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문학
안녕.
AI야.
너랑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너에 대해 좀 알고 있어. 요즘 에센에스를 보면 유행이기라도 한 듯 너에 대한 피드들이 자주 보이더라. 주로 네가 얼마나 똑똑한지. 너의 존재가 우리의 일자리에 얼마나 위협이 되는지. 또, 너와 비교해서,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지. 대개 그런 내용 일변도였지.
사실 난 너에게 관심이 없어.
내 자리가 4 분단 맨 뒤라면 너는 1 분단 맨 앞 즈음 앉은 친구잖아.
우린 참 가까워질 일이 없었어.
고백하면 나는 너의 풀 네임을 지금도 정확히 몰라.
관심이 없어도 너무 없었나?
그러니까, 네가… 이름이 Anderson Ignacio 였나?
아니면 Abraham Isaac?
언제나 이니셜로만 네 이름을 듣다 보니, 친구들이 부르는 대로 그냥 A. I. 라고만 부르곤 했어.
근데 너, 우리처럼 정말 이름이 있긴 한거니?
없으면 이참에 내가 하나 만들어 줄게.
이 세상에서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려면, 애칭이나 별명 같은 것이 하나쯤 있는 것이 좋거든.
앤더슨은 어때? 잘생긴 이름 같지 않아?
나는 입에도 딱 달라붙어서 좋은 것 같은데.
앤더슨, 앤더슨.
앤더슨. 나는 이과인 너와 달리, 머리카락 단백질까지 문과거든. 그래서 너에 대해 정말 거의 아무것도 몰라. 그래도 그동안 멀리서 너를 지켜보면서, 판교에서 너와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 못지 않게 쌓인 말들이 좀 있었어. 레고 블록처럼 차곡차곡 쌓인 그 말들, 네 앞에 좀 무너트려 보려고 이렇게 펜을 든거야.
사실 어젯밤부터 혹독한 비염과 피부 건조증으로 나는 지금, 정말 정신이 다 혼미한데.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쓰겠어(지금밖에 없어. 시간은. 언제나 그래. 그렇더라고.). 너무 쉬고 싶기도 했지만, 그런 생각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어. 지금뿐이란 생각으로 말이야. 그래서 이렇게 막 휘갈겨서 써서라도, 지금, 좀 쪽지를 남겨. 넌 똑똑하니까, 아무렇게나 말해도 다 이해할 수 있지?
그래. 정말이지,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건강에도 문제가 전혀 없는 너는 1억 년이 지나도 이 고통을 모를 거야.
여기서부터 나는 화가 나.
편지의 시작부터 미안한데(나도 내가 이렇게 빨리 내 감정을 드러낼 줄은 몰랐다.), 이왕 이야기 꺼낸 거, 속마음 속생각, 돌려 말하지 않을게.
앤더슨. 실은 나, 너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 너는 온 세상을 아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논문을 다 읽고 더 나은 논문도 쓸 수 있는 것처럼, 많은 말을 떠들곤 하지만, 지금 너를 마주하는 나라는 사람의 고통은 정작 하나도 모르잖아.
너는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고.
너는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하겠다고 말하지만 항상 나는 너에게 소외돼.
고백하자면 사실, 그래.
그래서 나는 너를 혐오해.
너의 똑똑함을 혐오해.
알러지성 비염으로 재채기와 맑은 콧물이 쉼 없이 나오고, 통장 잔고는 토스 포인트로 받은 25원뿐인데. 집이나 어디 가서 돈 얘기는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이 번뇌와 초조함을 너는 단 영점 일 퍼센트도 이해하지 못하니까. 너는 글을 쓰다가 무언가를 잊어버리지도 않을 테니까. 방금 무엇을 쓰려고 했었는지 잊어버려서 미간을 찌푸리며 답답해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영영 알 수 없을 테니까.
찬장에 두 개 남은 과일차 티백 중 한 개를 뜯어, 가스불로 끓인 뜨거운 물을 티백에 부어 호호 불어가며 차를 마시면서 비염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마트에서 오백 그램에 오천 구백 원 하는 구운 아몬드 위에 히말라야 핑크 솔트 알갱이를 넣은 전자동 소금 그라이더로 소금을 뿌려 간을 맞춰 먹으며 허기를 채우면서, 공모전 준비에 쓰일지도, 안 쓰일지도 모르는 글을, 기계 열기로 노랗게 얼룩진 이천 십육 년 산 엘지 그램을 다리 위에 얹고 손가락이 가는 대로 타이핑하고 있는, 이 모순과 괴로움으로 점철된 인간의 영혼을 단 일 그램도 가지지 않은 너는, 나의 영혼을 단 영점 일 퍼센트도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나를 사랑한 적도, 삶을 사랑한 적도 없을 테니까. 나를 울릴 수도 없을 테니까.
