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학부모 상담에서 느낀 점
"선생님, 우리 동글이 공부를 너무 안 해서 고등학교는 갈 수 있을까요?"
"선생님, 우리 네모 중학교 성적이 몇 등인가요? 그 정도면 고등학교 가서 몇 등급 정도 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 우리 육각이는 요즘 공부를 손 놓은 것 같아요.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악착같이 안 하네요."
"선생님, 우리 오각이는 칭찬해주면 잘합니다. 선생님께서 불러서 책도 읽고 스스로 열심히 하라고 한번 더 말해주세요."
2학기 상담주간이 다가온다.
몇 년째 중3 담임을 맡아오면서 학부모님의 상담 내용은 대부분 아이의 학업에 대한 이야기가 메인이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아이가 특별히 문제가 없다면 아이에 대한 부푼 기대를 나에게 말씀하신다. 특히 고등학교 가서 등급이 어느 정도 될지 물으실 땐 대입이 고작 3년 남은 학부모의 마음을 깊이 이해한다. 그런데 한편으론, 고작 반년 지켜본 아이의 모습을 보고 고등학교에서의 미래 성과를 나에게 물으신다니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요즘 16살의 중3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대부분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 정도 되신다. 사춘기와 갱년기가 만나는 시기. 어떤 글들을 보면, 갱년기가 이긴다고 했던가. 실제로 부모님과 상담을 하다 보면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이 꽤 있다. 그 눈물이 갱년기 때문인지 아이의 지독한 사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마음을 깊이 이해한다. 고작 9살 아이를 키운 30대 부모이지만 아이의 ADHD 진단으로 한없이 아이에 대한 기대를 저 밑바닥까지 끌어내려 욕심마저 없는, 겸손한 부모로 산 건 내가 선배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0대의 부모들이 상담을 하며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오직 한 가지이다.
그렇다. 16년을 키워오며 쌓아 온 아이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학원을 보내면서
'그래도 전기세만 내는 아이가 우리 아이는 아니겠지.'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는 성적표를 보면서도
'그래, 실수했겠지.'
사고 친 남의 아이 소문을 들으면서
'그래, 우리 아이는 저 정도는 아니라서 다행이야.'
그러다 그게 나의 아이가 되면 또 적잖이 당황하신다.
'기대는 실망을 낳는다'는 말을 잘 알면서도 아이에게 또 기대를 하는 우리는 그저 평범한 부모다. 아이를 끝까지 믿어주고 아이의 미래에 희망을 갖는 것은 너무 바람직한 자세다. 그러나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부모는 아이의 사춘기 시기를 위해 초등 때와는 다른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첫째, 이제부터 아이는 내가 아는 아이가 아니다.
알을 깨고 나오는, '내가 이 세상에 대체 왜 태어났나'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춘기 시기다. 감히 부모가 낳았다는 이유로 아이의 말과 행동을 예측해서 기대하면 안 된다. 이 아이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 아이의 일부라는 것을 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는 아이를 '잘못된 아이'로 본다. 반항하는 모습, 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모습, 거울을 한참 보면서 머리를 만지는 모습, 이성 친구와 손을 잡고 돌아다니는 모습. 다 당신의 아이의 모습이다. 그저 아이의 새로운 면을 봤다고 이해하면 된다.
둘째,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뒷모습을 보며 그 모습에 감사해야 한다.
10대는 학교가 괴롭다. 인간의 생애에서 생물학적으로 가장 잠이 많은 시기가 언제인가. 바로 사춘기다. 생물학적으로 에너지가 가장 넘치는 시기가 언제인가. 바로 사춘기다. 그런데 1교시부터 7교시까지 하루에 체육이 없는 날도 있고, 체육이 한 시간 겨우 있는 날도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딱딱한 의자에 앉아 칠판을 보고 교과서를 보고 앉아있다.
아이는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친구까지 신경 써야 한다. '쟤는 왜 여자친구가 있는데 나는 왜 없을까?' '난 저 친구가 좋은데 왜 자꾸 밥 먹을 땐 다른 애랑 갈까?' 대체 '나'라는 인간과 맞는 인간은 누굴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느라 머리가 아플 때다.
만약 부모로서 담임교사와의 상담에서 아이의 학업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면 복 받으신 거다. 생각보다 우울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아이들이 매년 있고, 학교를 오지 못해, 교실이 두려워 현관을 나서지 못하는 중학생도 많다. 그런 아이들을 몇 년째 보고 있자면, 담배 냄새를 풍기며 학교에 와도 일단 매일 학교에 와서 앉아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 반 그 아이가 그저 감사해진다.
요즘처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기 힘든 시기, 학교에 매일 등교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뿌듯해해야 한다. 제 몫을 해내는 아이에게 감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이보다 부모인 당신의 삶이 더 중요해야 한다.
아이의 ADHD 진단 이후, 나는 내가 더 중요해졌다. 내가 내 삶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아이에게 '너의 삶을 사랑해라. 열심히 살아야 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꾸 남과 비교하면서 초라한 내 단점들을 찾으며 쭈그리같이 사는 내 모습은 보지 않고, 아이에게 '넌 왜 쟤처럼 공부하지 못하냐'라고 말하는 게 맞는 걸까. 나도 출근을 지겹도록 하기 싫어하면서 아이에게는 '학생이 학교에 가면 똑바로 해야지'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될까. 생각하게 됐다.
부모님께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이 있다.
어머님, 저는 어머님이 더 걱정 돼요.
10대는 이제 부모 손을 떠나는 나이다. 이 인간의 본능에 저항해선 안 된다. 당신의 갱년기가 더 힘든 이유는 이 자연의 순리에 저항하려 해서다. 선생님의 칭찬이, 아이에게 쏟아내는 잔소리가, 부모의 결핍이 투영하는 아이에 대한 과한 기대가 아이를 바꾸기 어렵다. 그 아이는 지금 이제 막 자기만의 우주를 설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진심으로 우리 학생들의 학부모님들이 더 걱정되곤 한다. 너무 아이에게 기대를 하고 계셔서 실망할까 봐, 부모님이 노오력하면 아이를 원하는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셔서, 그 에너지를 부모의 행복을 위해 쓰지 않고 계셔서 걱정된다.
10대의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럼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행복한 부모가 되는 것.
삶을 사랑하는 부모가 되는 것이다.
폭풍의 변화를 맞이하는 아이의 일상에
더한 폭풍을 안겨주지 않는 것이다.
바로 따뜻한 가정을 유지하는 것.
부부는 더 서로를 바라봐야 하고,
부모는 각자를 더 돌봐야 한다.
아이는 그런 부모를 보며
가장 되고 싶은 '어른'을
가장 가까이에서 배워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