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smine

by jungsin

A

그냥 잠이나 자버리고 싶기도 한데, 그래도 글 한편은 써놓고 자야겠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 더욱이 수년간 스타벅스에 앉아서 늘 쓰던 이 엘지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것은 정말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이 노트북으로는 글을 하도 많이 써서 키보드에 시선을 두지 않아도 피아니스트처럼 감각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그냥 손가락을 움직여서 치는 것이 가능하다.


어느 날, 업그레이드된 통신사 와이파이 단말기로 교체한 이후로는 이 노트북으로는 와이파이를 쓸 수 없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 노트북을 쓰던 시간들을 열어서 터트리는 것이 아프고 두려워서, 마치 이 기계에 모든 시간이 녹아있는 것 같아서, 이 정든 노트북을 다시 만지고 켜는 것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노트북 특유의 키감. 그 키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탁탁탁, 타타다다탁. 얇은 키보드로 글을 쓰자 날개 돋친 듯 빠르게 써진다. 감각이란 게 신기하다. 오랜만에 고향에 와서 집 뒤 창고에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구르는 것처럼, 이전에 글을 쓸 때의 감정이나 그때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몸을 타고 내 영혼의 중심에 전해진다. 정말 몸과 키보드가 하나인 것만 같다. 로즈골드 색 플라스틱 바디가 열에 많이 타서 진갈색 물까지 든, 이제 오래되고 낡은 이 노트북을 버릴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다. 또 다른 이유는 엄마의 시대를 함께 한 노트북이어서,



B

엄마가 입원했을 때 여러 모로 나는 고립되었다고 느꼈다. 매 순간이 간절하기도 했지만. 한편 외롭고 답답했다. 사정을 다 말하자면 너무 길고 풀어내기가 힘든 이야기다. 병실에는 가끔 병원의 임종 병동이었던가, 그런 곳에 소속된 복지사 분이 한 번씩 방문해서 보호자와 환자를 돌봤다. 의료진이 보이는 몸을 바삐 돌보는 역할을 했다면, 그들은 보이지 않는 부분을 살피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교회로 치면 일종의 심방 전도사 같은 역할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복지로 치면 복지 상담사나 실무 행정관 같다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일들을 하고 있었다. 환자의 마음도 살펴주고, 치료를 받으면서 보호자가 느낄 고충이나 심리적 어려움 같은 것을 좀 더 세심히 돌보는 것이 그들의 역할 같았다.

처음에는 쉰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분 한 분이 정기적으로 방문해 주셨다. 그분은 선량했다. 진심으로 애달픈 마음도 가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느끼고 있던 답답함을 이야기할 때면 마음으로 깊이 잘 듣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행정적으로 느껴진달까, 아무튼 왜였는지 괜히, 일로써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이해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점차 내가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그분이 오는 것이 실은, 속마음이지만, 점점 그렇게 반갑지도 않았고, 그냥 그분이 그분의 일을 하도록 내가 허락해주고 수용해주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건장한 체격, 열정적이고 뜨거운 인격적인 느낌. 들어주는 것 같지만, 이야기의 빈 틈이 생기면 그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더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한 강한 인격적 기류. 말하고 싶어서 서로 마음이 급한 에너지가 충돌하곤 했다. 고기압과 고기압이 만나 난기류 성 비만 후두둑 떨어트리고 헤어지고는 했다. 한 명의 날씨만이라도 청명해야 하는데. 푸쉬push와 풀pull이 천천히 아름답게 호흡을 그려야 하는데. 어느 한쪽만 상대를 살피면 그런 대화가 될 수가 없다. 서로를 향해 할 말이 많아 호흡과 리듬이 뒤엉킨 그런 대화가 나로서는 아무튼 답답하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고, 부담이 되기도 했었던 것 같다. 문제는 그 일이 그분의 직업이었고, 나도 보호자일 뿐 아니라 모든 관계를 진지하게 대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으로써 그분과의 대화들을 존중하며 귀히 여겨야 했다는 점에 난처함이 있었다.


조금 더 분명히 말하자면, 그는 자아가 강한 특질을 가진 사람 같았다. 물론 나의 주관적인 선입견이 반영된 표현일 것이다. 그런 인격적인 느낌의 사람들을 살면서 여러 번 만나봐서 나에게는 그런 분이 유형화되어 있었고, 유형화가 되어 있다는 것은 나에게 이미 어떤 프레임이 씌워져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이것은 다 어느 정도 편향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일 수밖에 없다. 어쨌든 그때의 내게는 균형과 객관성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내 고충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겹고 절실한 문제였는데. 그리고 나의 시간이 얼마나 간절한 것이었는데.


그러한 상황에서 내가 직업과 인격적인 특질의 조화와 일치성을 이루지 못한 분, 그러니까 직업적으로 진정하거나 탁월하지 못한 분을 정기적으로 만나야 했다는 것은 이 삶을 신비롭고 코믹하게까지 느끼도록 하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아무튼 그는 좋은 분이고 선량했다. 다만 직업적 진정함과 윤리, 그러니까 어떤 감동과 탁월성, 그것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은 찾을 수 없었던 것일 뿐이었다.



