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날씨를 보면 ‘덥다’는 표현은 이제 좀 옛말처럼 느껴져요. 하필 이때 차 에어컨이 고장나는 바람에 불가마가 되어버린 차 안을 경험해보니 혹서기에 가게 공사를 시작한 자연씨가 조금 걱정되는 요즘입니다. 물론 저의 노파심일 뿐 자연씨는 나름 지혜롭게 보내고 계시겠지만요.
오전에도 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니 피부가 약한 단우를 데리고 나가기가 망설여지네요. 유모차를 태우고 걷자니 발진이 신경 쓰이고, 손을 잡고 걷자니 바람 한 점 안 드는 곳에서 아기를 더위와 씨름하게 하는 게 맞나 싶은 그런 나날입니다.
자연스레 집에만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저의 동력원이던 아침 산책은 ‘하절기 운행 중단’ 푯말을 붙인 채 멈춰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부작용들도 기다렸다는 듯 뒤따르네요. 이를테면 하루가 지나치게 길게 느껴진다는 것, 아기랑 집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내 시간이 현저히 줄어든 느낌이라는 것, 창의적인 생각이 별로 안 난다는 것 등 아침 산책으로 효과를 누리던 많은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육아의 난이도는 한층 높아지고 있습니다. 들쑥날쑥해진 아기의 낮잠 시간, 강도가 높아진 떼쓰기, ‘재접근기’에 나타나는 분리불안으로 잠시도 제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단우로 인해 저는 다시 찰랑찰랑 넘칠 듯 말듯, 위태로워지고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한 주 중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한다는 수요일엔, ‘나 힘들어. 힘들다고.’ 압이 꽉 찬 밭솥처럼 터지기 직전이 되어 남편에게 SOS를 청하기도 했네요.
내일은 진짜 택시를 타고서라도 어디론가 가야겠다고 매일 밤 남편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그리고는 막상 다음날이 되면 또 집에만 있게 됩니다. 바닥난 에너지를 어떻게든 주워 담아 하루를 시작하고 정신을 차려보면 오후 서너 시쯤 되어 있습니다. 그쯤 되면 답답해서 마트라도 가서 수박이나 사올까 싶다가도, 창밖으로 보이는 땡볕의 보도 블럭을 보고 나면 아기를 데리고 나갈 용기가 싹 사라져 ‘에이 그냥 집에 있자!’ 하는 날들이 반복되고 있죠.
그러다 어제는 문득 저녁 산책을 나갔습니다. 단우를 재우다 같이 잠이 들어 늦은 오후까지 낮잠을 자버린 바람에 그리된 것이죠. 실신한 듯 잠이 들어 시계를 보니 오후 6시를 향하고 있었고, 조금 지나니 퇴근한 남편이 집에 왔습니다. 아기는 늦게까지 자버렸고, 글도 쓰지 못했고, 저녁거리는 또 뭘 챙겨야 할지…. 복잡한 기분으로 저녁을 차렸습니다. 단우를 먼저 먹이고 그 뒤에 남편과 저녁을 먹는 동안 거실에서 쌩쌩하게 노는 단우를 보며 그래, 산책이나 하자 싶었죠.
저녁 공기는 생각보다 시원했습니다. 아니, 시원하다기보단 미적지근한 공기 위에 시원한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한 것 같았죠. 매일 걷던 길인데도 저녁 풍경은 또 다르더군요. 청아하게 우는 풀벌레 소리, 가로등 빛 아래에서 하늘하늘 움직이는 강아지풀들은 어딘지 신비롭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렇게 하나하나 바라보며 느릿느릿 걷다 보니 어느새 능동공원까지 걷게 되었습니다. 낮 동안의 땡볕을 막아줄 키 큰 나무들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저녁의 능동공원은 어딘지 지쳐 보였어요. 어스름한 어둠이 깔린 바닥엔 더위를 견디지 못한 달팽이들과 그들이 놓고 간 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었죠.
