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구의 의식주 23편
내가 살고 있는 포도 신도시 (편의상 이렇게 부르겠다.) 옆에는 사과시가 있다. 사과시는 꽤 오래된 도시이다. 20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과시의 울창한 가로수들만 보아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있다. 포도시 나무들은 아직 키가 작고 가지도 많지 않아서 꼬마 아이 같은 느낌이다. 도시의 나이만큼 가로수들이 어리다.
사과시는 막히지 않을 때 자차로 20분 정도 갈 수 있다. 그곳에서 여러 맛집을 만나볼 수 있다. 도시가 오래된 만큼 가볼 만한 노포들이 많이 있는데 이게 내가 사과시를 좋아하게 된 이유이다. 한 근씩 판매하는 한우구이집, 그 옆에 기깔나는 가성비 백반집 등이 있다.
사과시 맛집들을 탐험하면서 가장 재밌었던 발견은 노포 중국집 'A'이다. 'A'는 40여 년 동안 한자리를 지킨 음식점이라고 한다. 사장님께서 고령이셔서 영업시간도 짧고 그마저도 재료 소진이 빠른 편이다. 그래서 안전하게 평일 점심때 방문해보았다. 간판의 글씨가 갈라져 있었다. 원래 그런 것인지 세월의 흐름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테이블은 4개 정도로 아담한 크기의 공간에 브라운관 티비가 있었다.
나의 한줄평은 “조부모님 댁에 오랜만에 가서 그리웠던 집밥을 먹었는데 한식이 아니라 중식이었다!”이다. 간짜장을 생각지도 못하게 부드러운 맛이었고, 짬뽕도 순한 느낌이었다. 한국형 중식 집밥이 있다면 바로 이 집 음식이다.
다른 테이블을 보니 이 집의 역사가 느껴졌다. 나 빼고는 다 주변 동네분들로 추측되었다. ‘진짜배기 터줏대감 맛집이구나.’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 테이블에 사장님 지인 분이신지 혼자 식사를 하러 오셨다. 주방 쪽으로 가서 “오늘 많이 바쁘네.”라고 말씀하시면서 간짜장 하나를 시키셨다. 천천히 드시고는 그릇을 정리해서 주방까지 가져다주시고 홀연히 가게를 나가셨다.
도시 나이로 신생아 정도인 포도 신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노포의 감성을 사과시에서는 맘껏 즐길 수 있었다. 포도시도 나이가 많이 들면 사과시처럼 그 나름의 노포가 생기지 않을까. 아주 기대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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