C

그러던 중 어느 날부턴가 한 번씩 다른 여자분이 오기 시작했더랬다. 조금 더 젊고, 약간 슬렌더한, 그러니까 약간 말랐다고 느껴질 정도로 호리호리한 복지사였다. 내게 그녀는 영화 알라딘에 나온 공주로 기억되고 있다. 이름이 자스민이었던가, 우선 그 공주의 눈을 닮았었고, 우선이라고 했지만 그게 전부다. 사실상 눈밖에 못 보았다. 언제나 마스크를 낀 채 상담을 했기 때문이었다. 피부 정도를 살짝 느낄 순 있었는데 피부색도 자스민 공주처럼 약간 까무잡잡한 톤을 하고 있었다.


나는 늘 힘들고 지치고 간절하고 답답하고, 공포스럽기도 했던, 그런 시간들 속에 있었다. 앞으로 어떤 날들이 펼쳐질지도 몰랐고,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은 마음과 생에서 가장 간절한 희망으로 좁은 보호자 침대에서 쭈그려 자고 탕비실에서 허겁지겁 병원밥이나 컵라면을 먹으면서 보내던 시간들이었다. 절망적이고 캄캄함 폭풍을 마음 한가득 품은 시간 속에, 삶에서 가장 폭풍 같은 시간의 태풍의 눈에 들어와 있었다고 할까. 그러던 중에 자스민 공주고 자스민 차고 눈에 들어 올리는 없었다.


하지만 눈에 들어왔다. 그 와중에, 전쟁통에도 꽃은 핀다더니. 정말 신기했다. 근데 마스크 위의 두 눈만 보고 누가 어떻게 눈에 들어올 리가 있을까. 물론 당시 내 마음이 너무 힘들고 무서웠던 때여서 오히려 누구에게서라도 희망이 될만한 근거를 찾으려고 하는 몸부림이 내 안에 강하게 태동하고 있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슨, 자스민 공주라니, 당치도 않은 이야기인 것은 분명한 상황이었다. 첫인상은 그냥 새로 온, 조금 더 진지한 태도를 가진, 참신한 복지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이상을 살필 마음의 힘이 내게는 전혀 없었으니까, 대충 흘깃 보다 말았을 때, 그리고 다분히 형식적인 인사말과 대화를 나눌 때까지는 그랬다.


그렇게 늘 비슷한 날들을 보내던 중, 언젠가 사방에 대화할 사람이 없고, 너무나 답답해서 내가 좀 더 대화를 할 수 있는지 물었을 때였다. 그녀와 나는 바로 옆에 있는 탕비실의 등받이가 없는 작은 철제 의자에 앉아서 반찬 냄새를 맡으며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나누었다기보다는 내가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그녀는 거의 들어주었다. 그 순간들이었다. 메마르고 무기력했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의 파장이 일고, 그녀가 병원의 다른 모든 사람들과도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지점은. 정말 집중해서 아주 넓은 진폭의 마음의 공간을 가지고 충분히 들어주려고 하는 느낌이 들었던 때부터 내 마음에서도 화창하고 향긋한 공기가 일어나 환기되기 시작했다.



D

마치 중학교 때의 J 선생님 같았다. J 선생님이 그랬다. 거의 초임으로 부임해서 오신 그분은 1학년 때 우리 반 담임이었다. 어느 날인가, 내가 하키부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씀드린 그날 바로, 아마 선생님은 나에게 방과 후에 교무실로 오라고 하셨던 것 같다. 다른 선생님들이 대부분 퇴근하고 적막해진 교무실, 흡사 내가 자신과 동등한 어른이기라도 한 것처럼, 선생님은 나를 진지하게 대하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당신의 생각을 조분조분 나누셨다. 그때의 짧은 대화가 내 인생에서 아마 첫 대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때. 선생님 자리 옆에 다른 의자를 끌어와 놓고 선생님과 마주 앉아 잠시 대화를 나누었던 짧은 순간의 기억이 내 인생에 깊이 각인되어 버렸다.


나는 그냥 공부가 너무나 하기 싫고,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면서 수업을 듣는 것도 힘들던 차에, 어느 날 문득 늘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뛰어다니는 하키부 친구들이 진지하게 부러워졌었던 것 같다. 공부가 너무 싫고 두려워서 차선으로 하키를 선택하려는 나의 마음을 눈치채신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사려 깊게 들어주셨다. 아마 그때의 경험이 누군가, 존경할 수 있을 만한 어른이 내 이야기를 온 마음으로 듣고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그래서 나도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을 가진, 어엿한 사람일 수 있다고 느껴지기도 했던 첫 번째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때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한낮에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거리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태극기가 있을 법한 곳을 향해 가슴에 손을 얹고 멈추어 서있어야 했던 단체주의의 시대였다. 더욱이 그 시절의 중학교 1학년은 개인의 인격이나 개성에 관한 한 아직 꼬리도 나지 않은 올챙이와 같았다.


