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절망
‘요즘 뭐 좋은 일 있어요? 왠지 밝아지신 것 같은데.
그래요? 그럼 그런가 보죠.’
맞은편에 두 여자가 앉아 있다. 끝자리에 앉아 있는, 검은색 뉴스 보이 캡을 살짝 눌러 쓰고 있는 작은 체구의 여자는 어딘지 기분 좋은 긴장감을 머금고 있는 것이 건너편 좌석까지 전해진다. 잘 티나지 않는 금속 귀걸이를 하고 여드름 때문인지 한쪽 볼에 앙증맞으리만큼 작은 푸른색의 별 모양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머리는 모자 뒤로 질끈 묶었는데, 그마저 멋스럽다.
두 칸 쯤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멍하니 펑퍼짐하게 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주변 눈치를 보더니 살짝 혀에 손을 가져가 침을 묻힌 손가락으로 코를 판다. 가방은 곧 누가 앉으려 할 지도 모르는 빈 옆자리에 두고서. 덩치가 문제가 아니라 체내 지방 비율이 지배적으로 높다. 결핍을 채우기 위한 야식의 흔적이다. 아무래도 그녀의 삶엔 말초적 감각의 만족밖에는, 다른 아무 꿈도 없는 것 같다.
비록 촌스럽지만 휴대폰 케이스에 액서세리가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나름의 꾸밈을 추구한 자취도 엿보이는데.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완전히, 삶을 놓은 것만 같다. 우울증이 심한 것 같기도 하고, 강도가 약한 여러 정신 질환이 뒤섞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안경을 쓰지 않은 채 흐릿하게 보이는 실루엣부터 슬픈 풍경이었다. 더 자세히 바라볼 필요도 없이, 긴장감이 무너져 보이는 태 자체가 이미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상반된 그녀들의 태란, 내 영혼의 은유 같았다. 둘 다 내 모습이었다. 절망과 희망. 내 안에 있는 두 영혼이 품은 각각의 가능성이었다. 놓음과 붙듦. 분노와 사랑. 신속한 판정, 냉대. 그리고 이해하려는 노력.
금요일 밤, 화장실에 들어오는 남자에게서 고릿한 술 냄새가 난다. 아침에 지하철역에서 스치는 누군가의 머릿결에서는 아침 냄새가 난다. 체취 섞인 향긋한 샴푸 냄새나 비누 냄새 같은 것이 이른 아침 출근길을 나서는 생의 생기와 함께 코를 뚫고 들어온다. 어떤 아저씨는 볼일을 보고 비누칠도 하지 않고 손에 물을 대기만 하고 그대로 나가버리고, 바로 옆의 젊은 청년은 비누칠을 충분히 하고 깔끔하게 손을 닦는다. 혹자는 좋은 옷과 액세서리로 아무리 꾸며도 어딘지 얼굴 한구석이 그늘져 있고, 혹자는 자연스레 옷 입고 별 치장도 하지 않았는데 낯빛이 환하기만 하다.
모조리 영혼의 일이다. 다 영혼의 희망이나 절망이 하는 일들이다.
얼굴은 얼이 굴하는(드러나는) 곳이라고 한다. 낯은 은밀한 것들을 낱낱이 드러낸다. 감정의 빛이나 그늘은 물론이고, 가치관, 지적인 경향, 정서적 풍요로움, 하루의 기분, 얼마나 흡족히 사랑받으며 자랐는지와 같은 것들까지. 표정이나 눈빛, 걸음걸이, 차림의 가벼운 결들까지가, 일제히 다 영혼의 반영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절망스럽고 슬픈 날들 속에서 아름답고 새로운 것들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어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비밀의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 드러나지도 않고 표현하기도 난해한, 신비로운 세계의 일들에 시달렸다. 알 수 없는 무력감에 온종일 앓았다. 버럭 화를 내듯이 밖으로 나갔다. 지하철을 타고 생각하기 좋은 장소를 찾아갔다. 깊은 숨을 쉬었다.
아름다움은 절망을 비트는 위트다. 자기와 주변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은 가장 빠르고 쉽게 절망의 목아지를 비틀어 버리는 일이다. 화단 청소하기, 가벼운 봄 코트 장만하기, 레몬 젤리 씹어 먹기, 독일 분말 커피 사기, 서점의 문학 책 매만지기와 같은 것들이 나에게는 하나의 세계였다. 희미하게라도 영혼의 빛을 드리울 자리가 필요했다. 어떤 순간에도, 어디에서도. 나의 모든 세계가 무너졌어도 아름다움은 꼭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