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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Jul 09. 2023

엄마가 학교 선생님이면 좋을 것 같나요?

교사 자녀로 산다는 것


"동글 어머님, 안녕하세요? 어쩐 일로 전화하셨나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동글이 성적이 생각보다 안 나와서요. 동글이 학교 생활은 어떤가요?"


  동글 어머님은 옆 학교 선생님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왠지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같은 교사이기 때문에 편한 것도 있지만 이곳의 생리를 적나라하게 꿰뚫고 계신다는 생각에 상담이 괜히 긴장되는 느낌도 든다.
"네, 어머님. 아시겠지만 동글이는 친구들을 너무 좋아해서요.(공부보다 친구를 좋아한단 뜻이다.) 수업 시간에 가끔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같아요'가 아니라 확실히 다른 생각을 많이 한다.) 성적이 안 나와도 평균 80점 정도면 아주 낮지는 않으니 본인이 동기가 생기면 열심히 할 수 있을 거예요.(최상위는 절대 아닌 학생이다.)"
어렵게 학부모님이 속상하지 않게 둘러 둘러 동글이의 학교 생활을 전해본다.
"아니, 집에 가면 게임만 하고 핸드폰만 보고 있어요~ 선생님. 어떻게 이렇게 공부를 안 할까요? 너무 답답해요."


   교사의 자녀로 태어나 산다는 것은 어쩌면 참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교에서 10대의 아이들을 매년 가르친다. 그 아이들의 3년의 생활과 성장과 비행과 마음속 폭풍우를 적나라하게 보는 직업이다. 한 해 동안 대략 180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그 또래의 "평균값"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초롱 초롱한 눈으로 나의 수업에 조용히 끄덕이며 가지런한 글씨로 교과서에 밑줄 긋고 필기하는 최상위 학생부터 아침부터 담배 냄새를 풀풀 풍기고와 학생부로 끌려가는 아이까지 그 나이의 아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본다. 꼭 성적의 평균값이 아니어도 학교 생활과 그 아이의 끈기, 노력 등 모든 것의 '평균값'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그러다 교사도 엄마가 되는 순간이 언젠가 온다. 내 아이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나이가 되면 '엄마가 교사인데 학교 생활은 당연히 잘하겠지.' 하고 기대한다.


   교사는 상상한다, 내 아이의 모습을.

'빨간색, 파란색으로 중요 부분에 밑줄 긋고 선생님께 바르게 인사하며, 친구들을 배려있게 도와주는 최상위, 모범적인 학생.'


기대는 실망을 낳을 뿐.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빙빙 돌려 말씀해 주시는 나의 아이의 사생활을 들으며 교사 엄마는 내 아이가 평균 이상이 아니라는 사실에 좌절하고 실망한다. 내가 교사면서 내 아이는 정작 못 가르쳤다는 자책감에 빠진다. 아이의 성적표가 내가 그 시절 받던 성적이 아님에 실망한다.


   교사가 되기까지 요즘 교사들이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아이의 평균 이하의 학교 생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초등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교 상위 등수를 받아야 교대를 갈 수 있고, 또 한 번의 임용 고시를 통과해야 비로소 교사가 된다. 중등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각 과목별 TO에 따라 경쟁률이 매우 높아지는 임용 고시를 패스해야 교단에 설 수 있다. 우리들이 그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해 왔던, 공부에 쏟은 에너지와 결과물들을 돌아보면, 내 아이가 왜 학업에 열심히 임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공감을 하기 위해선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내 아이가 왜 담배를 피우고 연애를 하고 다니는지 이해가 될 리가 없다. 우리들은 보통 학교에서 인정받는 모범생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자녀들은 집에서 형제, 자매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교사 부모들이 가르치는 수백 명의 또래 학생들과 경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교사 엄마, 아빠 마음속에 자리 잡은 평균들의 학생들, 평균 이상의 학생들과 비교당하는 것이다.


   우리도 모르게 자녀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중학교 시험에서 80점이 뭐야. 중학교 영어는 100점은 받아야지."

"그게 외우는 자세니? 암기 과목은 네가 불성실해서 그 점수가 나온 거야."

"우리 반 1등은 이 학원 다닌대. 너도 그 학원 한번 가 볼래?"

"네가 교사 아들인데 그런 행동을 하고 다니면 어떡하니?"


    내가 세모의 ADHD 진단을 조기에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평균값을 알았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 ADHD여서 너무 좌절스럽고 나와 아이의 인생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던 이유도 내가 교사였기 때문이었다. 교사 자녀라면 적어도 공부는 잘 해내야 할 텐데, 당연히 4년제 대학은 가서 잘 살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아니, 오만이었다.


교사 부모들은 이제
내 아이와 나를 분리해야 한다.
교사 부모들은 내 아이를
일터에서 가르치는 학생들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잘하는 것도 우리 덕이 아니다.
아이가 잘 못 하는 것도 우리 탓이 아니다.
우리의 아이는
자신만의 평균값을 만들어갈 것이다.


*사진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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