선생님은 아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이 고민이고 왜 갑자기 운동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물으셨을 것이다. 이어 내 이야기를 좀 들으시고는, 진지한 태도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몇 마디를 똑똑이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다. 선생님 생각에 너는 운동보다 공부 쪽으로 가는 게 맞을 것 같아. 공부는 네가 재미를 못 붙여서 기복이 있을 뿐이지 조금만 노력해도 잘할 수 있는 머리고. 아이큐도 높게 나왔어 너. 이대로 지금 하키 하기는 좀 아깝다. 그리고 선생님은 네 글이 참 좋아. 너 글을 잘 써. 특이하고 재밌어. 잠시 드는 생각은 우선 미뤄두고, 계속 공부의 길로 가보는 게 어떻겠니.


이제는 흐릿해진 그 순간을, 대충 복원하면 그런 식의 이야기를 몇 마디 짧게 건네셨던 기억이 날카로운 파편처럼 나의 마음에 깊숙이 남아있다. 무엇보다 글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 나와 마주치던 눈빛이 빛났던, 어쩌면 다소 왜곡된 기억일지도 모를 그런 순간들이 인상에 남아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담임 선생님은 생물을 가르치셨는데, 생물에 관심이 전혀 없던 내가 느끼기에도 자신의 전공에 대한 애정이 느껴질 만큼 정말 진심을 다해 잘 가르치셨던 것 같다. 서울대 생물학과를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사실이 아니어도 충분히 그렇게 느껴질 만큼 젊고 스마트했다. 용감하고 강단이 있기도 하셨다. 거의 야생 동물에 가까운 중학교 남자아이들에게 개구리 해부 수업을 감행하기도 하셨고, 성교육 수업 시간에도 용감하고, 밝고, 화창하고, 털털했다. 남자아이들이었기에 체육이나 교련을 가르치는 남자 선생님들이 나을 수도 있었지만, 내가 교장이었다고 해도 온통 스태미나와 남성성의 허세에 갇힌 듯한 속빈 강정처럼 보였던 체육이나 교련 선생님보다는 생물학을 제대로 전공하기도 했고, 눈빛에서 강단있는 진정함이 감도는 한편, 분위기는 다정하고 따듯했던 J 선생님이 적임자라고 느꼈을 것이다. 중학교 시절 나뿐 아니라 아마 많은 친구들이 휴머니즘을 그분을 통해서 배웠을 것이다.



E

기존에 늘 오시던 복지사 분과도 삼십 분 이상의 긴 대화를 나눈 적은 몇 번 있었다. 그녀도 잘 들어주었고 진지했다. 하지만 자스민과 그녀 사이에는 어딘가 표현하기 힘든, 아주 넓은 간극이 있는 것 같았다. 자스민 복지사는 더 젊은 만큼 아마 직위도 더 낮을 수 있었을 것이고, 우리 병실을 담당하는 최고 책임자도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있는 동안 겨우 서너 번인가, 드문드문 몇 번을 방문했던 것 같다. 메인 복지사와 함께 동행할 때면 그녀는 한 발 물러서 있었던 것 같다. 기존에 오던 복지사의 빈 틈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면서 인턴 복지사 개념으로 일을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현장에서는 운신의 폭이 좁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깊고 사랑이 깊으면 환경의 제약은 모두 부차적이라는 것을, 그녀와 탕비실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조금 지나, 아니 병실 앞 복도에 서서 몇 마디를 나누며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스크 너머 그녀의 눈이 빛났다. 나의 답답했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게 어떤 물음들을 해올 때, 어떤 부분에서는 어렴풋이 J 선생님의 인격의 느낌과도 비슷했던 것 같다. 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몰입하려고 했고, 우리가 어떤 일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껴질 만큼, 조금 다른 진지함의 감동의 물결이 있었다. 그녀의 태도와 존재 자체가, 이미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있었다. 나는 완전히 그녀에게 나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직업과 역할이 오히려 작아 보였다. 까무잡잡한 피부톤이나 눈보다 그런 진솔함이, 그녀가 자스민이 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F

요즘 내가 몸 담고 있는 공동체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정말 몸만 담고 있는 것 같다. 교회에 모든 것을 던지겠다고 생각했는데, 교회만 빼고 다른 모든 것에 내 모든 것을 던지고 있는 것 같다. 교회와 세상이라는, 이 거대한 병원에서 그때 병실에 있을 때처럼 나는 작은 보호자 침대와 탕비실만을 오간다. 사람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어떻게 되었든 나의 희망, 또는 절망은 아무 변함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억지나 괜한 오기가 아니라 그런 호흡 결을 가지게 되고, 그런 내 영혼에 확신을 가지게 된 아무 요동도 없는 탄탄한 배경과 근거가 있다. 그것은 자스민 공주와 J 선생님의 눈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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