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라스마스.
가까이 다가갔다 멀리 뗐다, 밝게 했다 어둡게 했다, 아무리 조정해도 qr코드가 인식이 안 된다. 고심하며 샌드위치를 하나 골라 결제를 하려 하면 결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뭐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조악한 구체성에 일일이 호응해야 한다. 큰 프랜차이즈 카페의 아늑한 익명성으로 은닉해 들어가, 잠시 좀 허기진 배를 채우며 쉬고 싶어도 뭐가 이렇게 번거로운지.
허겁지겁 샌드위치를 먹고 숨을 고르고는, 이제야 뭐를 좀 집중해서 할 만 해지고 있는 것 같았는데 반짝이며 스마트폰 알림이 울린다. 오늘 하루 바쁘셨군요. 걷기 인증으로 스탬프를 채워보세요. 산책과 독서를 인증하는 앱이다. 숨이 차다. 산책과 독서마저 누군가에게 승인을 받고 도장을 받아야 하다니. 지워버릴까 생각하지만 스탬프 열개에 오백 포인트를 뿌리치지 못해 한번 더 앱의 노예를 자처한다. 증권 앱에서는 나처럼 순식간에 돈을 잃어버리고 마음이 헛헛한 이들이 공연히 증권 채팅방에 모인다. 몇 살이세요, 키 물어봐도 되나요, 지금 사시는 곳은요. 식사 메뉴나 강아지 사진이 오고 가고, 마침내 번개 이야기까지 나온다.
죄송하지만 저는 대구에 살지 않아요. 빵, 카페, 걷기는 좋아하지만요. 그리고 모르는 사람과 하는 채팅의 온기는 좋아하지만 채팅에 잘 참여하지는 않습니다. 까짓 거 모르는 사람과의 채팅쯤 왜 못하겠습니까.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채팅창의 파란 스크린에 반사되어 영롱하게 빛나는, 영화 접속의 여자 주인공의 밝은 안색과 눈빛처럼 제 영혼의 안뜰에 자유와 온기의 빛을 비춰줄 수 있다면. 그렇지만 당신들도 그저 허기진 가난한 영혼들 같은 걸요. 아마 만날수록 제가 나눠줘야 할 걸요. 아직 미미한 제 영혼의 온기를. 그러나 지금은 저도 너무 추워서 으스스 떨립니다.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얼음물을 마시고 증권 앱을 하고 밀린 메신저에 일일이 답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아세요? 지금 저에게는 온 영혼으로 포클레인을 드는 일만큼 무겁게 느껴진다고요. 아까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툭 눈물이 터져 흘러내렸어요. 너무 추워서요.
한 세계나 그 세계 안의 구성원들이 가지는 존재의 목적과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그것들의 시작을 알면 된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우주의 빅뱅 가설이나 원자 단위의 물질에 관해 연구하는 것도 결국 이 세계의 의미와 목적을 알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결혼. 해야 하니? 해보니 뭐가 좋아? 언젠가 친구에게 물어보니, 통화하면서 바로 옆에서 아롱거리는 아이 이야기를 했다. 지금 내 옆에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딸 캔디가 있는데, 저 애를 볼 때 드는 감정을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얼마나 사랑스럽고, 내가 어쩔 줄 모르겠는 줄 아니? 결혼을 안 한다는 건 이토록 눈물겨운 감정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영영 모르고, 그 부분이 텅 비어 버리게 된다는 거야. 짐작은 되었지만 정말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사랑을 말하는 것이겠지. 그저 그렇게 이해되었다.
사랑의 빛이라면. 나야말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이 은하계에서 사랑의 빛이 얼마나 눈부시고 따듯한 것인지 나처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아픔도 깊다. 상처와 분노, 고통, 원망, 그런 단어들로도 다 담기지 않는 마음들이 매일 억지로 눈을 떠서 그 눈이 다시 감길 때까지, 구천을 떠도는 처녀귀신처럼 둥둥 떠다닌다. 어쩌지 못하겠는 마음. 그 마음을 나는 너무나 잘 안다. 눈앞에 있어서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 아니라 눈앞에 없어서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왜인지 너무 잘 알 것 같다. 크리스마스. 실버벨, 실버벨. 크리스마스의 종소리- 거리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의 물결- 기쁜 크리스마스 또 찾아왔네- 거룩한 밤. 고요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 기도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내 어린 날들. 성도들의 집집마다 다니며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 앞에서 성탄 찬송을 불렀던 순간들이 영혼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그저 떨리고 벅찬 경외감에 휩싸여 불렀던 음과 가사들이었다. 여기가 끝인가 싶은데. 만약 끝이 아니라면 정말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이제 안락한 교리나 신조가 아니라, 비로소 사랑의 시험 앞에 있는 것일 테다. 내가 태어나 가장 팽팽하게 느끼는 긴장감이다. 영혼이 불타 없어지거나 녹아 사라지거나 끊어져 버리거나, 아니면 부활하는 것. 그 두 가지 사이의 긴장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