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언니의 지난 서신을 읽고 난 후 영감의 스위치가 켜질 땐 탁 하는 소리가 나는 것만 같습니다. 이번엔 제가 작업실의 스위치를 켜는 소리였습니다. 작업실이라고 썼지만 남편과 제 책상이 기역자로 각각 놓여있는 방 한 칸이며 주변에는 미엘이 아직 가지고 놀기엔 이른 장난감들과 책을 담은 박스들이 쌓여있습니다. 방 안을 둘러보며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저만의 취향이 담뿍 담긴 작업 공간을 갖고 싶다고요. 지난 주에는 성수동에서 열린 라이프집 팝업 전시에 다녀왔습니다. 크리에이터들의 작업실이나 거실 등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일오세님(@eunoia.weekdays)의 작업실에서는 조금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자신의 취향을 오랜 기간 차곡차곡 쌓아올린 게 분명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소우주 같았던 그 곳은 여느 잡지에 소개되는 어떤 트렌디한 공간보다도 아름다웠어요.
현실로 돌아와 미엘을 위한 용품들에 점령당한 저의 작업실과 그에 못지않을 언니의 다락을 생각해봅니다. 나의 공간을 내어주는 것, 아니 나의 중심을 기꺼이 점령당하는 것. 육아라는 건 일단 그걸 전제로 시작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작업실 뿐인가요, 육아 현장의 꽃은 단연 거실이지요. “이 집에는 15개월짜리 아기가 있어요!” 하고 목청껏 외치는 듯한 거실, 아기 책에 밀려난 저와 남편의 책들, 아기 식기와 빨대컵 등에 떠밀려 찬장 안쪽으로 자취를 감춘 저의 머그컵들, 놀이매트를 깔기 위해 돌돌 말아 베란다 한쪽 구석으로 철수시킨 아끼는 노란색 카펫. ‘밀려난 나의 것들’에 대해서 열거하자면 끝도 없지만 뭐 이제 와서 딱히 그 정도로 우울해지진 않습니다. 미엘이 잠든 동안 전 다시 꼼지락거리며 제 몸집만큼의 공간을 확보해내니까요. 딱 이것 하나만이라도 지켜낼 수 있으면 괜찮아! 하는 마음으로요.
바로 글을 쓰는 일입니다.
하루의 끝, 꺼져가는 불씨에 탁, 나만의 시간이라는 불을 다시 붙입니다.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해변의 폭죽처럼 타다닥 타이핑을 합니다. 건반을 연주하듯 손가락이 가볍게 키보드를 넘나들며 내는 소리와 손가락 끝에서 지그시 튕겨오르는 느낌이 좋아 졸린 눈을 하고도 노트북을 열어 글을 씁니다. 내가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고요의 시간, 나만이 아는 마음의 소리를 타닥타닥 활자로 탄생시키는 이 행위를 어떻게 설명해야할까요. 이게 왜 이렇게 좋고 간절한지를 언니는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크루즈 시절, 이국의 낯선 도시를 옮겨 다니며 글을 쓰는 시간을 사랑했습니다. 기항지에서 주어진 네 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은 제대로 된 여행을 하기엔 짧지만 마음에 드는 카페에 앉아로컬 커피를 음미하며 글을 쓰기엔 충분한 시간이었지요. 기항지에서 글을 쓰는 호사는 사실 항상 누릴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닙니다. 전날 근무가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바깥이 유럽이든 알래스카이든 다 포기하고 잠을 선택할 때도 많았어요.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저에게 크루즈 근무는 약간의 애로사항이 있었어요. 13만톤이 넘는 커다란 배는 4천명 가까이 되는 승객들과 천 명이 넘는 크루들로 북적입니다. 근무시간엔 동료들과 복닥거리고 세계 곳곳에서 온 승객들을 상대하며 긴 하루를 보낸 뒤 캐빈에 돌아오면 룸메이트가 있죠. 그러니 나만의 공간이라고 할 만한 곳은 작디작은 크루캐빈 안 제 침대 뿐이었어요. 침대 안으로 쏙 들어가 머리맡 노란 조명을 켜고 커텐을 치면 그 공간만큼은 나만의 세계가 되어 전 그 곳에 종종 숨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썼습니다. 갈증을 해소하듯 쓰고, 쓰고, 또 쓰던.. 그랬던 때가 있었습니다.
비슷한 마음으로 임신 중에도, 출산을 하고 나서도 썼습니다. 하반신 마취 상태로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 와중에도 나중에 꼭 쓰고 싶은 문장들을 계속해서 되뇌었습니다. 집에 와서는 유축을 하면서 썼습니다. 그땐 더 악착같이 썼습니다. 종일 집에 있으면서 한 문장도 쓰지 못한 채 하루를 마감하는 기분은 참으로 우울했거든요. 그런데 글을 쓰지 않아도 다급함이 생기지 않는 날들이 하루 이틀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하루는 일주일 내내 글을 쓰지 않았는데도 예전처럼 “아.. 써야하는데..” 하는 기분이 들지 않더군요. 아기가 잘 때 옆에서 같이 자버리거나 넷플릭스 같은 걸 보면서 시간을 때우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습니다. 남편한테 말했죠. “아득바득 내 시간을 챙겨서 뭔가를 하겠다고 끙끙대느니 그냥 포기하니까 편해” 그때 남편의 걱정스러워 하는 눈빛을 기억합니다. 아무튼 한동안은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끝나지도 않았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남편은 가끔 말했습니다. “You have to keep writing”. 그땐 그 소리도 듣기 싫었죠.
