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꿈을 이뤘을까
나의 첫 학교에는 태권도부가 있었다.
태권도부 아이들이라고 해서 덩치가 크고 무섭게 생겼을 것 같지만 중학교 1학년 태권도부 아이들은 정말 밤톨이 그 자체였다. 까까머리로 "안녕하십니까!" 90도 인사를 하던 아이들, 이름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늦게 자라는 남아들이라 키도 또래보다 작아 누나들이랑 같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첫 발령받은 학교는 00읍의 아주 작은 지역이었다. 한 학년에 반이 두 개. 그런 작은 학교에 태권도부였던 태준이가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대학 태권도과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기특했다.
운동부라 공부는 못했지만, 늘 영어 단어를 외우지 못해 죄송하다며 조심스럽게 씩 웃으며 빈 답안지를 내밀던 태준이의 모습이 아직도 내 기억에 귀엽게 남아있다. 그런 친구가 꿈을 이뤘다.
나의 첫 제자들은 이제 20대 중반의 나이를 지나고 있다. 아직 대학에 남아있는 친구들도, 졸업해 취업을 한 아이들도 있다. 첫 제자들이 잊지 않고 스승의 날에 연락을 주거나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소소한 일상을 나눠줄 때 내가 얼마나 귀한 직업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나 새삼 실감을 하게 해 준다.
어느 날, 태준이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잘 지내시죠?"
"태준아, 잘 지내니? 태권도 아직도 잘하고 있어?"
"저 이제 태권도 안 해요. 기술 배워서 수리하고 그런 일 하고 있어요."
20대 태준이는 자신이 꿈꾸던 태권도의 길을 가지 않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설렘'이 가득한 목소리로 나에게 자신의 일상을 전하는 아이.
"그래? 안 하던 거라 어렵진 않아?"
"해보니까 재밌어요. 열심히 해보려고요."
14살 아이들에게 생활기록부에 적을 진로희망을 적어 내도록 한다. 아이들은 제 각각 자신의 꿈을 적는다. 나의 생활기록부에 적혀있던 '영어교사'라는 꿈을 나는 이뤘다. 그런데 지금은 ADHD 아이의 부모로, 콘텐츠 제작도 하고 유튜버도 되고 작가도 되었다. 30이 넘어도 새로운 길이 열리는데 아이들이야 말로 무궁무진하겠지.
첫 학교에서 가르친 아이들은 부모님의 지원이 많지 않았다. 근처에 유명 학원도 없었고 부모들은 각자의 생계로 무척이나 바빴다. 부모님의 자연스러운 '방임'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가정환경의 아이들은 어떻게 자랄까 궁금했다.
기타에 푹 빠져 살던 밴드 보이 재율이는 홍대에서 공연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종종 재율이의 SNS 속 기타 치는 모습을 보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자란 것 같이 아득해진다.
노래만 나오면 춤을 추던 현주는 음악 방송 댄서로 아이돌 그룹과 함께 활동 중이다. 매번 화장한다고 혼내면 씩 웃고 다시 또 화장하고 오던 현주. 여전히 현주는 춤을 추고 있다.
영어가 너무 좋아 나에게 팝송 제목을 묻고 수업 시간에 제일 적극적이었던 호준이는 통역 일을 하다 해외영업 관련 부서에 취업을 했다고 한다.
부모의 관심이 적었던 만큼 아이들은 모두 자신이 갖고 태어난 원석을 열심히 갈고닦아 키워냈다. 누구의 힘도 아닌 스스로 해낸 일이었다. 그래서 이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 자신이 선택하는 길에 대해 누구보다 확신이 있다. 어느 길을 가든 '내'가 선택했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이후 부모님들의 관심이 아주 많은 학군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공부, 미래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고 진로도 확실한 경우가 많다. 의대, 약대, 로스쿨 등.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진로를 정하는 편이다. 주로 최상위권 아이들은 점점 정해진 루트대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중하위권 아이들은 부모의 기대에 못 미쳐 늘 방황한다. 계속 공부를 놓지 말라고 하기에 열심히 하긴 하지만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찾을 기회를 잃었다. 학력이 높은 부모들일수록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학력이 높은 부모들일수록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면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부모들에겐, 태준이처럼 태권도를 하다 좋은 대학 태권도과를 나와 기술직을 선택하겠다는 아이는 아마 그들의 상상 밖이 아닐지.
나 역시 공부를 못하면 내 아이가 한국 사회에서 도태될 줄 알고 불안했다. 남편은 여전히 세모가 ADHD인 데다가 공부는 글렀다며 한국에서 어떡하냐고 걱정이 많다. 그런데 나에게 제자들은 참 많은 걸 가르쳐준다. 제자들을 통해 다양한 삶의 모양을 배운다. 그들의 과거를 아는 내가 산 증인이다. 공부 못해도, 자기 주도적인 삶은 그냥 푸르고 아름답다. 내 제자들은 여전히 행복하다. 그들의 성적은 분명 행복과 비례하지 않았다.
어느 날 식당에 갔다.
나에게 사이다 하나를 내미는 청년.
"선생님, 저 기억나시죠?"
우리 반 꼴찌였다.
"여기서 일하는 거야?"
"여긴 알바요. 부모님이 하시던 농장을 제가 맡을 것 같아요. 거기서 이제 농장일 배워요."
내가 교사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거다.
세상엔 이렇게나 다양한 삶의 모양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 모두 자신만의 행복을 그려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