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장마가 끝났나 싶어지니 이제 뜨거운 여름입니다. 아기를 데리고 나가는 것 자체가 위협적으로 느껴질 만큼 푹푹 찌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네요. 얼마 전엔 별 생각 없이 유모차를 끌고 아침 산책을 겁도 없이 멀리까지 나갔다가 열사병에 걸리기 직전의 상태로 집에 겨우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미엘은 땀을 좀 흘리긴 했지만 차양막 그늘과 유모차에 장착한 휴대용 선풍기 덕분에 큰 고생은 하지 않았네요. 하마터면 무책임한 엄마가 될 뻔 했습니다.
이렇게 몸이 축축 처질정도로 무자비하게 더운 날에는 알래스카의 청량한 여름이 그리워집니다. 아마도 2018년이었을거에요. 올해만큼이나 무더웠던 여름, 알래스카 크루즈로 발령을 받았을 때의 그 시원한 설렘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알래스카니까 여름에도 춥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얇은 티셔츠 위에 경량패딩을 입었다 벗었다 하면 딱 좋은 기온이었어요. 알래스카의 여름 햇살을 마주하고 있으면 이마가 제법 따끈해져 노곤해지지만 눈 덮힌 산과 빙하를 스치고 불어오는 바람은 청량하기 그지없습니다. 생각해보니 알래스카는 쨍하게 맑다기보단 대체로 어딘가 푸르스름하고 촉촉하게 선명했던 것 같습니다. 세계 여행을 하며 어디가 가장 좋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때마다 늘 조금 고민하다가 결국은 알래스카라고 대답합니다. 기회가 되면 다시 가서 조금 오래 머물러 보고 싶은 곳도 여름의 알래스카이구요.
언니, 맥주도 즐겨 드신다고 하셨었나요. 알래스카의 엠버 맥주가 참 맛있습니다. 주노(Juneau)라는 도시에 정박하면 90년대 미국 영화에 나올법한 피자집에서 점심을 먹곤 했는데 그때마다 늘 엠버 생맥주를 곁들여 마셨어요. 그리고서는 적당히 업된 기분으로 가게를 나와 눈 덮인 산 밑의 다운타운을 행진하듯이 걸어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많이 웃고, 자주 취하고, 바쁘게 성장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갑자기 조금 그리워지네요.
<나는 크루즈 승무원입니다>의 가장 마지막 장에 이런 문구를 인용했었죠.
“한 곳에 머물러야하는 것이 우리 운명이라면, 우린 다리 대신에 뿌리가 있었겠지”
삶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뿌리 대신 다리가 있지 않냐고, 그러니까 한 곳에 머물 수는 없지 않느냐는 논리를 가진 제가 한국에 돌아와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똑같은 동네에서 4년을 살고 있어요. 매일 눈을 뜨면 새로운 도시에 정박하는 설렘을 누리며 서른이 넘어서까지 비교적 자유롭게 살아왔던 저에게 ‘엄마’라는 옷은 아직도 어딘가 낑기고 가려운 느낌입니다. 2.6kg로 태어나 가만히 누워서 모빌이나 보던 아기는 벌써 눈부시게 성장하여 거실을 다다다다 헤집고다니는데 저는 제자리에서 뿌리만 내리고 있는 기분에 종종 조바심이 느껴지곤 합니다. 하루 종일 아기와 집에만 있으면 그런 기분이 도드라지고 그게 이틀이 되면 조금 우울해지고 거기에 수면부족까지 겹치면 슬슬 남편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에겐 산책이 필수인가 봅니다. 산책을 하면서 늘 같은 자리에 서있는 진짜 뿌리가 있는 나무들을 두 발로 걸어서 지나치며 생각합니다.
‘나에겐 다리가 있지. 언젠가 다시 여행할 튼튼한 다리와, 함께 여행할 나의 꼬마가 있지.’
