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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군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미국, 캐나다, 한국의 학군지

by 이사비나

"여긴 학군이 안 좋아."

첫 발령받은 곳에 인사를 드리러 가자마자 들었던 말이었다.

모든 신규가 모이는 곳.

다른 학교로 이동할 수 있는 '내신서'를 낼 수 있는 2년이 끝나면 바로 다른 학교로 가버려서 자꾸만 신규로 채워지는 그런 학교였다.


20대의 어린 초임 교사는 학군이 좋지 않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냥 내가 긴 공부를 마치고 드디어 월급을 받는 교사가 되었다는 설렘뿐이었다.


밤새워 준비한 수업 준비는 반의 반도 쓰지 못했다.

후드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교과서 대신 자신의 머리를 대고 엎드리는 아이 때문이었다. 임용고시를 공부하면서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한 글자도 배우지 못했다. 누구도 나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한다고 실질적인 매뉴얼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되니 일단 당황함을 애써 감추며 단호하게 내질렀다.

"모자 벗어. 일어나. 수업 시작했어."

그 학생은 한 시간 내내 엎드려있다 교실을 나갔다.

30명의 15살 짜리 아이들 앞에서 나는 제대로 굴욕감을 느꼈다.


한두 명의 순하고 착한 학생들은 나머지 20명 남짓 되는 문제 학생들 사이에서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 보내고 있었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지도하다 못해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부모에게 연락을 하면 마치 남의 자식을 얘기하듯 적반하장이거나,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그곳에서 2년을 버티고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내신서를 냈다.


그 학교를 떠나오며 나는 남아있는 선생님들에게 미안함을 느낄 정도였다.


아이를 낳고 나는 소위 학군이 "좋다"는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집 근처 중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학군이 좋다는 곳에 가니 주위에 일단 유해시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근무를 하면 할수록 이곳이 왜 학군이 좋은지 알게 됐다.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었다.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은 한 학년에 한 두 명 손에 꼽을 정도여서 수업을 방해하거나 선생님께 무례한 아이들은 소외되는 분위기였다.



학군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아이들이 가까운 거리의 학교에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구획을 정하고, 그에 따라 배정을 했다. 하지만 그 구획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 수준, 교육에 대한 태도, 정보력은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사교육 정보를 모아 나눴고, 누군가는 조용히 이사를 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좋은 성적을 내는 학교’,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학교’가 생겨났다. 교육의 질이 학생의 질을 만드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학생의 질이 교육이 질을 높이는 경우가 더 많아지는 현실을 체감하고 있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엔 더 많은 정보와 자원이 몰린다. 과외 선생님이 그 동네를 선호하고, 입시 컨설팅 학원이 생긴다. 그리고 그 모든 흐름은 다시 부동산 가격으로 반영된다. “거긴 학군이 좋아서 집값이 비싸요.” 익숙한 말이 되었다.


그렇다면, 미국과 캐나다 같은 곳은 학군이 없을까?

미국의 공립 중학교에 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부모에게 물어보니 아이의 교육을 위해 이곳으로 이사 왔다는 것이다. 미국의 교육행정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을 때 그 이유를 깨달았다.


미국에서는 공립학교의 예산 대부분이 지역 주민의 재산세로 마련된다. 집값이 높은 동네일수록 재산세 수입이 많아지고, 그 돈이 학교의 교사 급여, 시설, 교육 프로그램에 직접 쓰인다. 그래서 ‘좋은 학군’은 곧 ‘비싼 집값’과 연결되고, 반대로 저소득 지역은 교육 환경이 열악해지기 쉽다. 결국 학군은 단지 행정구역이 아니라, 지역의 경제력과 계층이 반영된 구조가 된다.


철저히 자본주의를 따르는 미국은 교육마저 양극화가 되어 있다. 아이들이 쓸 크레용부터 종이마저 없는 학교도 있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캐나다 역시 마찬가지다. 캐나다는 공립 초중고가 모두 무상교육이다. 모든 공립학교에 대해 주정부가 일정한 기준을 유지하도록 감독한고 한다. 그렇다고 학군이 없을까? 아니다. 캐나다 역시 높은 집값을 감당할 수 있는 고학력의 부모들이 있는 지역의 아이들이 다니는 곳은 일단 문화자본, 사회자본이 다르기 때문에 지역 학교의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나는 우리나라 공교육이 정말 대단하다고 다시 한번 느꼈었다. 우리나라의 교육비는 저 땅끝 마을 학교까지도 똑같으니 말이다. 오히려 시골 학교에 더 많은 지원이 내려간다. 교사의 질도 똑같다. 모두 같은 자격을 갖고 발령받는 대로 아이들을 가르치니 말이다.


좋은 학군이란 게 뭘까.
공부 잘하는 아이가 많은 곳일까,

교사가 수업하기 편한 곳일까,

아니면 부모들이 안심하는 곳일까.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게 당연한 사람이기에

좋은 환경을 찾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교사로서 생각에 빠지곤 한다.

만약 다시 좋지 않은 학군의 학교에 발령받는다면,

나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아이들은 무엇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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