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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실수에 사과를 하니 캐나다 아빠가 건넨 말

어쩌면 우리 모두 새겨야 할 말

by 이사비나

"우리 집에 트램펄린 있는데 놀러 올래요?"

옆집 캐나다인 아빠가 우리 세모와 네모를 초대했다.

뒷마당에 큰 트램펄린이라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아닌가.


ADHD 아이 세모는 방학 동안 약을 먹고 있지 않다. 텐션이 너무 올라가면 아이의 충동성과 과잉행동은 더 두드러진다. 그걸 조절해 줄 수 있는 약을 복용하지 않고 있다 보면 어느새 아이의 에너지는 말 그대로 '과잉'이 된다.


그날도 처음엔 아이들 모두 즐겁게 트램펄린을 뛰었다. 그러다 아이의 텐션은 점점 올라갔고, 트램펄린 밖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어른들끼리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느 순간 나는 대화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세모에게 3번의 언질을 주었다. 목소리를 줄이고 트램폴리만 뛰라고. 그날 초대한 옆집 캐나다 아빠도 세모의 이름을 몇 번 불러야 했다.


옆집 아이도 옆집 캐나다 아빠도 ADHD가 있기에 우리는 서로를 잘 이해했다. 하지만 아이의 행동으로 인해 사과할 건 사과해야 했다.

옆집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Sorry about what 세모 did today."

오늘 세모 때문에 좀 미안했어.


"No worries. Kids do what they do."

걱정 마. 아이들은 늘 그렇지.


아이의 행동이 조금 불편했을 수 있지만, 아이다움을 존중하는 문화가 느껴지는, 그런 답장을 보내주었다.


ADHD인으로서 어릴 때부터 책상에 앉아있기 어려워 약물치료를 받았다는 40대의 캐나다 아빠는 우리 세모와 우리가 겪는 일상의 고충을 너무 잘 이해해 준다.

'세모가 이럴 땐 좀 어렵다.'

'오늘도 아이와 이런 문제로 남편이 힘들어했다.'

이런 말들을 건넬 때면, 그는 늘 말했다.


"Life goes on."

삶은 계속 돼.


ADHD인으로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삶을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또 옆에서 관찰해 보면 나는 희망을 본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성실히 이어나가는 ADHD인 아빠인 그. 아이들에게 버거를 만들어주기 위해 패티를 사러 간다며, 전동 킥보드를 타고 마트에 가는 그의 모습은 누구보다 성실함 그 자체다. ADHD 아이를 볼 때면 가끔 정말 너무 게으르고 왜 이렇게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안 하려고 하는 건지, 저 아이를 내가 노인이 되어서까지 책임져야 하는 건 아닌지 불안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옆집 아빠를 생각한다.


영재 교육을 받아야 했지만 도무지 공부를 할 수가 없이 움직이고 싶었다던 그는 캐나다 군대에 입대했다. 지금은 가족의 삶을 위해 직장을 옮겨 재택근무를 한다. 이런 그의 일상을 보면 Life goes on. 을 외치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괜찮아, 그 일로 끝나는 게 아니야. 인생은 계속돼.”

“일어난 건 어쩔 수 없고, 그냥 앞으로 나아가야지.”

“에이, 뭐 그런 일도 있지. 지나가는 거야.”


나와 남편, 아이들은 캐나다에서 부대끼며 많은 갈등으로 부딪히고 강한 감정을 주고받고 또 후회와 반성을 하고 다시 서로를 안아주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나와 남편이 얼마나 완전하지 않은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요즘. 아이는 그런 부모를 또 용서하고 또 사랑해 준다.


한국인으로 캐나다에서 지내다 보면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깊이 생각하며 피곤하게 사는지 느끼게 된다.

'아 어제 그런 말은 괜히 했다.'

'그때 아이한테 이렇게 훈육할걸.'

'왜 노력해도 아이는 나아지지 않을까...'

아이가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내가 조금이라도 실수한 날이면 이불킥을 하며 그때의 상황과 상대방의 표정을 곱씹으며 생각이 나를 갉아먹게 내버려 두었다.


그런 밤들을 보내다 아침에 눈을 뜬다.

명상을 하며 수많은 머릿속 생각을 흘려보낸다.

그 짧은 10분 안에 내 인생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리고 떠나보낸다.


세상은 러닝머신 같다는 상상을 하곤 한다.

어쨌든 계속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방법이 없다. 계속 걸어야지.

이왕이면 즐겁게? 아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Keep going-


Life goes on.

우리의 마음은 과거까지 담을 만큼 그릇이 크지 않다.

일어난 일은 일어났고

오늘은 또 왔다.

그렇게 삶은 계속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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