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日. 우리는 버릴 자격이 없다

목숨 걸고 책임질 자신이 있는가?

by 구 벨

* 이번 화는 다소 과격한 표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 요즘 삶이 너무 지루해.
너는 집에 가면 강아지가 있어서 좋겠다.
나도 강아지 키워볼까?

구 씨는 이런 말을 하는 친구에게 혀를 끌끌 차며 뜯어말리기 바쁘다.

"야, 안돼. 개는 진짜 함부로 키우는 거 아니야. 너 돈 많아?

아니, 돈 많아도 힘들어.

마냥 예쁜 짓만 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정말로 큰 결심이 필요해."

그리고는 4년 전 *슬개골 탈구로 양쪽 다리에 대형 수술을 받은 반려견 찌구를 떠올린다.

슬개골 수술 후 입원한 찌구

"나 우리 찌구 슬개골 수술 했을 때 진짜 300 넘게 들었어.

300이 뭐야, 약값에 입원비, 재활치료비까지 하면 거의 400 들었겠다.

심지어 나 그때 대학원 다닐 때였다고. 학생이 무슨 돈이 있었겠어.

엄마 아빠가 돈 안 대줬으면 우리 찌구는 평생 절름발이로 살았을 거야.

그리고 노견 되면 아픈 게 일상이다?

그러니까 키우지 마 제발."

라고 이야기를 한 후 친구의 표정을 슬쩍 살핀다.

다행히도 친구는 금액에 꽤나 놀란 듯 꼬리를 내린 표정이다.


구 씨는 벌써 10년 된 견주이자, (사실 견주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너무나 인간 중심적인 단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찌구의 누나이다.

이처럼, 구 씨 본인은 개와 늘 함께 하면서, 남들이 개 키우기를 고민하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뜯어말리는 이상한 사람이다.


구 씨가 이렇게까지 개 입양에 반대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개와 함께 살았었고 현재까지도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SNS가 다 망쳐놨어. 이런 영상들만 업로드되니, 개는 이래야 한다고 자기들 마음대로 착각하지."

현란한 인스타그램 릴스를 하나씩 넘기는 구 씨의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반려견 영상들은 죄다 털에 윤기가 촤르르하고, 애교가 많으며, 주인의 말을 잘 듣는 똑똑하고 순한 강아지들 뿐이다.

환상 가득한 영상을 잠시 내려놓고, 여태까지 옆집 보기 민망할 정도로 왕왕거리다가 잠에 든 찌구를 바라본다.


지금은 구 씨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반려견 찌구이지만,

결코 함께하기 쉬운 난이도의 개는 아니다.


우선, 찌구는 입질이 심하고 정말 잘 짖는 개다.

굉장히 예민해서 10년째 함께하고 있는 가족이 만지려고 해도 피하는 경우가 잦다.

또, 목욕을 시키거나 털을 정리해 줄 때, 그리고 귀를 청소해 줄 때 손가락을 세게 물려서 살점이 떨어져 피가 난 적도 많다.

이처럼 공격성이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겁도 많고 자극에 민감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관문 밖에서 아주 작은 소리만 나도 짖고, 분리불안도 있기 때문에 눈앞에서 가족이 5분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짖는다.

그래서 구 씨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찌구에게 늘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절대 혼자 집을 보게 하지 않는다.

으르렁대는 찌구

또, 찌구는 산책할 때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다.

일반적으로 반려견과 산책할 때 슬렁슬렁 여유 있게 걷다가 집에 들어오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어림없다.

사람들이 바닥에 함부로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지는 않을까 항상 땅바닥을 보며 걸어야 하고,

찌구가 가고 싶은 방향이 있으면 구 씨가 아무리 기다리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설득을 해도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기분이 좋으면 예고 없이 냅다 달려서 찌구의 속도를 맞추려던 구 씨는 발목을 삐끗한 적도 있다.

산책하는 찌구

그리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처럼 자주 아프다.

4년 전에 슬개골 수술을 한 찌구이지만, 요즘은 허리 디스크로 고생 중이다.

2년 전쯤 처음 증상이 생겨서 전신 마취를 한 후 MRI를 찍었고, 그 결과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을 한다고 해서 완치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통증이 있을 때 약으로 다스리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구 씨는 낑낑거리며 누워서 고통을 호소하는 찌구에게 동물병원 정형외과에서 처방받아 온 약을 사료에 섞어 주는 것 밖에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약으로 다스려질 정도의 불편함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심해질지, 어떤 질병이 생길지는 그 아무도 모른다.