아마 두어 달 전쯤인가 저녁 산책을 하다 그 길에서 무수한 달팽이들을 보았더랬죠. 길바닥에 하얀 곡선을 그리며 열심히 집을 옮기던 녀석들을 남편과 저는 어떻게든 밟지 않으려 애썼어요. 너무나도 밟히기 좋은 길 위에서 너무나도 느린 속도로, 너무나도 열심히 기어가는 그들의 무심함을 보며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제 눈에나 무모한 순수함으로 보일 뿐, 그들에겐 그저 생존을 향한 움직임이었겠지만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채 죽어버린 달팽이들이 내심 안타까웠으나 그들의 무심함만을 기억하기로 하며 유모차를 턴 했습니다. 자기 삶에 충실을 다한 달팽이들이니 지나친 연민을 가질 필요는 없겠죠. 그 시각 서동탄역을 향하던 전철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단우야, 기차!” 레일 위에 있는 건 모두 ‘기차’로 알고 있는 단우에게 손짓하자 단우는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전철에 눈을 떼지 못했죠. 그 맑은 눈망울을 바라보며 ‘베란다 창문으로 수없이 바라본 그 ‘기차(전철)’가 지금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걸 너는 알까’. 잠시 생각했다가, 남편에게 “역시 나오길 잘했어.”라며 조금은 비워진 마음으로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걷고 들어와 집안일을 끝내고 자연씨의 서신을 읽었습니다. 다락에 올라오니 아파트 옥상이 좀 식었는지 적당히 미지근해진 공기를 머금고 있었죠. 에어컨 바람을 힘들어하는 저에겐 딱 아늑하다 싶은 정도의 온도였습니다. 아기는 잠들고 장난감은 정리된 시간. 비로소 저의 공간이 된 다락에서 자연씨의 서신이 프린트되는 짧은 순간을 즐겼고, 자연씨가 시간을 쪼개어 타닥 타닥 쌓아 올린 글을 천천히 아껴 읽었죠. 입가에 흙을 묻힌 미엘이를 떠올리며 웃기도 하고, 알래스카의 풍경과 엠버 맥주의 맛을 상상하며 마음의 온도가 –5도쯤 내려 가는 시원한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여름 알래스카 여행과 맥주라니, 이보다 시원한 이야깃거리가 있을까요. 언젠가 알래스카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 자연씨는 다녀오셨군요. 제가 역시를 강조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자연씨의 책을 읽고 나서 무심코 크루즈 노선을 찾아본 적이 있거든요. 갑자기 크루즈 노선 중 서로 가장 먼 노선, 서로 반대라 할 만한 노선이 뭘까 궁금해져서 Chat GPT에 물어봤는데 알래스카와 아프리카 노선이더라고요. 그때 알래스카 노선도 있구나 하고 처음 알게 됐는데 자연씨가 그 배에 있었다니. 놀라움 반, 반가움이 반이었답니다. 역시, 역시 말이죠.
자연씨는 어떤 계절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추위에 무지 약한 편임에도 사계절 중 겨울을 가장 좋아합니다. (안타깝게도 여름은 그 반대네요...) 쨍한 빛이 없는 겨울 하늘이 슬프다거나 허망하게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 차분함이 포근한 이불만큼 편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자연씨가 이야기한 한 여름의 알래스카 여행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반팔에 얇은 패딩 하나’ 정도의 추위를 가진 여름 여행이라니. 요즘처럼 혹서의 날씨라면 알래스카 여행 정도는 되어야 참된 피서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에어컨 바로 밑 자리에 앉아 일하며 ‘반팔 셔츠에 겨울 가디건’을 걸쳐본 경험밖에는 없거든요. 그렇게 계속 일하다 밤 11시쯤 퇴근하면 그때까지도 식지 않은 바닥의 열기가 따뜻하게 느껴지곤 했었죠. 뉴스도 재난문자도 볼 시간이 없어서 그날 폭염주의보가 내려졌었다는 것도 몰랐던... 그런 여름을 보내곤 했었네요. 저의 지극히 협소한 여름과 자연씨의 지구적 차원의 여름이 대비되는 가운데, 우리의 여름이 이 동네에서, 또 이 지면 위에서 포개지고 있다는 사실이 사뭇 재밌기도 합니다. 아마 우리가 이 동네에 ‘뿌리’를 내리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겠죠.
‘뿌리’라는 단어를 떠올리니 저는 어쩐지 든든하고 스스로 대견해지는 기분이에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안정의 욕구를 가지고 살아갈텐데 그걸 어떻게든 충족해가며 살고 있다는 점에서요. 풍파에 시달려 밑동이 슥- 하고 잘려나가더라도 다시 시작될 곳이 있다는 건 분명 든든한 일일 겁니다. 떠나더라도 언제든 돌아올 곳이 있다는 믿음이 구심점이 되어 새로운 여행도 시작될 것이고요. 이제 막 ‘다리’를 쓰기 시작한 꼬마들은 자기가 가고 싶은 길로 가겠다고 고집부리기도 하겠죠. 그러다 좀 더 크면 엄마의 로망을 실현해줄 만한 곳들, 이를테면 디즈니랜드나 하와이 같은 곳도 갈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임신 초기 때 심한 입덧으로 기운이 없어서 어느 여행 유투버의 영상만 주구장창 보며 하루를 보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영상 속 세상은 어쩜 그리도 넓던지, 대리만족으로는 채워지지 않아 그 유투버가 가는 곳은 모두 ‘나중에 아이랑 가봐야지.’하고 열심히 메모하곤 했어요.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상상할 수 없었던, 철없던 때였죠. 만약 아이가 물과 해양생물을 좋아하면 하와이 같은 데서 한 달 살기 하며 맘껏 스노클링을 즐기게 하고, 나는 하루키처럼 나무 그늘에 앉아 글을 써야지... 하는 로망도 함께 펼치곤 했습니다.
