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10여 년 전 내가 처음 만난 비학군지의 아이들.
10년 동안 꿈꿔온 꿈을 이루던 그날의 설렘과 무척이나 서툴렀던 나와 아이들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이 브런치북을 연재해 왔다.
지금은 20대 중반이 된 아이들은 여전히 나에게 연락을 해준다. 그럴 때면, 항상 조용히 중얼대곤 한다. '내가 뭐라고'
제자들의 인연은 하나하나 돌아보면 단순한 것 같아도 운명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2월의 어느 날, 바쁘게 새 학기를 준비하다 내 손으로 뽑은 종이 하나에 새겨진 아이들의 이름들. 그렇게 복작대며 1년을 보내고 나면 그 이름들이 선명하게 또는 희미하게 내 기억에 자리 잡는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적은 이유는 십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새겨두고 싶어서였다. 부모가 된 교사는 돌아보면 아쉬운 게 많다. 내 아이가 그랬다면 어떤 걸 가르쳐주고 싶었을까, 내 아이였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었을까. 돌아보면 아쉬운 것이 더 많다. 그때는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돌아보면 틀린 것도 많았고, 그때는 틀렸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더 옳았던 것도 많다.
따듯하지 못해 뜨거웠던 신규 시절의 열정으로 아이들을 이끌고자 했던 애씀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시간도 있고, 더 따뜻하게 대해줄 걸 가르침만 주려고 했던 시간이 후회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받았던 상처가 아직 아물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이 브런치북을 연재하며 생각난 하나하나의 얼굴들 속에 늘 나를 위로하던 작은 쪽지들과 수줍은 미소로 위로하던 마음들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들은 자랐다.
아이들 덕분에 나도 자랐다.
다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부모가 되었고 교사로서도 더욱 성장했다.
"선생님 영어 시간 덕분에 통번역과에 가게 되었어요."
"선생님이랑 했던 동아리 덕분에 꿈을 정하게 됐어요."
"선생님 저 결혼해요."
어느새 나의 결혼식에 와주었던 제자들은
가정을 이루기 시작했다.
교사로 성장하는 시간들은 부단히 나의 무력함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들의 삶에, 아니 서로의 삶에 방향키를 돌릴 수 있는 강력한 운명적인 힘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