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사비나 Apr 06. 2024

ADHD 아이가 가면을 벗는 시간

ADHD 약물 치료, 반동의 시간

오후 6시.

"세모야, 내일 동물원 가자. 네모가 너무 가고 싶대."

"아, 왜! 나 동물 냄새나고 제일 싫어. 동물원 따위 시시해서 안 갈 거야."

발을 동동 구르며 화를 내는 세모.

"가족이랑 같이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데! 너 혼자 집에 있겠다는 거야?"

"어! 나 그냥 집에 있을 거야! 가기 싫다고!"

그러다 눈물을 줄줄 흘리는 세모...


아.

내 잘못이다.

ADHD 약효가 떨어지는 시간에 물어본 내 잘못.


ADHD 아이들은 약효가 떨어지는 시간에 각자의 방식으로 널뛰는 기분을 표현한다. 어떤 아이는 분노로, 어떤 아이는 울음으로, 어떤 아이는 과잉 행동으로. 우리는 그런 모습을 약물의 '반동'이라고 표현한다. 약으로 눌러왔던 아이의 과잉 행동과 예민함, 생각 주머니들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마치 눌려있던 스프링이 튀어 오르는 것 마냥 반동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6시간 정도로 약효가 있는 메디키넷을 복용하던 때였다. 오후 2~4시에는 세모의 약물 반동으로 과잉 행동이 심해져서 아이를 '늑대 인간'을 만나는 시간으로 표현하기도 했었다. 요즘엔 콘서타를 복용하면서 약효가 떨어지는 시간이 6시 정도가 되었다. 6시쯤이 되면 아이는 1~2시간 동안 기분이 널을 뛴다. 울보가 되거나 짜증을 부린다.


그때를 모르고 나는 세모에게 내일의 계획을 말했고, "동물원 따위는 가지 않겠다"라고 말하며 화를 내는 세모에게 버럭 되받아 치며 화를 낸 것이다.



세모의 눈물을 본 순간 마음을 다잡았다.

'아, 이건 세모의 진짜 모습이 아니겠구나. 약효가 떨어지는 시간에 기분 조절이 잘 안 되는 거구나. 약효로 쓰고 있던 가면을 벗는 그런 시간이구나.' 더 이상 동물원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반동 시간은 보통 2시간 정도면 사라진다.

세모가 자기 전, 다시 물었다.

"세모야, 내일 동물원 갈까?

네모는 아직 큰 동물들을 본 적이 없잖아.

우리가 같이 가주면 너무 좋아할 것 같아."

"거기 캥거루도 있어?"

"있지!"

"그래? 나 캥거루 뛰는 거 보고 싶은데."


아까와는 너무 다른 모습의 세모였다.

우리는 즐겁게 동물원을 다녀올 수 있었다.


ADHD 아이가 약물 치료를 한다면 이 반동 시간을 알아야 한다. 이 시간에는 아이의 뇌에 작용하던 약효들이 사라지는 시간이다. 아이가 하는 짜증, 울음, 분노, 과잉 행동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니 우리는 너무 진심으로 아이의 모든 모습을 마음에 담지 말아야 한다. 자극적인 상황보다는 뇌가 쉴 수 있도록 편안하고 즐거운 활동을 루틴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ADHD 아이를 키운다면,
때론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아이의 ADHD에
종이짝 마냥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이전 23화 남의 아이보다 나의 아이가 불편한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