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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에 Dec 21. 2019

25.9살에 다녀온 첫 유럽

한국에서 눈이 마주쳐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면 도망칠거먼서

 이것은 조금의 사족이 담긴 글이지만 창작을 계속 이어가는 방법 어쩌구 저쩌구를 쓰던 나의 글보다는 재미있을지도 모르겟다. 뭔가를 만들겠다는 나는 이유도 없이 한풀이 꺾인지 오래되었기때문이다.

 

 미국에서 한달간 머물 때 나는 시애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맞는 나라로 잘 왔다고 생각했다. 몰몬교를 믿는 가족의 집에 영문도 모르고 며칠 머물게 되었을 때도, 해외에서 만난 한국인들과의 마찰이 있을 때도 그냥 영문도 모르고 멍하니 지나갔더랬다.(사실 울고불고 난리치긴해찌만 구것은 미국의 문제가 아니었더랬다..) 어찌됐던 나는 미국의 문화가 흡수되듯 편했다 그들의 미소와 스몰토크가 남들은 가식적이라 할지라도 나또한 항상 미소짓게 할정도로 딱 그정도로는 매일 행복했다.


 독일은 발을 딛자마자 기분이 나쁜일들이 우후죽순 생겼다 해외나와서 같잖은 영어로 한국인 무시하는 한국인을 입국심사대에서 만났고 그가 입국심사대를 지나가자 그의 영어를 인종차별하는 입국 심사원들의 대화를 알아듣고서는 또 짠하면서 기분이 두배로 나빠졌다..ㅏ

이곳이 유명하다는 프랑크프루트의 유로타워 이보다 유럽다울순 없지


10일 여행중에 8일정도 아팠고 10일이 피곤했다.독일 음식은 미국음식의 두배는 짰고, 맛있다! 하는건 초콜렛밖에 먹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에 돌아와 이글을 쓰는 내가 기쁘냐고? 허해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심정이다 차라리 미국에서 돌아왓을 때처럼 우리집 앞의 월마트를 구글맵으로 찾아보며 부여잡고 울다가 끝이나면 좋겠다만 지금으로서는 무엇을 그리워해야할지 무엇을 슬퍼해야할지도 모르겠는 것이 그립고 슬프다.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하이델베르크의 강을 건너던 때의 일이다. 도착한 첫날에 도시의 강을 건넜다. 춥고 몸도 아프고 독일 음식이 드럽게 맛이없다는데에  실망한 상태로 강을 건너던 중 다리에 끈으로 묶여 바람에 왔다갔다하는 한 젊은 남자의 사진과 밝혀져있는 촛불들에 눈이 묶였다. ‘이곳에서 지금의 삶과 작별인사를 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세네번 그곳을 왔다갔다 하니 그의 미소가 내 마음에 깊이 박혀버렸고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도 그를 생각하게 되었다.

 

낮에 찍은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하이델베르크 저 다리가 그 다리

 하이델베르크의 그 강이 한강이었다면, 그 사진이 그렇게 그곳에 놓일 수 있었을까? 한강에 가지않는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지만 나는 아마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들이 먼저 세상과 작별을 고한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이 곳의 사람들에게는 중요하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내가 살아온 방식과는 참 다르다고 느꼈다. 나의 소중한 사람이 어딘가에서 삶을 먼저 마감하기로 택한다면 나는 그 장소에 그의 사진을 두고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바랄 수 있을까? 오해는 하지 마시라 나는 지금 나의 한국에서의 삶이 행복하지않고 많이 지쳐있지만, 내가 촛불을 밝히고 사진을 붙인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분명 모일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하지 않는 나와 독일 사람들의 차이가 신기했다. 그 당연함이 나에게 결핍된 무언가인가 하고 생각했다.


21살때 제주도 땅을 처음 밟아본 내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에게 들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호주에도 있어봤고 서울에도 제주에도 있어봤지만 서울만큼 외롭고 삭막한 곳은 없었다고. 계단 올라가며 나누는 소소한 스몰토크가 없는 것이 삶에서는 큰 차이라고. 서울에서만 살아온 나로선 그땐 그가 사대주의자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나는 그때의 그의 나이가 되려면 한참 남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말에 너무 깊게 공감한다. 스몰토크가 친근함의 표현이자 조금 귀찮은 예의의 표현일수 있지만 지금의 내가 스몰토크를 보는 시선은 사람을 사람으로 인식한다는 데에 있다. 내가 탈 버스를 운전해 주는 사람을 운전하는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 집 주변에서 자주 보는 똑같은 얼굴을 나의 이웃으로 인식하고 말을 거는 것, 옆 자리에 앉는 나와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의 이름을 자발적으로 묻는 것. 그런 신변잡기적인 수다스러움이 좋다. 그 사소한 경험을 위해 자꾸만 여행을 떠나고 싶다. 서울의 중심에서도 중심에 살고 있는 나도 이 곳이 그 어느곳보다 삭막하다고 느낀다.


 독일 유학을 다녀온 오빠가 이번 여행의 안내를 도맡았는데 오빠는 독일 사람들이 쇼윈도에 진열된 물건들을 고심히 바라보는 것. 그걸 가지고 한참을 옆에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정말로 쇼윈도에 다가가서 물건을 보는 독일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내가 살면서 빤히 쇼윈도를 바라본적이 있었나...왠지 모르게 창피하게 느껴져서 흘낏보고 지나간적이 다였던 것 같다. 물건을 보라고 진열하면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 왜 이리 신기하게 다가왔을까.


그리울 것 하나 없다고 생각한 독일 여행이 끝난

후에 오빠는 새언니와 유학시절에 먹던 맥주를 몇병이고 사들고 가 새언니와 나눠먹으며 울었다고 하고 엄마는 돌아오는 날부터 히스테릭하더니 방에 들어가 문을닫고 나오지 않으신다 나는 울지도 못하고 누워서 하염없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이 글을 쓴다.


재미없던 나라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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