‘하와이에서 글쓰기’는 아이 낳기 전부터 저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눈치채셨듯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나서 부터에요. 하와이라고 썼지만 어딘가에서 오래 머무르며 글을 쓸 수 있다면 스위스의 산자락이나 알래스카의 어디라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나름 ‘버킷 리스트’니 최대치의 로망을 적어보자 싶어 아직 가보지 못한 곳, 어딘가 나답지 않아서 더 궁금한 곳인 하와이로 썼네요.
그런데 이제 아이를 낳고 나니 ‘아이 없이 여행가기’도 버킷리스트에 추가되었습니다. ‘아이 없이 여행가기’는 ‘하와이에서 글쓰기’와는 달리 무수히 현실적인 질문들이 뒤따라오더군요. 이를테면, 내가 아이 없이 여행을 갈 수 있을까? 간다면 그건 언제일까? 비행기를 타면 금방 엄마라는 페르소나를 내려놓고 내가 될 수 있을까? 그 여행에서 나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이죠.
언제쯤 ‘엄마’를 잠시 내려놓고 홀가분히 여행할 수 있을까요.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하면? 말을 잘하게 되면? 처음에는 아이의 성장 위주로 생각했지만 점점 저 자신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사이에서 적절한 유연함을 발휘할 수 있으려면, 그래서 적당한 거리 두기 혹은 분리될 수 있는 엄마로 레벨-업 하려면 이것저것 부딪혀보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뭔가를 직접 감당하고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으니까요.(질병은 예외지만요. 아이가 아픈 건 정말이지...) 새로운 일을 준비중인 미엘이네도 지금 그 과정을 겪고 계실 거라 생각해요. 아직 아이와 분리되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저는 자연씨의 선택이 감히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나중에 아이와 잠시 떨어지는 시간이 허락된다면 제주도로 날아가 한라산 트래킹을 하고 싶어요. 예전에 회사 후배가 3월의 한라산을 추천해서 대학원 동기와 둘이 영실코스를 다녀온 적 있거든요. 둘 다 한라산이 처음인 데다가, 영실코스가 2시간 반(왕복 5시간) 정도로 짧은 편이고 절경으로도 유명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그땐 둘 다 운전면허도 없었던 때라 영실 코스 입구까지 택시를 타고 갔답니다. 택시 기사님이 여기까지 올라오는 택시는 없다고 얘기하셨고 “오! 저희가 참 운이 좋네요!”라며 열심히 기사님의 비위를 맞춰드렸던 게 기억나네요.
3월의 한라산 트래킹은 어딘가로 숨어버린 겨울을 찾으러 떠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입구에 우거진 나무들이 ‘이 길로 가면 겨울을 만날 수 있어요!’ 하는 것 같았죠. 어쩌면 바다를 가로질러 겨울에 도달하는 알래스카 크루즈와 비슷할까요?
눈을 찾아 오르는 3월의 영실코스는 꽤 재밌습니다. 처음엔 가벼운 바람막이를 입고 오르기 시작하다 꼭대기 근처에 도달하면 백팩에서 패딩을 꺼내 따뜻하게 입어야 하죠. 이미 해발 1,280M 고지인 입구(택시에서 내린 곳)에서부터 오르기 시작하기에 출발부터 이미 반은 올라온 상태에요. 네, 멋지죠. 탐방로 입구에 마련된 데크 위를 걷다 보면 한라산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식물들이 반겨주며 트래킹이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편하게 걷는데 어느샌가 계단이 계속 이어지고 숨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계단을 오르고 오르다 이젠 좀 힘들다 싶을 때쯤 되면 운무가 걸린 기암괴석과 크고 작은 오름들이 ‘드디어 왔는가!’하고 인사를 보내오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 풍경들을 사진으로 담고 다시 계단을(거의 다 왔어요.) 한 5분 정도 오르면, 갑자기 눈 쌓인 평원이 펼쳐집니다. 정말 겨울이네... 하며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넋을 놓고 편평한 길을 쭉 걸어가면 목적지, 윗세오름에 도착해요.
산 위는 영하 3도 정도의 추위인데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크게 춥지 않았던 것 같아요. 또, 거기 있는 휴게소에서 뜨끈한 컵라면이라도 먹고 나면 모든 게 괜찮아지죠. 눈밭을 계속 걸어야 하니 등산화에 아이젠을 차고 걷는 걸음이 가볍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꽤 재밌답니다. 내려가면 다시 3월의 폭신한 흙을 밟게 되니까요. 드넓게 펼쳐진 눈 덮힌 평원과 그 위를 유유히 나는 독수리들, 그래서인지 더 이국적으로 느껴지던 그 풍경은 몇 번이고 다시 마주하고픈 풍경이었어요.
언젠가 삼월의 한라산 영실코스를 자연씨와 걸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한라산은 올라보지 못하셨다고 하니 저로선 반가운 일이네요. 우리 꼭, 같이 가봐요. ‘애들 없이’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기념으로 맥주도 한잔하자고요.
3월의 설국을 기다리며
가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