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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산 Oct 20. 2021

[10/20] 버진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Frank Sinatra - One For My Baby

Frank Sinatra - One For My Baby (Live At Royal Festival Hall / 1962)


- 저의↑ 꿈은↑ 제임스↑ 본드↑입니다.↓

- 왜 석찬이 꿈은 제임스 본드일까요?

- 제임스↑본드는 잘 생겼고 키도 크고 예쁜 여자 친구도 많기↑때문입니다.↓ 또 총으로 싸움도 엄청 잘해서 인기도↑ 많습니다.↓또 총이랑↑ 대포가 달린 자동차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러니까 석찬이는 꿈이 총을 잘 쏘고, 대포 달린 차를 운전하고, 여자 친구가 많은 잘 생긴 남자가 되는 건가요?

- 네! 그렇습니다. 또 제임스 본드는 하얗고 예쁜 금발 여자 친구도 있고↑ 갈색 머리 여자 친구도 있고↑ 검은색 머리 여자 친구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위험할 때 늘 제임스 본드를 찾습니다. 예쁜 여자들은 제임스 본드가↑ 구해주면 늘 키스를 합니다. 저도↑ 예쁜 미국인 여자 친구를↑ 많이 갖고 싶습니다.


- 와! 저는 그럼 커서 석찬이 여자 친구 할래요!

- 야, 김송아! 너는 뚱뚱하고 눈도 작고 못생겨서 절대 안 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영롱 초등학교 4학년 1반 담임교사 박순수는 <007: 문 레이커>의 로저 무어를 동경한 자신의 어린 시절의 업보가 착실히 쌓여 석찬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오프닝에서 이름 모를 여자와 섹스하고, 총을 무자비하게 갈기는 와중에 틈 내서 섹스하고, 업무를 완수한 후 우주에서 섹스를 하는 '남자 중의 남자' 로저 무어!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시작한 지 6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제임스 본드는 아직도 애스턴 마틴 DB5에 금발 (간간히 흑발 혹은 브루넷) 여성을 태우고 지구를 질주하며, 라포 형성이 끝나기도 전 겨우 통성명한 (혹은 하지도 않은) 여성과 온갖 군데서 섹스한다. 007 프랜차이즈와 역사를 함께한 치열한 여성인권 운동이 프랜차이즈에 미친 영향은 1) 영화 속 본드의 절대적 섹스 횟수가 줄었고 2) 섹스 상대에 때때로 유색인종 여성도 적당히 포함된다는 것 정도이다.(아시안 제외)


박순수는 공교육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007 프랜차이즈를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 박순수와 연대하는 전 세계 수많은 어른들이 모여 Eon Production 및 각종 인권 단체에 제안할 조항들을 만들어나갔다.


[The Guideline for Portraying Female Characters in 007 Franchise]

1) 007 프랜차이즈에는 제임스 본드에 준하는 여성 프로타고니스트 (이하 여성 인물)가 존재해야 한다.
1-1) 여성 인물은 제임스 본드와 비슷한 수준의 무기, 차량, 맨몸 싸움 기술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며 유사한 수준의 싸움 스킬을 지녀야 한다. 여성 인물은 미니스커트 혹은 하이힐을 신고 싸우지 않는다.
1-2) 여성 인물은 제임스 본드와 성관계를 맺지 않으며 로맨틱한 관계로 발전하지 않는다.
1-3) 여성 인물은 제임스 본드가 구해주는 여성 인구수에 달하는 남성 인구수를 영화 안에서 구해주어야 한다.
1-4) 여성 인물은 제임스 본드와 동등한 협력 관계로 MI-6의 스파이 미션을 함께 수행한다.

2) 제임스 본드와 성관계를 맺는 여성(이하 상대역)은 반드시 제임스 본드와 동등한 사회적 지위 및 주체성을 가진 채 성관계에 임해야 한다.
2-1) 제임스 본드와 상대역은 영화 내에서 충분한 라포 형성 과정을 완료한 후 명시적 동의 후 성관계를 시작해야 한다.
2-2) 상대역의 배역은 아시안, 백인, 흑인, 히스패닉 등 모든 인종의 배우에게 골고루 주어져야 한다.
...(이하 생략)


2040년, 제임스 본드는 트랜스젠더 헤테로 로맨틱 팬 섹슈얼 아시안 여성이 되었고, 여전히 애스턴 마틴 DB5를 몰았으며 극 중 1명의 본드 보이와 1명의 본드 걸과 각 2회씩 성관계를 나누었다.


Oct. 20th of 2021


<007: 스펙터>에서 007이 훔쳐탄 009의 애스턴 마틴 DB10에 내장되어있던 009의 취향 맞춤 선곡은 시나트라의 'New York New York'이었다. 007은 전주 브라스 소리가 나오자 마자 역겨운 표정을 짓고선 꺼버렸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1985 부도칸  공연에서 도쿄를 '교토'라고 힘차게 부르며 'New York New York' 노래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나이는 70세였고 일본 사람들은 전설적인 뮤지션이 국가의 수도와 시골마을을 혼동한 것에 대해 누구도 분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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