한여름이고, 알래스카가 생각났고, 그러다보니 그 곳에 머물렀던, 아직 머물고 있는 저의 모습이 있네요. 사실 이렇게 옛 추억을 떠올리거나 하루를 곱씹거나 미래를 생각하는 이런 모든 행위들은 글을 쓰는 지금이 아니면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나 가능합니다. 낮 동안에는 도무지 팔자 좋게 멍 때릴 시간이 없으니까요. 미엘의 움직임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잠시만 안보고 있으면 사고를 칠 때가 많아졌습니다. 화분의 흙을 파먹거나 신발을 핥기 직전일 때도 있고 단단한 표면에 얼굴을 콩 박아서 단박에 멍이 들기도 합니다. 에너지 넘치는 아기와 함께 밀도 있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 때도 많지만 말똥말똥 잠이 안와 알래스카와 플로리다를 넘나드는 추억들을 한참이나 소환해내는 밤도 적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언니는 잠이 안 올 때 어떻게 하시나요? 저에게 잘 먹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단 얼굴과 몸의 근육의 힘을 완전히 뺍니다. 나름대로 편안하게 누워있었는데도 의식적으로 힘을 빼려고 살펴보면 미간이든 턱이든 어깨든 어디 한 부위에 나도 모르게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편안하게 놓아줍니다. 길고 부드러운 호흡을 시작합니다. 몸에 힘이 1도 들어가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며 머릿속으로는 아무 생각이나 이미지가 마구마구 지나가게 둡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떠오르는 생각의 줌을 당겨 클로즈업하거나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두는거에요. 대부분 말도 안되는 맥락으로 온갖 생각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고 때로는 파도처럼 몰아치다가 밀려나가곤 하는데 몇 분 그러다보면 저도 모르게 까무룩 잠에 듭니다. 언니도 잠이 안 오는 밤에 한번 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어젯밤, 그렇게 아무 생각이나 막 하던 도중 저의 미래의 작업실에서 생각이 멈췄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깊게 생각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어제는 예외였습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생각의 꽁무니를 움켜잡고 일시정지를 걸어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거든요. 그 방 안에 뭐가 있는지 알아야만 했습니다. 이번 서신의 글감이었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들여다본 저의 작업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큼직한 창 앞에 놓인 저의 책상부터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몇 년 전 생일에 저의 글쓰기를 응원하며 남편이 선물해준 아담하고 단정한 나무책상입니다. 원룸 오피스텔에서 살다가 방 세 개짜리 아파트로 이사온지 몇 달 안 되었던 시점이라 가구도 몇 개 없이 텅 비어있던 거실, 남들은 소파를 놓음직한 자리에 새 책상을 당당하게 놓아두고 신이 나서 하루에도 몇 시간씩 앉아 글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미엘 왕국이 된 거실에서 쫓겨나 작은 방 구석 신세가 되었지만 언젠간 가장 멋진 명당자리로 옮겨 주리라 다짐합니다. 그 곳에 앉아 매일 조금씩 글을 씁니다. 지금은 주로 한 밤중에 쓰고 있지만 곧 환한 낮에도 글을 쓸 여유가 생기겠죠. 상상해봅니다. 마주한 창문에서는 늦은 오후의 노란 햇빛이 쏟아져 내리고 저의 영감도 빛과 함께 쏟아지고 키보드를 쉴새 없이 두들기는.. 그런.. 아.. 상상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도는 느낌입니다. 글을 쓰다가 조금 쉬고 싶어지면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쫘악 하고 커피 한 잔을 내려 바로 뒤편 모퉁이에 꾸민 서재로 이동합니다.
이미 책을 많이 처분한 상태이고 전자책도 꽤 애용하고 있기 때문에 책이 가득 꽂혀있는 서재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책들만 꽂아두는 용도의 작은 책장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언니와 제가 함께 쓴 책도 꽂혀있겠지요.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그 책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집니다. 이제 읽고 싶은 책을 골라보겠습니다. 기분에 따라 메리 올리버의 시집이거나 토니 모리슨의 소설이거나 하루키의 에세이일수도 있겠습니다. (하루키는 아무래도 소설보단 에세이가 좋습니다) 읽다가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니 미리 두 권을 뽑습니다. 저의 훌륭한 안락의자에 한 번 몸을 파묻으면 다시 일어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바로 저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허먼밀러 임스 라운지체어’입니다. 허리와 엉덩이의 각도가 푹신하면서도 안정감있는 상태가 되도록 요리조리 몸을 움직여 안착시켜봅니다. 아, 너무너무 편합니다. 원래 무겁고 중후한 걸 좋아하는 취향도 아니고 명품을 가져본 적도, 앞으로 특별히 가지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참 이상합니다. 그 묵직한 블랙의 안락의자만큼은 인터넷에서 처음 본 순간부터 시시때때로 눈 앞에서 아른거리거든요. 그 의자를 처음 본 순간 든 생각은 “와, 저기에 파묻혀서 가죽냄새를 킁킁대며 하루종일 책만 읽고 싶다”였고, 바로 이어서 든 생각은 “음, 저 의자에서 하루종일 책만 읽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아주 많이 벌어야겠군”이었습니다. 사실 맘 편히 책만 읽을 수 있다면 허먼밀러가 뭡니까,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읽어도 감지덕지인 요즘입니다. 미엘이 또 깨서 흐느끼는 소리가 나네요. 전 오늘 밤 과연 이 글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요.
(다음 날)
네, 결국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노트북을 열어 글을 이어가고 있는 이 곳은 오후 두 시의 은행 창구 앞입니다. 대출을 받기 위한 서류를 한가득 가지고 방문했더니 두 시간이 걸릴거라고 친절하게 말씀해주시길래 차라리 잘 됐다 싶은 마음으로 노트북을 펼쳐 어제 못 다한 편지의 마무리를 합니다. 언젠가 마감에 쫓겨 지하철에서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두고 정신없이 글을 쓰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칠 뻔해서 노트북을 닫지도 못한 채로 허겁지겁 빠져나왔던 기억이 나네요. 달리는 지하철과는 달리 은행은 창구 데스크도 넓고 파티션도 설치되어있는데다가 의자도 편안하고 쾌적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눈이 부시게 밝은 형광등 아래에서 맞은편에 앉은 은행 직원이 저의 신용도를 점검하며 이 곳 저 곳에 전화를 거는 동안 전 쓰던 글을 마저 쓰고 있습니다. 값비싼 안락의자에 파묻혀 하루종일 책을 읽는 꿈에 대한 글을 은행 창구에서 대출 심사를 받으며 마무리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삶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니까요. 그러니까 계속 꿈꿔보려고 합니다. 언니의 꿈도 씩씩하게 이어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야행성 달팽이처럼 밤 늦도록 천천히 다정하게 써나가는 글들과 함께요.
알래스칸 엠버를 그리워하며
자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