을  거야. 후기도  써줘야 ." 그렇게 나는 그녀들과 함께 차에 올라탔다.

 

한 달 뒤에 보자 시애틀 바이 바이.

 승무원이었던 미셸 덕분에 나는 델타 게이트를 빨리 찾아 들어갈  있었고 정신없이 포틀랜드로 가는 경비행기를   있었다. 미셸은 친절하게 수기로 미셸 아줌마- 번호, 자신이 가진  개의  주소를 모두 나에게 적어 나의 여권 케이스 옆에 끼워주었다. 나를 보내면서도 제니퍼의 에어비앤비 평점을  주라고 당부하던 미셸.


 그녀들과의 관계는 이상하게 모든 것이 기브  테이크였는데 정말로  도움을 받은 면이 있어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이유도 너무나 수지타산이  떨어져서 기억하고 추억할 것들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인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에 가면 유토피아가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