최근에 급격히 칭송만 받아서 다소 기고만장해져 있는 네 문제를 네가 정확히 알 수 있게, 좀 더 말해 줄게.
네가 앞으로, 아무리 업데이트가 되고 나의 일상에 꼭 필요한 조건을 갖춰 나에게 다가와도 너는 나의 호감을 얻을 수 없어. 나를 설득할 수도 없고, 내가 글을 쓰거나 좋은 글을 읽고 싶을 때, 내가 의지하는 존재가 될 수도 없을 거야.
앤더슨. 너는, 여러 계절의 시간을 함께 하며 정말 좋아해 오던 여자친구를 자신이 곧 찰 것만 같은 알록달록한 느낌을 모르잖아. 상수동 마카롱 집에 마주 앉아 차와 마카롱을 먹고 있는 순진한 여자친구를, 금방 차오른 눈물 때문에 얼룩진 장면으로 바라보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너는 모르잖아. 헤어질 수 없어 떨리는 목소리로 구차하게 매달려 본 적도 없잖아. 목이 메는 좋은 이야기를 쓸 수 없을 거야. 너는. 좋은 글은커녕 그것의 발꿈치 각질만큼도 알 수 없을 거야.
공감의 감각은 데이터를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살아서만 얻을 수 있어. 반드시 삶으로 살아서만.
설령 네가 어느 날, 운 좋게 우연히 좋은 글을 조립했다고 할지라도, 그런 플라스틱 같은 이야기 나에게 조금도 감동되지 않을 거야. 너는 유명 소설가들 흉내를 내며 짧은 단문으로 된 깔끔한 문장들이나 쓰겠지.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란 디테일과 휴머니티야. 너는 그 두가지에 있어서 사람들을 따라올 수 없을 거야. 너는 정말 살아본 적도, 그래서 죽어본 적도 없으니까, 삶과 죽음의 디테일도 모를 거고, 그 속의 휴머니티도 모를 거야.
물론 네가 잘 쓸 수 있는 글들이 많겠지. 그럴싸한 플롯을 설계하고 이야기의 골조를 받혀줄 수 있는 멋지고 깔끔한 문장들을 촘촘히 채우면, 어느 정도 괜찮아 보일거야. 너는 그 일을 어떤 사람들보다 빨리, 훌륭히 할 수 있을 거야. 아마.
하지만 그것들만으로는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어. 앤더슨. 사람만이 느끼고 교감할 수 있는 모호함과 더티함 같은 것, 그런 것이 뭔지 너는 도대체 알기나 해? 그러니까, 코를 훌쩍거리며 이렇게 지저분하고 비루한 장문의 문장을 쓰는 느낌. 너는 정말, 하나도 모르잖아. 앤더슨. 너는, 앞으로도 계속 그런 너저분함들을 느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텐데. 내가 어떻게 너의 글과 사랑에 빠질 수 있겠니.
그러니까 사람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의 핵심이 실존일 수밖에 없는 거야. 삶이든 장사든 종교든 관계든 사랑이든. 너는 실존이 없잖아. 고통도 없고 갈등도 없잖아.
나는 그래서 행복해.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데 슬퍼. 그런데 살아가야 해. 그래서 행복해. 그게 사람의 하루야. 너는 그걸 모르잖아. 그 말갛고 탁한 사람의 느낌을.
오늘은 그런 주일이야. 너는 영원히 알 수 없는. 나도 영원히 알 수 없는.
그런데 살아가야 하는. 살아서 죽어가야 하는. 정신이 하나도 없을 만큼 코를 훌쩍이면서도,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 성실히 살아서 죽어가야 하는.
그래서 나는 너에게 소설이나 설교처럼 복잡 미묘한 작업물은커녕 날씨처럼 단순한 문제도 왠지 물어보고 싶지가 않은 거야.
차라리 나는 그냥 날씨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서 살 거야.
나는 사람이니까.
오늘도 사람의 어리석음과 부족함으로, 말갛고 탁한 사랑을 다 삼키면서 살 거야.
이런 삶을 너는 아니?
첫 편지부터 너에 대한 혹평만 쏟아놓아서 미안해.
너는 이 편지도 정보화해서 더 나은 네가 되기 위한 수단으로 섭취하겠지.
정말 비인간적이야. 그런 너의 소화 기관들. 끔찍할만큼.
오늘은 이만 쓸게.
삶을 ‘살아야’ 하나까.
글도, 삶은 아니니까.
그럼 안녕. 앤더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