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도 서로를 잘 몰랐다
남편과 나는 백수가 된 지 약 360일째다.
휴직을 하고 아이 둘을 캐나다 학교에 등교시키며 하루를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한국에서도 칼퇴가 가능한 직업이어서 아이 둘을 나름 양가 도움을 받지 않고 잘 키워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캐나다에 오니, 우리가 정말 이렇게 넷이 우리끼리 붙어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나면, 집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도 하고 맥도널드나 A&W 같은 곳에서 아침 메뉴를 시켜 1달러 커피를 즐기기도 한다. 남편과 1년 동안 일에 대한 생각은 제쳐두고 아이 둘의 스케줄, 우리의 식사 스케줄만 신경 쓰는 삶을 살며 느낀 점 두 가지가 있다.
긴 연애 끝에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며 서로를 무척이나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 성향도 (살짝)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 훈육 방식부터 생활 습관, 여행 스타일까지 다르다.(우리 어떻게 연애했지?ㅎㅎ)
오래된 동네 카페에서 맛있게 BLT를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캐나다인들 1인분은 거의 한국인 먹는 양의 3배다. 그러다 우연히 나온 정치 얘기에 난 또 얼어버렸다. 내가 생각하고 바라보는 세상과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남편의 말들에 나는 아예 귀를 닫아버리곤 한다. 남편은 듣기조차 거부하는 나에게 실망하고 서로 또 기분 안 좋게 카페를 나왔다.
아이 일에 있어서도 우리는 늘 의견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우리 일상이 늘 한숨 돌릴 쯤이면 늘 '너네 왜 게으름 피우냐?'라며 놀리듯 세모의 ADHD는 가족의 일상을 흔들어놓았다. 남편은 불안이 높은 사람이다. 미리 대비해야 하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얼어버리거나 화가 나거나 둘 중 하나다. 화를 내기 쉬운 대상인 아이가 그 변화의 원인일 땐 얄짤없다.
"왜 화를 내? 톤을 낮춰." 결국 나까지 화가 났다.
어느새 아이를 가르치고자 했던 어른 둘은 사라지고 미성숙한 30대 40대 남녀가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한다.
"애한테 이 정도도 못 가르쳐?"
"그게 가르치는 거야? 다르게 말할 수 있잖아."
늘 이 문제로 몇 년을 이야기 나눴지만 나는 남편을 바꾸고 싶었고, 남편은 나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했다.
"근데 왜 그렇게 화가 나?"
"자꾸 말해도 또 잘못하면, 나중에 커서도 이럴까 봐 아이가 잘못될까 봐 걱정 돼."
그때 처음 남편의 '화'가 '두려움'이란 것을 알게 됐다.
여태까지 남편의 육아방식은 틀리고 내가 맞다고 자만했던 것도 있었다. 그런데 그냥 남편도 아빠가 처음이었다. 사랑의 모양은 사람마다 달라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지면 화로 표출된다는 것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맞아.
우리 모두 세모를 잘 키우고 싶어서 그런 거지.
가족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서로를 다 아는 건 아니다.
남편은 나를 모르고, 나도 남편을 아직 모른다.
남편의 20대를 알고 있지만, 40대의, 50대의 남편은 또 모른다.
그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지만, 같은 세상 경험에서도 우리는 각자 또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무급 휴직으로 긴 여행을 오면서
통장 잔고는 비워가는 중이지만, 우리는 그 돈으로 시간을 샀다.
가족에게 시간이 많다는 건 서로 맞춰가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맞춰가는 시간이라기보단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고 있다.
우리가 모두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다른 점들도 그럭저럭 받아들일만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