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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sin Jan 29. 2023

크루아상

그냥 내가 좋아했던 것들 4




엄마는 왜 크로와상을 좋아했을까.

크로와상 생지를 발효시키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제는 손흥민 경기를 보다가 또 커피색 극세사 러그에 그대로 누워 잠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 느지감치 일어나 양치질을 하고 머리를 감았다. 어제 배송되어 온, 만 사천 원에 일 킬로그램이나 주는 값싼 원두를 핸드 그라인더에 부어 힘차게 갈고 수돗물을 끓여서 커피를 내렸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듯 간질간질한 두피에 쿨링 스프레이를 뿌렸다. 얼굴에 한 연말 모임에서 선물 교환으로 받았던 벌꿀 느낌의 에센스도 바르고.



벌꿀 에센스가 아니라 벌꿀 느낌의 에센스라고 한 이유는 정확히 모르고 대충 찍어 바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어떤 물건도, 그것의 성분은 물론이고 이름조차 거의 들여다보지 않는다. 1 킬로그램이나 되는 원두도 봉지의 그림을 보고 샀다. 원두 봉지를 뜯어서 캐니스터나 스파게티 소스를 쓰고 남은 유리병에 옮겨담으며 냄새를 맡고, 원두의 색과 크기를 보면서 그제야 미디엄 라이트 정도의 로스팅이구나, 그리고 마시면서 약간 구수한 산미가 나서 에티오피아 원두가 들어간 블랜딩 원두이거나 에티오피아 자체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태블릿을 들고 화장실 창문 앞으로 가서 눈부신 겨울 햇살에 얼굴을 찌푸리며 태블릿의 긴 옆면으로 기어 다니는 개미 한 마리를 후 불어 날려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마침내 두 단락 정도를 썼다. 어제부터, 아니 그전에 이미 며칠 전부터도 써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책상에 앉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양치질도, 머리 감기도 잠들기 전에는 매일 하고 자야 하는데. 왜 그렇게 하기 싫은지. 아침에도 다소 힘겹게 치카치카 푸푸한 것이었다. 턱걸이 백 개를 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 개만 더하자고 할 때의 안간힘과 책임감 같은 것이었지, 의욕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의욕이 없다는 것. 꿈이 없다는 것. 희망도 설렘도 없다는 것. 울음을 꾹 참고 있다는 것. 이런 포인트가 이즈음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 아니. 이즈음 무언가로 힘을 잃어버려서, 이런 포인트에서 안간힘을 쓰곤 한다. 소금기가 너무 많은, 죽은 바다 위에 몸을 동동 띄우고 누워 눈부신 태양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는, 몽환적인 모먼트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원래 내가 그랬나. 원래 난 이런 사람이었나. 아니다. 많은 돈을 몇 달 만에 다 잃어버리고도, 없는 돈에 또 엊그제깨 백만 원을 또 잃어버리고 속이 상해서, 망연자실해서, 그래서 이렇게 무기력해진 걸까. 맞다. 그건 분명히 그렇다. 아니면 엄마 때문일까. 물론 분명히 그렇다. 너무 춥고 습한 겨울 날씨에 지친 것일까. 그것도 그렇다. 이전에 비해 활동을 너무 안 하며 살고 있어서일까. 그것도.

그러나.

영혼.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 살아있다는 것. 청춘, 젊음. 모성. 할머니의 치맛폭. 허무함과 허전함, 욕망. 목마름. 배고픔. 근손실. 피부의 건조함. 간략히 말하면 난 요즘 이런 단어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사람의 머릿속이,무언가로 언제나 꽉 차있다. 너무나 가득 차서, 조금만 움직여도 단어들이 몸 안에서 떨질 것만 같아 천천히 움직일 정도다.

이런 중에도 하나님에 대한 물음은 해결되지 않고. 하나님은, 왜일까요. 왜 이러시는 것일까요. 왜 이러셔야만 할까요. 모두 제 잘못인가요. 앞으로, 그럼 어떻게 할까요.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리고 매일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맞긴 맞는 건지. 방대한 질문들이 지구의 지층처럼 내 몸 안에 켜켜이 쌓여 있다.  


