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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당하고 있다는 착각, 아이의 피해의식

"쟤가 먼저 저를 째려봤어요.", 대체 왜 그럴까?

by 이사비나

"쟤가 째려봤어요."

"쟤가 어깨를 일부러 치고 갔어요."

"저를 무시했어요."


10대 아이들의 또래 갈등에서 자주 듣는 말들이다.

사실 10대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 때마다 듣게 되기도 한다.


'나를 무시했다'라는 생각에서 시작되는 말들이다.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대화를 나눠보면 깊은 마음속에 사람들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역시나 자존감 문제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는 어김없이 가정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온 티가 난다. 어딜 가든 '그냥 나는 나'. 자기 자신의 모습에 만족한다. 그런 자존감은 아이의 존재감으로 나타난다. 친구들은 아이의 그런 존재감에 매료되듯 긍정적인 또래 관계를 맺어간다.



누군가 나를 해한다는 '피해의식'.

요즘 아이들은 이 피해의식이 강하다는 걸 느낀다. 아이들은 친구와 눈을 맞추고 대화하며 갈등도 겪고 해결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이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가야 한다. 그런데 점점 아이들은 친구가 경쟁 상대고, 서로의 마음을 알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이 더 중요해졌다.


그런 자기중심적인 마음은 자존감을 키우기보다 오히려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친구들의 무표정, 친구의 한숨 한번, 눈길조차 모두 '나'와 관련된 것으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어? 쟤 왜 나를 쳐다보지? 내가 뭐 잘못했나?'

그 친구는 소리가 나서 그쪽을 쳐다본 것뿐이다.

'어? 쟤네 왜 귓속말하지? 내 얘기하나?'

수업시간이라 조용히 이야기하려고 한 것뿐이었다.

"왜 때려!"

때리려고 한 게 아니라 지나가다가 부딪힌 거였다.

"왜 어깨치고 가?!"

좁은 책상 사이를 지나다 어쩔 수 없이 건드려졌다.


누구든 나를 해할 수 있다는 강한 피해의식이 자리 잡은 아이는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들에 늘 화가 나있다. 친구는 함께 할 때 즐겁다는 경험보다 나를 미워한다는 나에게 일부러 피해를 준다는 생각이 쌓이고 또 쌓인다.


아이에게 자신이 느낀 "느낌"과 "사실" 일어난 일은 다르다는 걸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조용한 ADHD가 의심되는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있었다. 또래관계가 늘 원만하지 못한 아이였다. 잘 웃지 않는 성격, 친구들에게 날이 서 있는 아이. 아이의 성격이 친구를 멀어지게 한 것인지, 친구와 멀어져서 아이의 성격이 그렇게 예민해졌지, 무엇이 먼저였을지는 모르지만 친구들이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든 나에게 호감을 표현할 것이라고 믿는 아이와 누구나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아이의 말투와 표정, 행동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아이의 마음에 이런 부정적인 시선이 차곡차곡 쌓일 때쯤, 아이는 결국 친구에게 신체적으로 해를 가하게 됐다. 아이와 한 시간의 긴 상담을 통해 들어보니 모든 것은 아이의 마음이 만든 '느낌, 생각'에 있었다.

"그 친구가 몇 주전부터 째려봤어요. 귓속말하면서 제 얘기를 했고요. 지나가면서 제 책상을 치고 갔어요. 자꾸 제 앞에서 친구들이랑 떠드는데 일부러 저 보라고 그러는 거예요."

이 모든 게 정말 그 아이를 향해 의도된 행동이었을까? 목격자도 증언해 줄 친구도 없었다. 같은 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누구의 편도 들 수 없기에 난감할 때가 많았다.


상대편 아이와도 긴 상담을 했다. 피해받은 아이의 모든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 사실 이 상대편 아이는 친구도 많고 피해받은 친구는 이 친구의 관심 대상도 아니었다.


많은 예시를 들며 설득을 통해 사실과 느낌을 알려주었다.

"네가 지나가면서 너무 좁아서 선생님을 건드렸어. 근데 선생님이 나를 왜 쳐?라고 하면 넌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방금 네가 눈을 감았었는데 왜 선생님을 무시해?라고 하면 어떨 것 같니?"

"억울할 것 같아요."

"맞아. 우리한테 어쩌면 그런 일들이 기분 나쁘게 다가올 수 있어. 그런데 그건 느낌이고 생각일 때가 더 많아. 이건 연습이 필요해. 혹시 정말 나쁜 의도로 누군가 네게 해를 가했더라도 어쩌면 가벼운 일로 넘길 수 있다면 그냥 좋게 좋게 생각하는 것도 너에게 오히려 좋을 거야."


아이는 조금 이해한 듯 보였지만, 여전히 자신이 피해를 받았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해 있었다.


타인 존중은 자기 존중에서 나온다. 피해의식이 강한 아이에게 '다른 사람 생각도 좀 해봐.' 역지사지를 가르치는 것이 어쩌면 아이러니다. 아이는 지금 누군가 존재 자체로 존중하고 사랑해 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어딜 가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자존감을 아직은 스스로 채우기 어렵다. 30명의 아이들을 고루 봐야 하는 선생님에게서도 채우기 어렵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온 곳, 부모로부터 끊임없이 채워져야 한다. 아이의 마음은 밑 빠진 독이다. 다 채우고 나면 끝나는 게 아니다. 채우고 또 채우고 그래서 넘쳐흘러야 타인을 비로소 볼 수 있다.


'아 오늘 그 친구는 기분 나쁜 일이 있었나 보네.'

'귓속말로 해야 될 이야기가 있었나 보지.'

'그냥 둘러보다 나랑 눈이 마주쳤나 보네. 웃으며 손인사 해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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