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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일 땐 흰쌀죽

사자구의 의식주 18편

by 사자구

추석 연휴에 산책을 하다가 넘어져서 발목을 다쳤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까지 걸렸다. 연휴에 하는 병원에 찾아가서 두 시간을 기다려 진료를 받았다. 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해열제와 수액을 맞았는데도 38도였다. 약 처방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서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남편도 며칠 있다가 같이 걸려서 둘 다 밥을 차릴 기력도 먹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다. 그렇지만 하루 세 번 약을 먹기 위해 조금씩이라도 뭔가를 먹어야 했다. 발목 때문에 걷기도 힘들고 열도 너무 심했다.


컨디션이 엉망진창이 되니 대학생 때 장염에 걸려서 어쩔 수 없이 먹었던 흰쌀죽이 생각났다. 즉석밥으로 만드는 흰쌀죽이다. 참기름에 불린 생쌀을 볶아서 만드는 방식이 아니다. 그럴 기력이 없기 때문이다.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레시피라 하기조차 민망하게 간단하다.


*흰쌀죽

1. 냄비에 즉석밥 혹은 남은 밥을 넣고 잠길 때까지 물을 붓는다.

2. 밥알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끓인다. (필요시 물을 보충한다.)

3. 힘을 내서 간장과 먹는다.


부드러워진 밥알을 씹을 에너지도 없으면 믹서기로 갈아서 미음으로 마시면 된다. 새하얀 죽을 보고 있자면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흰쌀죽을 한입 두입 먹으며 남편과 나는 아주 조금씩 나아갔다. 흰쌀죽이 야채죽이 되고, 야채죽이 불낙죽이 될 때쯤 우리는 회복되고 있었다. 역시 엉망진창일 땐 흰쌀죽!


흰쌀죽 사진은 당연히 없다… 다른 죽 사진으로 대체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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