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마저 아이를 포기하는 순간
중학교 3학년 아이 선용이는 우리 학교를 넘어 우리 읍에서 가장 문제아로 손꼽히던 아이였다. 아이는 매일 학교에 일단 한 시간이라도 와 주면 다행이었다.
매일 아침, 담임교사는 선용이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잠에서 막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어머님.
"어머님, 선용이 오늘 학교 오나요?"
"어... 안 갔어요? 잠시만요....
아 방에서 자고 있네요."
아이는 학교에 겨우 점심시간쯤 와서 밥만 먹고 집에 가거나 겨우 상담 선생님이 설득해서 몇 시간 듣고 학교 밖을 나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늘 담배 냄새가 났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있는 학급에 수업을 들어갈 때면 그 전날부터 가슴이 두근거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출근을 하기가 두려웠다. 내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학생.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자존심이 상하고 싫었던 그때의 하루하루가 기억이 난다. 16살짜리 학생을 어쩌질 못해 무력감에 눈물을 흘리던 때였다. 동료 선생님들께도 말하지 못했다. 아이 하나도 관리하지 못한다 생각할까 혼자 끙끙 앓아야 했다.
선용이의 담임 선생님의 요청으로 교감 선생님은 특단의 조치를 내리셨다.
"어머님, 선용이 학교 계속 다니고 싶으면 매일 수업 참관하러 오셔야겠습니다."
그때부터 선용이네 반에는 뒤에 선용이 어머님이 함께 하셨다. 선용이네 반에 수업을 들어가면 늘 뒤편나 선용이의 옆 자리에 어머님이 앉아계셨다. 신규였던 나는 이렇게도 지도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교감 선생님께서 큰 결심을 하고 지도하셨던 거구나 싶다.
처음 하루 이틀은 어머님께서 엎드린 선용이를 깨우기도 하고 책을 보고 필기도 하라고 말씀하셨다. 아이는 그런 엄마에게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아 안 한다고!" 책을 덮고 다시 엎드리기도 했다. 나중에는 엄마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투명인간 취급을 하더니 친구들끼리 계속 장난치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약속한 2주의 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 어머님은 옆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선용이의 표정을 보았다. 늘 자신이 해오던 엎드려 수업 듣기. 엄마가 자신의 수업 시간에 두 팔을 포개어 머리를 대고 책상에서 잠을 청하기로 한 순간, 선용이의 표정은 내가 여태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가 바로 해석한 게 맞다면 그건 '당혹감'이었다.
우린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그냥 밥만 잘 차려주고 아이가 원하는 걸 들어주고, 학교에 보내는 양육만으로도 벅찰 때가 있다. 이 만큼만 해줘도 괜찮을 것 같다가도 아이의 일상에 어떤 나쁜 것들이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뒤돌아보니 아이는 저만치 뒤처져있다. 아니, 또는 가서는 안 되는 길로 저만치 멀리 가 있다.
급히 쫓아가 본다.
"선용아, 그 길로 가면 안 돼. 거긴 위험해. 아주 나쁜 곳이야."
열심히 손짓을 하고 끌고 가보려 해도 아주 질퍽한 진흙구덩이에 몸을 담근 아이의 발은 좀처럼 빠질 생각이 없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가 분명 맞는데, 정신없이 살다 보니 아이는 돌아오는 길을 잃은 것 같다.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선용이의 엄마가 선용이처럼 그냥 엎드려버리기로 한 순간이. 학교 졸업장이라도 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의 친구들이, 모든 학교의 선생님이 다 보는 곳에서 아이의 문제 행동을 눈앞에서 보며 매 순간 내가 얼마나 아이를 잘못 키웠나 하나하나 확인하던 순간.
엄마는 포기했다.
아이의 손을 놓았다.
선용이는 결국 단 하나도 좋아지지 않았다. 다시 멀리 또 멀리 나쁜 길을 걸어갔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 아이가 선용이처럼 되면 어쩌지? 그런 불안감에 열심히 온 정성을 다해 가르치고 키워본다. 그러다 또 생각한다. 그 순간이 오면, 나는 선용이 엄마처럼 손을 놓게 될까.
나는 선용이의 표정을 기억한다.
그 순간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이가 어떤 길을 가든,
아이가 다시 내 손을 잡고 한 발짝 떼기로 결심할 순간,
그 순간의 코 앞에서 아이의 손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엎드려 좌절하지 않겠다고.
어쩌면 거의 다 왔을 수도 있다.
딱 한치만큼의 그 순간의 앞에서 돌아서지 말자.
*해당 브런치북에 나오는 이름과 에피소드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하고 각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