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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혜 선생님

by jungsin



1995

생물


어느 봄날의 비늘 조각.


< 분홍빛 복숭아 나무 > 빈센트 반 고흐 1888

‘삶이란 나를 향해 이토록 활짝 열려 있는 것이구나. 생은 이렇게 설레고 뜨거운 것이구나.’





나는 그때 중학교 2학년이었다. 바깥에서는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활짝 열린 교실 샷시 창 안쪽으로 길게 늘어트러져 있는 두터운 적갈색 커튼이 나풀거렸다. 선생님은 칠판에 개구리의 몸을 그리고 각 기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개구리의 생명의 신비 따위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다만 커튼을 밀고 들어와 볼을 간지럽히는 봄바람이 이상하게 설렜다.

난 생물 수업보다는 선생님이 좋았다. 그날의 실습 수업에는 흐릿한 호기심이 생겨났지만 그렇다고 육반부터 십반까지 늘어져있는 여학생들의 복도의 세계 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힘껏 뛰며 축구를 할 수 있는 체육 시간만 좋아했다. 생물은 기술이나 교련 못지 않게 관심 밖에 있는 과목일 뿐이었다. 그래서 J 선생님이 오늘따라 우리를 차가운 실험실로 데려와서는, 개구리를 그려놓고 무엇을 가르치고 계시는 건지 당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냥, 선생님의 그 뜨겁고 선한 열정이 좋았다. 어느날 성교육 시간에 예상치 못하게 불쑥 우리반에 들어와서는 들짐승이나 다름없는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런 저런 놀라운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할 때처럼. 당차고 용기있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가령 교련은 역시 교련답게 거칠고 뺀질뺀질한 남자 어른이었다. 생물 선생님과 교련 선생님은 질적으로 달랐다. 그러니까 삼십 대 중반 정도로 보였던 교련은 소년인 내가 그대로 부풀어 애드벌룬처럼 부피만 커진 소년 같았다. 교련이나 기술, 사회, 국어 할 것 없이 남자 선생님들은 다 부피가 큰 소년처럼 느껴졌다. 남자들은 어른이 되기까지 여자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이 걸린다는 것을, 나는 이미 그때 또래 친구들이나 남자 선생님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온 세상에서 제일 거친 존재일지도 모르는, 서울 변두리 공립 중학교의 열다섯 남학생들을 데리고 정말 생물학 지식을 전하면서 해부 실험을 하는 일. 당시 공립학교의 제도적 여건이나 교육 수준을 생각했을 때, 아마 커리큘럼에는 그런 수업이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일을 꾸미고 실제로 감행까지 하는 것은 S 중학교에서 J 선생님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는 거의 사용되지도 않는 과학 실험실에 남학생들을 우르르 데려가서 정말로, 우리로 하여금 어디선가 구해온 살아있는 개구리의 배를 칼로 가르게 했다는 것. 그날의 수업은 J 선생님 자체와도 같았다.


J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 초임으로 부임한 이십 대의교사였다. S 대를 나왔다는 이야기도 들어봤고,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아무튼 그녀는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 교사임에도 어딘지 어른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정말, 선생님 같았다.



선생님은 자신이 대학 때 전공한 생물학이란 분야에 대해 확신과 열정이 있었다. 그날도 칠판에 개구리를 그리고 무언가를 꼼꼼히 쓰면서 설명하고 계셨다. 그런 모습을 중간 열 맨 오른쪽 창가의 큰 실험 책상 옆에 앉아 지긋이 바라보면서. 아니 거의 구경하면서. 나는 세상과 삶에 대해, 살아가며 태워야 할 열정 같은 것에 대해 가늠해 보고 있었다. 실험 책상 위의 비릿한 개구리 냄새를 맡으면서.







J 선생님의 선하고 용기 있는 열정은 그날의 봄 날씨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살랑이는 봄바람은 나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면서, 민들레 홀씨처럼 나를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디론가로 어디론가로 실어 날랐다. 꽃몽우리에 비추이는 햇볕처럼 내 꿈을, 나를. 블룸bloom하게 했다.









교실 안으로, 내 안으로 걷잡을 수 없이 침투해 들어오던 그날의 봄 햇살과, 봄바람, 그리고 봄을 닮은 선생님. 그런 것들이 동네 맑은 하천의 물거품처럼 모여 나의 심성을 결정했다. 그때는 다 어떤 가능성이었다. 4월의 꽃봉오리 같은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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