특히, 이 모든 과정에서 개는 사람처럼 보험이 잘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병원비 100-200만 원은 우습게 나간다.


"찌구야, 누나가 너랑 반려견의 현실을 알리는 유튜브를 한 번 해볼까? 어때?"

구 씨의 제안에 선잠에서 깨어 어느새 고개를 한쪽으로 갸웃거리며 듣고 있는 찌구다.

빨려 들어갈 듯 새카맣고 그저 맑은 두 눈망울을 보며 구 씨는 생각한다.


'곧 설연휴인데, 이번에는 또 얼마나 많은 개들이 버려질까. 그 아이들은 찌구 너와 무엇이 그리 달라서 버려지는 걸까.'


구 씨는 휴대폰으로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여 '명절 유기견'을 검색한다.


https://www.nongmin.com/article/20240208500091

관련 기사들이 끝없이 뜬다.


버리는 장소가 휴게소란다.

그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곳에 버려져 자신의 가족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우연히 한 신혼부부의 글을 봤었다. 예상에 없던 임신을 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키우던 반려견을 동물보호소에 돌려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냥 길바닥에 버리는 것보다는 나으니 양반이라고 칭송해주어야 하는 걸까?


"쓰레기만도 못한 새끼들... 개가 물건이야? 필요에 따라 샀다 버렸다 하게?"


구 씨는 이런 글을 볼 때마다 치가 떨려서 입에 육두문자를 담게 된다.

"찌구야, 저런 인간들은 죽어서도 평생 고통받아야 해. 지옥보다 더한 곳은 없을까?

생명을 저딴 식으로 다루는 것들은 사람이 아니야."


구 씨의 이런 말을 듣는 와중에도 찌구의 두 눈은 티 없이 맑다.

오히려 누나가 왜 그렇게 울그락 불그락하는지 의문이라는 듯 빤히 쳐다보고 있다.

구 씨와 눈을 맞추는 찌구

그런 찌구의 눈망울을 보며 구 씨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찌구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한다.


"찌구야, 누나가 아무것도 모른 채, 너무나 가벼운 마음으로 너를 만나서 미안해.

그리고 이렇게 개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라서 미안해."


"하지만, 너를 이렇게 만나게 된 이상.

정말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앞으로 네가 허리 디스크가 심해져서 신경이 마비되어 걷지 못하게 되든, 눈이 안 보이게 되든, 어딘가 질병이 생기든, 치매가 생기든, 걸음이 느려지든, 아무 데나 배변 실수를 하든, 밥을 잘 먹지 못하든, 나이가 들어 털이 몽땅 빠지든....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네가 이 세상을 마치는 그날까지 안심할 수 있게 반드시 함께할게."


"이건 선심이 아니라 너무나도, 지나치게 당연한 거야. 사람이라는 이유로 개를 유기할 자격은 그 어디에도 없어. 꼴에 마지막 남은 양심이라고 유기견 보호소 근처에 슬쩍 버리고 가는 인간들도 똑같아."


“찌구야, 너는 나의 소중한 가족이야.
그러니까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너를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지킬게.
이건 정말 너무나 당연한 거야.”


말을 하는 구 씨의 눈에 어느덧 눈물이 차오른다.

구 씨의 다짐이 잘 전달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찌구도 어느새 구 씨 쪽으로 와서 구 씨의 다리에 엉덩이를 기댄 채 따뜻한 체온을 나눠주고 있다.


그런 찌구의 등을 쓰다듬으며 구 씨는 속으로 외친다.

'제발 이번 설 연휴에는 버려짐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없길, 그리고 사람들이 개를 너무나 쉽게 입양하지 않길.'

올해의 가장 큰 소원이라고, 인간보다 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생명들이 그 보호를 마땅히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본다.



* 슬개골 탈구: 슬개골은 무릎 관절에 위치한 작은 뼈로, 이 뼈가 옆으로 빠지는 것을 슬개골 탈구라 한다. 슬개골 탈구는 유전적 요인이 크며, 주로 소형견에게 잘 나타난다. 증상의 단계는 1~4기로 나누어지며, 적절한 관리와 수술적 치료 방법이 요구된다. (강아지 질병백과, 벳아너스(VET HONORS))


-참고도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하재영)

-참고사이트: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 동물자유연대


구조가 필요한 동물 발견 시 대처요령

https://www.animal.go.kr/front/community/show.do?boardId=contents&seq=209&menuNo=100000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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