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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심은 데 팥 나오기도 하지 않나요?

콩콩팥팥은 과연 진리일까

by 이사비나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끊임없이 실수를 한다.

말도 안 되는 사건 사고를 친다.

어린 교사였던 나는 아이들이 사고를 칠 때면, 퇴근하는 운전대를 잡고 씩씩 대곤 했다. 대체 어떻게 아이를 키우면 이렇게 버릇없을 수 있을까. 대체 어떻게 키우면 아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일까.


콩콩팥팥(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거라며, 종종 이런 댓글을 보곤 했다. 교사가 되고 나서 나는 이 말을 진리처럼 여겼다. 중학생 아이가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물건을 훔치고 친구를 때리면, 가장 먼저 부모가 어떻게 키우길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우울증이 있던 학생을 맡았을 때에도 부모님께 좀 더 노력해 보시라고 부탁도 했었다.


10대 아이들의 담임을 맡으면서 나는 전화벨 소리가 두려워졌다. "네, 이사비나입니다." 전화를 받으면, 음악 시간에 선생님에게 예의 없던 00이의 이야기, 다른 학교 아이를 때려서 학폭 신고가 들어왔다는 전화를 받아야 했다. 때론 경찰서에서도 몇 번 전화를 받기도 했다.


콩콩팥팥. 그것은 진리라고 생각했다.

내 아이가 ADHD라는 것을 알기까지.



온갖 육아서를 탐독했다.

육아 전문가들이라는 분들의 양서를 읽고 또 읽으면서 실천했다. 그래도 아이는 늘 나를 힘들게 했다. 아니, 아이의 ADHD는 나의 육아 로망을 모두 산산조각 내버렸다. 그렇게 너무나도 이른 시기에 나는 또 다른 진리를 깨달았다.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구나."


그 이후로 나는 콩콩팥팥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잔인하게 들렸다. ADHD 아이의 엉망진창인 기관 생활을 듣는 이들은 ADHD 심은 데 ADHD 났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유전력이 있는 질환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ADHD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인가. 아들 낳겠다고 유명한 점집에 가서 부적 하나 받아 베갯잇에 넣어 놓는다는 근거 없는 샤머니즘에 기대는 것처럼, ADHD 같은 것도 안 나오면 안 나올 수 있는 것일까.


ADHD 아이를 키우며 나는 많은 질책을 들어왔다.

'애를 오냐오냐 키워서 그런 거 아니야?'

'부모가 맞벌이라 관리가 안 되는 것 아냐?'

'엄마가 교사인데 아이는 왜 그래?'

'부모가 잘못 키운 건데 죄다 ADHD 진단받아서 쉽게 약만 먹이네'

'약 먹여서 공부 잘하게 하려고 하는 거 아니야?'

심지어 'ADHD 그런 게 어딨나며, 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라는 말까지.


정말 잘 키우고 싶은데, 잘 안 됐다.

정말 노력했는데, 잘 안 됐다.


노력하면 턱 턱 나와주던 성적, 꿈꾸면 이룰 수 있었던 성취들. 그것들이 오히려 독이었다. 엄마가 되고 나서 알았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사춘기 아이들의 담임교사를 맡으면서 매년 많은 학부모들과 상담을 해오고 있다. 각종 사건 사고를 칠 때마다 부모님과 통화를 할 때면 내 마음이 철렁한 것처럼 마음이 요동친다. 내 아이도 그런 사고를 안 칠 거라는 법은 없으니까. 어떻게 키우면 아이가 이런 사고를 치나요.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하지 이제는 안다. 물론, 아이의 양육에 있어 부모의 책임이 크겠지만, 그들도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뭔가를 했었어야 한다는 후회가 잔뜩 남아도 사실 그건 모를 노릇이다.


예측불가 ADHD 아이를 키워가며, 희망과 절망 그 어디쯤을 매일 오가고 있다. 누군가는 늘 희망 편에 서야 한다고 하지만, 희망을 향해 한 없이 걸어가면 절망으로 떨어질 때 가차 없이 추락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희망과 절망을 오가기로 했다. 부단히 오가며 아이를 키우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거기에 있다.

희망을 갖고 너무 잘 키우려

내 모든 것을 갈아 넣지 않는다.

아이가 가져오는 절망들에

속절없이 빨려 들어가 지도 않는다.


오늘은 희망 그 어디쯤에 서 있다.

아이와 굿 나잇 인사를 나누고 이불을 덮어주며,

내일이 또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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