햇빛은 창문으로만 본다. 정확히 말하면 창에 붙어있는 뽁뽁이를 통해 투과되는 햇볕을 아주 간접적으로 느끼며 낮을 느끼지만 언제나 밤이다. 비싼 전자 피아노를 사놓고, 피아노를 배울 수 있는 앱에서 비싼 연간 구독 결제도 해놓고. 몇 달 동안 건반 위에 먼지가 밤새 내린 눈처럼 뒤덮여 있다. 피아노 튜터링 앱이 매일 사용을 독려하는 알림을 보내오지만, 나는 현실 속의 수많은 문제와 생각들에 뒤덮여 있다. 피아노와 나. 이제는, 결코, 쉽게 손을 뻗어 닿을 수는 없을 만큼 멀게만 느껴지는, 애처로운 관계가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드물게 약속이 있을 때나, 겨우 산책을 나갈 몸의 힘과 마음의 힘이 있는 날이나, 어제처럼 드물게 외출을 할 일이 있을 때 나가서 햇빛을 느끼지만 햇볕이 벅차거나 설레지는 않는다. 따듯하게 느껴지는 느낌. 그것이 너무 그립지만 느낀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그래서 그 느낌을 품은 여자를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 누구라도 몇 살이라도 그렇게 느껴져 스스로가 한심할 정도다. 이게 다 무엇 때문일까. 어떡해야 할까. 사람이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아니면 하나님이. 아니면 내 안의 힘이.


몇 가지 발견한 것은 있다. 나는 생각보다 밝은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잃어버린 것을 찾는다는 것은 구원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오늘도 무심히 지나가고 있는, 무수히 많은 오늘들이 너무 소중한 날들이라는 것. 젊음이 값진 시간이라는 것.



현실의 불행은 언제나 관점에 따라서 행복한 순간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프레임)이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생각을 깊이 하고, 책을 봐야 한다는 것. 신앙은 좋은 것이지만 종교는 옥죄는 것이라는 것. 종교는 신념에 따라서 움직이도록 하기 때문에 정반대의 속성인 자유의 공기로써 움직이는 사랑과는 때때로 모순되는 초라한 처지에 처하게 될 수 있다는 것. 죄가 가장 초라해지는 순간이 빛 앞에 섰을 때인 것처럼, 종교가 가장 초라해지는 순간은 사랑과 마주 보며 앉게 되었을 때라는 것.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이,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을 비로소 살아 움직이게 한다는 것. (정말 근원적인) 희망만이 내 안에서 진정한 힘을 내도록 하고, 현실과 절망의 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겨우 다만 최소한의 소임을 다하려는 책임감과 의무감 정도가 아니라 내 앞에 무한하게 주어져 있는 찬란한 자유와 사랑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너무 눈물겹고 슬픈 일이라는 것. 그럼에도 있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만이 유일하고,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 등.




탔다. 글 쓰는데 정신이 팔려서.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문득 시큼한 눈물이 날 정도로 재미있게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 특히 또래 여자들을 웃기는 일을 난 너무 좋아했다. 그 안에서 자신감과 의욕을 느끼기도 했다. 삶은 살만한 것이라는 것, 좋은 것이라는 것. 남들을 웃기고, 사람들이 내 유머에 웃어주는 순간에 그런 무한한 긍정의 느낌과 희열을 아득히 느끼고는 했다.


스물한 살이 되던 해 1월, 겨울 무렵이었던가. 갑자기 평택과 수원에 사는 같은 과 여자애들 둘이 롯데월드에 가자고 했다. 나는 서울에 살았고. 젠틀하고 멋있는 남자였(여야 했)고. 그중에 한 애는 속으로 남몰래 은근하게 좋아해 오던 여자애였고(지금 떠올려도 설렐 만큼 뽀얗고 깜찍한 밀키 스파클링 여자애였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느낌 정도로 좋은, 내가 만나기는 약간 미안할 정도로 예쁜.). 여러 모로. 그래서 내가 가이드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졌다. 그러니까 너무, 신나는 책임감이었다.


약속을 하루 앞둔 바로 전날이었나. 아무튼 적어도 아마 약속이 임박한 그 주쯤이었을 것이다. 그 방학에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난생처음으로 인력 사무실에 찾아 갔다. 아파트 건설현장 같은 델 가서 아침부터 오후 해가 뉘엇뉘엇 져가는 무렵까지, 이따금 거친 일꾼들의 멸시천대를 받으며 일을 해서 용돈을 벌었다. 별 일 아니었다. 별로 힘들다고 느끼지도 않다. 여자애들과 셋이 롯데월드에 가는 약속을 위해서는 그런 일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었다.


