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로키산맥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ADHD 아이와 여행을 한다는 것은 늘 긴장의 연속이다.
아이의 강한 호기심이 충동성을 만날 때 가장 위험하기 때문이다.
"세모야, 거기 올라가지 마. 다치면 우리 여행 끝이야."
아이에게 제발 다치지 말라고, 아직 여행할 날이 너무 많기에 몸 건강히 안전히 다녀오길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밴프에 도착했을 때, 남편이 자전거를 타다 크게 다쳤다. 피를 철철 흘리는 남편을 보며 응급실을 가야 하나 지켜봐야 하나 아이들은 어쩌지, 뒤에 하기로 했던 일정들은 어떻게 하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 찼다. 우리 가족의 여행을 망쳤다며 연신 사과를 하는 남편. 이 와중에 자기는 정말 "쓸모가 없다"라며 생각이 부정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변화를 싫어하는 불안이 높은 남편다운 생각이었다. 자신이 다치는 건 예상에 없었을 것이다. 계획에도 물론 없었겠지.
그렇게 자신의 부주의함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며 호텔로 돌아가는 길, 우리 앞에 등산스틱 네 개가 보였다. 보우강을 따라 '딱. 딱. 딱. 딱.' 나는 소리에 트레킹 하는 아저씨에 시선이 갔다. 등산스틱 네 개가 아니었다. 등산 스틱 두 개와 두 다리에 있던 의족이었다.
그분의 옆을 지나는데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두 다리가 없을 뿐, 그의 상체를 보면 얼마나 매일 건강한 몸을 위해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규칙적인 호흡으로 의족으로 로키산맥에서 트레킹을 하던 그를 보던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툴툴거림도 자책하던 말들도 사라지던 순간이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그를 보고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
캐나다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유학을 하고, 여행을 하면서 참 불평하던 날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여행이 더 쉬웠을 텐데'
'ADHD 아이를 안 키웠다면 내 삶이 좀 더 쉬웠을 텐데'
'돈이 좀 더 많았다면 유럽이라도 더 여행할 텐데'
캐나다에 와 긴 여행을 하며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있다. 두 다리가 없는 이의 의족 트레킹, 그리고 장애인 자전거를 타고 사이클링을 하던 신체장애인들의 모임. 그들의 환한 웃음을 잊을 수 없다. 그들에 비해 나는 가진 게 많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어둠 속에서 강한 빛을 보고 눈을 감았을 때처럼, 그런 잔상처럼 깊이 남은 그때의 생각은 글로 담기가 어려운 감정이었다. 나에게 두 다리가 없다면, 나는 로키산맥에 갈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나에게 신체장애가 있었다면 자전거를 타고 로키산맥 사이클링을 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자전거를 탄다는 생각조차 할 수 있었을까?
짧은 인생에 즐거운 날이 더 많았던 것 같지만, 분명 억울하고 고단하고 지치는 순간도 많았다. 낳고 나면 아이는 행복감만 줄줄 알았는데 매달 정신과 진료를 가야 하는 엄마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교사니까 이것저것 잘 가르쳐주면 공부도 알아서 척척 잘하고 아이 친구 엄마들 사이에서 어깨뽕 좀 들어가게 사는 교사 엄마일 줄 알았는데, 한 없이 작아져 제발 내 얼굴을 모르기를 바라는 엄마가 될 줄이야. ㅎㅎㅎ(정말 웃음이 난다.)
앞으로도 쉽지 않겠지.
그렇지만 지금 내가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고통이 고통이 아니라 작은 불평 불만이 되기도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아마 더 큰 시련이 올 지도?
그럴 때마다 기억하기로 했다.
두 다리가 없어도 로키산맥을 오를 결심을 하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무력해질 때도 나에게 맞는 자전거를 타고 밖을 나설 결심을 하자고.
그만큼의 결심으로 또 살 길을 찾아, 또 행복을 찾아 일단 Keep Going 할 테다.
또 한 번의 여행은 나를 한 뼘 더 자라게 해 주었다.
다행히도 남편은 어디 하나 부러지지 않고 몇 번 감은 붕대와 연고들로 점점 나아갔다. 남편은 더 이상 자책하지도 불평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