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책을 읽는다는 것

by jungsin


집에 와 바깥의 찬 겨울 공기를 머금은 채, *설콤달콤 방을 정리하고 책을 찾아 읽었다. 오로지 단정하고 정갈한 기분으로 책을 읽기 위해 억지로 정리를 했다. 바깥에서부터 정해두었던 책을 골룸처럼 허겁지겁 찾고, 오랫동안 안 쓴 독서대를 찾고, 책상에 자리를 잡고, 부실한 플라스틱 독서대에 책을 아슬아슬하게 고정시키고, 어떤 의식을 치르듯 읽어나갔다. 역시 그때 그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있구나. 그 달콤한 맛이.

정말 잘 쓴 글은 쓱 훑어 읽고 나서도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뱃속에서 달지근하게 남아있다. 매서운 칼바람이 온몸을 꽁꽁 얼리는 겨울날, 발을 동동 거리며 패스트푸드 점의 무거운 문을 밀고 들어가, 굶주린 내장을 자극하는 기름진 소고기 햄버거를 먹고 나서, 호호 불며 마신 커피가 식도에서 명치를 거쳐 흐르며 언 몸을 녹이고 뱃속에 고소한 맛을 포개어 놓는 것처럼, 솜씨 좋은 노포의 반찬이 한동안 소화액과 어우러져 감칠맛을 남기는 것처럼, 몇 줄의 글이 뱃속에 여운으로 남아있었다.

할 일도 많았고, 또다시 읽고 싶은 책이나 쓰고 싶은 글이 많았는데, 늘 신경 쓰였고, 늘 일상 속에서 염두에 두고 있었다. 잔향이 떠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들은 늘 그런 식으로 간지럽히고 속삭인다. 윤기나는 연갈색 털을 가진 치와와가 아직 어둑어둑한 일요일 아침에 마룻바닥 위로 톡톡톡 발톱 소리를 내며 다가와 귀를 핥는 것처럼 즐겁게 괴롭힌다.


몇 날 몇 달을 돌고 돌아 드디어 책장을 펼쳤다. 그 문장들을 다시 읽었다.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연인을 만나 차마 마주 보지도 못하다가 어느 다정한 골목 후미를 돌아 눈을 마주쳤을 때처럼, 그리고 마침내 입을 맞추었을 때처럼, 키스의 은하수가 부서져 내린 것처럼 부드럽고 달았다.



“나도 저 버스에 타고 떠나야 하는데, 타고 떠나버려야 하는데 그러나 나는 버스 정류장에 남아 있는 대가로,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고전적인 저주의 형식을 닮았다. 너는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아이들에게 마음껏 소설 쓰기에 대한 얘기를 해도 좋다. 그러나 절대로 그 시간에 네 자신의 소설을 써서는 안 된다. 너는 다른 사람의 예술에 대해 얼마든지 말해도 좋다. 신나게 떠들어라. 하지만 그 시간에 네 소설을 이야기하거나 그것을 써서는 안 된다. 나는 그 저주의 대가로 월급과 연금을 보장받고 꽤 쏠쏠한 출연료를 받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뒤통수 어딘가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기분이었다. 쉬익쉬익, 기분 나쁜 바람소리가 들렸다.

(....) 괴테식으로 말하자면 내 영혼을 단 1밀리미터도 고양시키지 않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끝나면 밤 11시였고.... “

오래 준비해온 대답, 23-24p, 김영하.




* 설레 하며, 달콤해하며(그러나 ‘대충’이라는 의미를 암시하며). 국어사전엔 물론 없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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