스물을 갓 넘기고 있던 나에게는 부푼 꿈이 있었다. 그 여자애들과 노는 일 외에도, 너무 많은 꿈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항상 락스 냄새 나는 수영장의 레일 처음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어깨가 푹 잠기는 깊은 물 위에 꼿꼿이 서서 떠올라 있으려고 발로 수영장 바닥을 짚으며 동동 떠오르면서, 내 앞에 파아란 물이 출렁이며 펼쳐져 있는 긴 레일을 바라보고 있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가벼운 허들을 폴짝 뛰어넘듯 노동 일을 해서 번 돈을 나는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장지갑에 고이 넣어두고는 얼마나 뒤척이며 밤잠을 설쳤을까. 약속 당일은 금세 찾아왔고. 그날 번 돈이 십 퍼센트 정도의 사무실 수수료를 떼고, 6만 얼마 정도나 되었을 텐데. 아무튼 난 그 돈을 다 들고나갔다. 엄카, 롯카도 가져갔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친구들에게 정말 황홀한 서울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일단 먼저 대학로 베니건스에 데려갔던 것 같다. 내가 아는 가장 황홀한 식당이 아마 베니건스였을 것이다. 베니건스는 물론 나도 처음이었다. 우리는 그 중에서 그래도 덜 비샀던 메뉴 두어 개 정도를 시켜서, 그때의 우리에게는 신비롭고 아름갖기만 했던 베니건스 음료수를 스토로우로 쪽쪽 빨아서 마시면서, 흥분되는 기분으로 먹고 즐겼다. 베니건스의 따듯하고 설레는, 그 풍요로운 분위기에 비해 스물 무렵의 우리 앞의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메뉴는 아마 다소 초라했던 것 같다.



베니건스에서. 나로서는 그 둘과의 만남 외적으로도 인상적이었던 순간이 있었다. 그때 여자 서빙이 우리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한동안 난 이성인데도 그, 베니건스 여직원을 닮고 싶어 했다. 그 사람처럼, 햇볕처럼 밝은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에게 내 안의 환한 빛을 비추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스무 살 무렵의 생을 가득 차게 만끽하고 싶어서. 한동안 그 사람의 웃음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비슷한 느낌으로 애써서 환하게 웃고 다녔다. 그렇게 모방한 웃음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때의 나란 원래 귀여운 남자애였는지. 여자애들이 날더러 귀엽다고 하는 소리를 더러 좀 듣기도 했다. 이십 대 초였던 나는 잘생겼다는 말이나 멋있다는 말을 기대했었다. 귀엽다는 말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달콤하게 들리기도 했다.


아무튼 대학로를 거쳐 우린 지하철을 타고 잠실역으로 갔다. 그곳을 롯데월드 어드벤처라고 부르던가. 그 쌀쌀한 날, 우리는 야외로 나갔었다. 모든 순간들이 지금으로서는 미스터리인데, 우선 막상 생각보다 여자애들은 놀이기구를 타는 일에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서울까지 와서 그 흥분되는 롯데월드까지 갔는데 걔들은 왜 그렇게 미진한 반응을 보였을까.



기억이 나는 순간은 여자애들 중 한 명은 바깥에 있고, 한 애하고만 높은 데서 아주 천천히 뱅글뱅글 도는 기구에 둘이 탔던, 그 길고 길었던 날 중의 한 순서. 안에서도 추웠지만 밖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여자애는 또 오죽 추웠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기구 안에 함께 있던 여자애가 내가 좋아했던 애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난 민정이와 스물 스물 하나의 겨울에, 그 높고 차가운 철기구 공간 안에 단 둘이 마주 앉아 있었구나. 캄캄한 놀이기구 안의 차가운 공기와 그 공간 속에서 마주 보며 나눈 일상적인 대화들. 모두 눈부신 순간이었구나. 설마 민정이가 가자고 하고, 그럼 선영이가 밀어주려고 밖에서 떨며 기다렸던 걸까. 아무튼 난 너무 하얗게 순수했다.


이제 크루아상 발효가 끝났겠다. 엄마는  크루아상을 좋아했을까. 그렇게 좋아하는 크루아상을  직접  먹는   번도 ,  봤을까. 고작 언젠가, 내가 밖에서 우연히 크루아상을  왔을 때였던가. 엄마랑 동네에 새로 생긴  빵집을 갔을 때였던가. 아니면 병원 안에 있는 비싼 빠리 크루아상에 엄마와 함께 들어갔을 때였던가. 어렴풋이 여러  겹친 바삭바삭한 크루아상의 식감과 고소함 같은 것이 좋아서  뜨거운 크루아상을 찢어 먹는 것이 맛있다고. 그렇게 맛있다고 하시면서 크루아상을 찢어 먹던 엄마 모습의 느낌이 기억난다. 이런 것들이 너무 시큼하다. 엄마가 크루아상을 맛있어한다는   그제서야 알았다. 문장을 너무 쓰기 싫지만 기억은 하기 위해 써놓는다. 그냥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생애 내내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싶다. 그러나 너무 결연하지 않게 말이다. 수영을 하고 싶다. 살아있는 동안은,  그냥 이제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이런 것들을 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오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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