언니, 우리가 둘 다 ‘쓰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된 그 날의 오후를 복기해보고 있어요. 제 기억이 맞다면 우리는 주민센터의 놀이방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뒤 집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고, 횡단보도를 건너며 제가 “가영씨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라고 물었어요. 그러고는 질문이 과거형이었다는 걸 깨닫고 “아.. 그러니까.. 휴직 중이세요?” 하고 얼른 덧붙였던 것 같습니다. 언니는 처음에 “아, 그냥 회사다녔어요” 라고 말씀하셨다가 “디자인 쪽 일 했었어요”하고 덧붙였구요. 언니가 디자인 일을 하셨다고 했을 때 “아, 역시” 하는 마음이었어요. 언니와 단우를 볼 때마다 어딘가 수채화 속 인물들 같다고 느꼈던 제 촉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아 그러면 복직 하시는거에요?”
“아뇨.. 그 일은 그만 뒀고 이후에 책도 출간하고 그랬었네요”
그 말엔 “아, 역시”가 아니라 “헉, 진짜요?!!!” 하고 외쳤던 기억입니다. 언니, 제가 정말 얼마나 반가웠는지 아세요? 내 옆에서 유모차를 끌고 있는 언니가 “쓰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요! 언니는 어떤 글을 쓸까, 무척 궁금해하며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밀고 한 손으로는 언니의 저자 소개글을 읽으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 이후에 언니에게 두 가지를 여쭤봤던 게 기억나요.
“언니, 요즘도 글 쓰고 계세요?”
그리고
“언니, 우리 같이 글 써볼래요?”
사실 두 번째 질문은 실제로 질문형이었는지 아니면 “언니 우리 같이 글 써봐요!” 하는 제안형이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중요하진 않습니다. 그땐 언니와 지금만큼 잘 알게 된 사이도 아니었지만 왠지 같이 글을 써보면 재밌겠다, 이 사람은 이제 육아동지이자 동네친구이자 글 동료이다, 하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날 집에 와서 남편에게 신나게 이야기했거든요. 같이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고. 이제 다시 꾸준히 써볼거라고. 그때 남편의 눈에 스쳤던 안도의 눈빛이 기억나요. 남편은 알거든요. 제가 가장 저 다울 수 있는 시간이 바로 글 쓰는 시간이라는 것을요.
우리가 이렇게 서간문의 형식으로 함께 글을 쓰기 시작한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갑니다. 아기들과 함께 산책을 하며 이런 저런 수다를 늘어놓지만 아시다시피 긴 호흡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일주일에 한 번씩 통째로 몰아 읽는 재미가 좋습니다. 언니의 글에는 뿌리 깊은 나무 하나가 자리 잡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거기서 피어나는 나뭇가지와 잎과 꽃들이 아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한 그런 느낌이 동시에 들어요. 언니의 책을 읽을 때도 그런 기분이었어요. “제 책은 초반에 어두운 이야기가 많아서 좀 걱정됐는데..”라고 하셨지만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언니의 목소리는 결국 나다움을 찾아내는 과정에 이를 때까지 일관성있게 담담하고 단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언니가 육아를 하며 다시 번아웃이 찾아와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다지 걱정이 되진 않았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자신의 아픈 부분을 알고 정확히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였고, 책을 읽은 후에는 이미 자신다움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또 한 번 극복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만난 이후로 언니가 아침 산책을 시작하셨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나저나 저에겐 고난의 한 주였습니다. 미엘의 윗니 두 개가 또 나고 있는 중이거든요. 밤잠 중간에 깨서는 어찌나 서럽게 엉엉 울며 아파하는지 모릅니다. 보통은 조금 달래면 다시 잠들곤 하는데 이번 이앓이는 요란하네요. 덕분에 남편과 하루종일 몽롱한 상태로 연신 하품을 하는 중입니다. 밤에는 매운 맛이긴해도 깨어있는 동안에는 컨디션 최상에 낮잠도 세 시간씩 자고 밥도 평소보다 더 잘먹으니 그나마 다행이긴합니다. 모쪼록 저와 남편의 고난주간은 이번 주말로 끝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육아를 해보지 않으셨고.. 음.. 고난이란 건 무릇 상대적인 것 아니겠습니까.
문득 언니는 어떤 작업실을 갖고 싶은지 궁금해집니다. 단우와 미엘의 오만가지 장난감에 잠시 가려진 우리의 취향도 우리가 조금씩 더 알아가면서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게 되겠지요. 그때까지 꾸준히 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육아 동지이자 동네 친구이자 글 동료인
자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