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9] 앙리 망갱과 버지니아 울프
Alice Coltrane - Something about John Coltrane
굉장히 드문 재즈 하피스트 앨리스 콜트레인.- 어머니, 앙리 망갱이에요. 야수파 화가랍니다. 야수파 아세요? 1900년대 초에 파격적인 화풍으로 기존의 아카데미즘에 맞섰어요. 포비즘이라고도 하지요. 지금 보고 계신 앙리 망갱은 조금 보수적인 편이고, 조금 더 파격적인 그림들을 그렸던 뒤피 보러 가실까요?
- 얘, 어제 본 그림들 아니니? 지금 나 놀리는 거니? 머리가 너무 아프구나.
- 어머니~ 어제 본 건 마티스구요, 이건 망갱이에요. 이런 거 아셔야 한국 돌아가셔서 친구분들께 자랑도 하죠. 프랑스 가서 에펠탑 봤다 그러면 누가 쳐주기라도 하나요?
- 약 좀 다오. 머리도 아프고 어지럽구나.
어머님-이라 불러야 하는 완벽한 타인-은 신경쇠약 증세가 있다. 매주 화요일 그녀를 데리고 <희망 정신과의원>에서 처방된 신경안정제를 받아오는 것도 결혼한 나의 삶에 주어진 의무 중 하나였다. 나는 석사 시절 미술과 정신질환의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했고 야수파 그림을 관람한 후 조현병을 얻은 여러 환자들의 케이스를 분석했다. 그래서 그녀를 야수파 그림이 전시된 미술관에 데려왔다. 결혼이 나의 사회적 지위는 박탈해갔으나 연구에 대한 열망은 빼앗을 수 없었다,라고 해놓자.
야수파 작품 관람 3일 차, 그녀는 관람 15분 만에 신경쇠약 증세를 호소했다. 2일 차보다 10분이나 빨라진 시각이다. 수면 시간 역시 1일 차보다 확연히 짧아졌고, 식은땀을 흘리며 잠꼬대를 하는 것으로 보아 수면의 질도 악화된 듯하다.
어머님은 당신의 손톱으로 나의 팔을 꼬집으며 어서 미술관을 벗어나자고 했다. 어머님, 이 6일짜리 관람권 제가 얼마 내고 구입한 건지 아세요? 휴. 대신 내일은 길게 보셔야 해요. 어머님을 모시고 근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오후 세시엔 와인과 샴페인, 그리고 간단한 디쉬만 판매한다기에 샴페인 두 잔과 올리브를 주문했다. 어머님은 샴페인을 사이다처럼 마시고 올리브를 손으로 세 개씩 집어 먹었다.
이런 교양 없는 여자가 나에게 교양을 운운했다니. 네, 어머님, 저는 그깟 공부 좀 하겠다고 아들놈 밥도 못 차려주던 교양 없는 년이에요~ 이 상년 집구석에 앉혀놓고 올리브 처먹으니 기분은 좀 좋아지셨나요?
통기타를 들쳐 맨 어린 거지가 노래를 부르며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빈부격차와 취업난으로 인해 허우대 멀쩡한 20대 거지가 많다더니, 프랑스도 젊은 낭만의 낙원은 아닌 게 확실하다. 그는 2유로만 달라며 손가락 두 개를 치켜들며 노래했다. 어머님은 갑자기 올리브 접시 옆에 놓여있던 포크를 들고일어나 굉음을 지르기 시작했다. 거지는 어머님을 보고 되려 놀라 도망갔고, 식당 지배인이 사과를 하러 달려 나왔다. 어머님은 포크를 지배인 쪽으로 향하며 "저 새끼 나 죽이려고 왔어. 악! 악! 오지 마! 사람 살려!"라고 반복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나는 신경쇠약 증세에 망상까지 보이는 어머님을 모시고 바로 다음 날 티켓을 바꿔 귀국했다. 어머님은 정신착란 진단을 받고 시설로 들어갔다. 남편은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나는 그에게 미술관 관람권을 알리바이로 제시했다. 나의 죄라면 어머님과 함께 앙리 망갱의 작품을 본 것밖에 없어. 남편과 나는 이 날 이후 각 방을 쓰게 되었다. 나의 음성과 발소리만 들려도 경기를 일으키는 어머님을 모시는 일은 시누이의 몫으로 돌아갔다.
앙리 망갱을 직시하고 나는 버지니아 울프가 그토록 고대하던 글을 쓸 수 있는 나의 것인 공간, 그리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을 얻었다. 어머님을 라울 뒤피가 그린 세상 속에 모셔다 드린 건 못난 며느리의 마지막 의무였다.
Raoul Dufy – Interior with the open window, 1928
Henri Manguin - The Parkway. 1905 Oct. 19th of 2021
Alice Coltrane은 색소포니스트 John Coltrane의 두번째이자 마지막 와이프였다. 1966년에 Alice와 결혼한 John은 HBV 감염병으로 1년 후 생을 마감한다. Alice Coltrane은 재즈 씬에서 보기 드문 하피스트이자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그녀는 산스크리트로 이름 'Turiyasangitananda'로 활동했으며 음악관 역시 이름만큼 아방가르드하다. Alice의 음악을 들으면 John Coltrane이 말년에 추구했던 아방가르드 및 프리재즈 스타일이 그녀의 마법 주술에 의해 태어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John은 마녀 Alice의 아방가르드 저주술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지만 의학계와 언론에 의해 죽음의 진실은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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